"60대라니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최강 동안이네.""나이를 거꾸로 먹나?"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곤 한다. 나이와 얼굴의 '부조화'는 대중매체들에겐 뉴스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주민등록상' 나이보다 적어도 5년 안팎, 많게는 10~20년씩 덜 먹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체가 정말 또래들보다 젊은 걸까? 나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젊은 모습이니 그만큼 더 오래 살까?
나이는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속일 수 있는 대상은 사람뿐이다. 조물주를 상대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나무가 나이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헌데 사람도 확인이 까다롭고 번거로워서 그렇지, 연령을 추정할 수 있는 고유의 '나이테'를 누구나 갖고 있다.
얼굴이나 신체의 노화 정도를 좌우하는 건, 세월이다. 하지만 생활 방식이나 직업 등에 따라 외견상 내려앉는 세월의 두께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쌍둥이라도 평생을 야외에서 육체노동을 해온 형과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온 동생의 얼굴 혹은 신체가 서로 비슷한 정도로 늙어 보일 확률은 낮다.
유전자에 쌓이는 세월의 양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유전자에 차곡차곡 쌓이는 세월의 흔적은 누구나 일반적으로 똑같다. 인종·민족은 물론 생활환경도 별 영향을 못 준다. 다시 말해, 세칭 '최강 동안'으로 보이는 사람의 유전자(DNA)에도 예외 없이 주민등록상의 또래와 똑같은 '양'의 세월의 흔적이 남는 것이다.
학자들은 생명체의 핵심이랄 수 있는 DNA에 인간 특유의 나이테가 있을 것으로 오래 전부터 추정해 왔다. 인간의 나이테와 관련, 대대적으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염색체의 양 끝에 존재하는, 이른바 '말단소립'(telomere)의 길이였다. 말단소립은 세포분열이 거듭될수록, 즉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지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 특성을 활용하면 개개 세포의 노화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바로 말단소립의 이런 정체를 규명한 3명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말단소립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그 길이가 다르다. 바꿔 말해, 말단소립의 절대적인 길이 정보만으로는 확실한 연령 추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나이 추정에서 말단소립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근 등장한 게 DNA의 메틸화(methylation)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늘듯, 메틸화되는 DNA의 특정부위 양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2013년 말 최초로 학계에 알려졌다.
메틸화 양에 근거한 인간 나이테 측정의 표준 오차는 평균 2년 반 정도이다. 누군가의 혈액을 채취해 메틸화 정도를 파악하면 주민등록상 나이와 대략 5년 이내 차이로 연령을 알아맞출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입 안의 볼 부위를 면봉으로 살짝 긁어낸 뒤 이를 통해 나이를 추정하면, 표준 오차를 1년 반 이내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암세포나 특정 질환에 걸린 세포의 DNA는 인간 나이테로 활용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메틸화 나이테'가 질병 진단과 경과를 가늠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한술 더 떠 메틸화 양상을 추적하면 개개인의 수명 예측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목숨은 물론 노화 정도 또한 온전히 하늘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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