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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표지
 『약속』표지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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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의 꿈

나는 이 봄에 세 번째 장편소설집 <약속>을 펴냈다. 나는 10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써야겠다고 작정했으니 아무튼 그 소원을 이룬 한 셈이다.

고교시절에는 문예반 활동으로 내가 쓴 단편소설이 교내현상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때 평론가 곽종원 선생은 다음과 같이 평해 주셨다.

소설부의 당선 작 박도의 <국화꽃 필 때면>은 문장이 간결 선명하고, 장면 장면이 독자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 작품은 문학의 본바탕인 낭만이 밑받침이 되어있다.

누구나 습작기에는 낭만적인 작품을 쓰기 마련인데, 이것은 흠될 것이 없다.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펴는 것이 낭만이라면, 소설의 첫째 조건은 낭만에서 출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작품으로서 이만한 수준도 드물 것이다.
- <中東> 교지 제9호 125쪽

이런 찬사와 지도교사(박철규 선생님)의 사랑과 기대를 한껏 받아 나는 옆도 돌보지 않고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그제나 이제나 전업작가로 밥 먹기가 매우 힘들다 하여 교단에 섰다. 교단생활 중 틈틈이 작품을 썼지만, 나의 재능과 노력 부족으로 등단치도 못하고 오랜 문청시절을 보냈다.

그때 나의 문학 교과서는 기성 문인들의 작품들이었는데, 가장 부러운 것은 그분들 장편소설 집 맨 뒤에 염무웅, 김치수, 홍기삼, 임헌영, 김병익 선생 등 쟁쟁한 평론가들의 해설을 수록한 작품집들이었다. 그때 나는 "언제 그런 작품집을 낼 수 있을까"라는 부러움 속에 살았다.

『약속』의 창작 영감을 불러일으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한국전쟁 사진(1950. 8. 18.)
 『약속』의 창작 영감을 불러일으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한국전쟁 사진(1950. 8. 18.)
ⓒ NARA/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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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에 등단하다

그런 가운데 1994년 쉰 나이에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작품으로 문단 말석에 얼굴을 내밀었다. 등단 이후 순수 문예물보다 실용문으로 항일유적답사기, 한국전쟁사진집, 근현대사 관련 책들을 주로 펴냈다. 그러면서도 순수 문예물에 대한 꿈은 접지 않고 늘 원고지를 메웠다.

나는 명작을 남기고픈 꿈을 저버릴 수 없어 끙끙거리던 가운데 2004년 2월 17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은 어린 인민군의 사진 한 장을 발굴했다. 그 사진을 보자 문득 어린 시절에 체험한 한국전쟁과 고향마을에 정착한 한 인민군 포로를 연상케  했고, 그날 이후 그 이야기들은 온통 내 영혼을 지배하며 창작욕을 불태웠다. 

이번 작품 <약속>은 내가 평생을 두고 꼭 쓰고 싶었던 주제로 조국 분단과 통일문제였다. 나는 이 소설을 쓰고자 국내외에서 수년간 자료를 모으고, 농익은 작품을 쓰고자 인고(忍苦)와 오랜 숙성기간을 가졌다.

1차 자료 수집을 마친 뒤 2010년 10월에 기필하여 2014년 11월에 마무리했다. 꼬박 4년 남짓 집필한 셈이다. 이 작품을 쓰거나 다시 가다듬는 동안 숱한 기쁨과 그 몇 배의 아픔을 맛보았다. 나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작품을 썼다.

특히 평안도 방언을 지도해준 고교시절 은사 김영배(동국대 명예교수) 선생님과 미국 이민생활을 자문해준 찰스 리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고뇌에 빠진 나를 이대부고로 이끌어주신 김영숙 선생님(이대 명예교수)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를 사주시며, 그와 같은 작품을 쓰라고 용기를 주신 격려 말씀도 큰 힘이 되었다.

작품의 배경인 부산임시포로수용소(1951. 2. 26.)
 작품의 배경인 부산임시포로수용소(1951. 2. 26.)
ⓒ NARA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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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특별상 수상

일단 초고가 완성된 이 작품은 2013년 6월 25일부터 <어떤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해 2013년 12월 18일까지 모두 99회 연재했다. 이 연재로 천만 뜻밖에도 2013년 <오마이뉴스> 특별상을 수상했다. 나는 이에 용기를 얻어 장편소설집을 내고자 출판사와 교섭하며 문단 원로 작가와 평론가에게 선을 보였다.

분단 문학의 대가이신 김원일 선생께서는 퇴고에 대한 지도와 아울러 추천의 말씀을 써주기로 약속하였다. 늘 한번 평을 받고 싶었던 염무웅 선생님에게 원고를 보내자 당신께서 이즈음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긴 글을 읽고 쓰기가 무척 부담이 된다고 하여 소원을 접었다. 하지만 염 선생님은 불편하심에도 끝내 긴 <약속> 읽어주시고 추천의 글을 보내주셨다. 그리하여 이번 작품집 맨 앞을 염무웅 선생의 추천의 글로 장식케 하여, 마침내 나는 오랜 소원을 모두 다 이루었다.

이 작품 <약속>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 주인공 김준기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평북 영변에서 중학생으로 인민군에 입대하여 위생병으로, 서울 적십자간호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 주인공 최순희는 인민의용군 간호사로 입대한다. 이들 두 남녀는 낙동강 다부동전선에 처음 만난다. 이들은 인민군야전병원에서 사수 조수로 포연이 자욱한 속에서도 분홍빛 사랑을 나누다가 전선이 밀리자 함께 도망을 한다. 이들은 탈출 도중 이별을 대비하여 전쟁 후 8월 15일 낮 1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 후 도피 길에 준기는 유엔군에게 체포되어 거제포로수용소에 가고, 최순희는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간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김준기는 포로송환을 앞두고 최순희와 약속을 지키고자 남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약속장소 대한문에 순희가 나타나지 않자 준기는 그를 찾아 나서다가 그와 정사를 나눈 구미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이들 남녀는 기구한 인생유전 끝에 마침내 24년 만에 극적으로 대한문에서 만난다.

그제야 준기는 입대할 때 어머니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굳게 약속한 게 떠올랐다. 준기는 어머니와 그 약속을 지키고자 순희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마침내 준기는 순희와 함께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입영열차를 탄 지 45년 만에 평북 영변의 고향집을 찾아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다부동전투 격전지인 유학산(2010. 10. 현지답사 때 촬영)
 다부동전투 격전지인 유학산(2010. 10. 현지답사 때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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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소년시절의 꿈을 이루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초고는 액자소설로 약 2천매로 두 권 분량이었는데, 나는 염무웅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 가운데 액자부분 절반을 들어내고 다시 기워 1천4백매로 개작하고 작품의 제목도 '어떤 약속'에서 '어떤'을 뺀 뒤 <약속>으로 확정했다.

사람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 작품에서 준기와 순희, 그리고 준기와 어머니의 약속은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장(戰場)에서도 지켜졌다. 일찍이 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그런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소설로 그려 보고 싶었다. 그 소망도 이 작품에 오롯이 담았다. 무엇보다 10대 소년이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늘 빚으로 남겨 두다가 일흔의 나이에 이르러 모두 실천했기에 더욱 기쁘다.

다음은 졸작 <약속>에 대한 두 분 선생의 평이다.

6·25전쟁이 발발한지도 어언 60년 세월이 지났다. 그 시절의 고난을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는 거의 저 세상 사람이 되었거나, 살아 있어도 이미 고령으로 당시 전쟁의 기억조차 희미해진 과거사가 되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발로 뛰며 자료 발굴에 헌신해온 작가 박도 선생이 6·25전쟁사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다부동전투' 를 취재하여 유년기에 체험한 기억을 바탕으로 <약속>이란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작가 박도 선생은 6·25전쟁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이기에 이 장편소설 <약속>은 그 시절 증언의 생생한 자료로서도 매우 소중하다 하겠다.
-  김원일 (소설가)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됐는데도 통일의 꿈은 멀고,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평화는 요원하다. 오늘도 현실은 지뢰밭을 걷는 듯한 불안에 싸여 있다. 대체 왜 우리는 악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박도 선생의 장편소설 <약속>은 이 무거운 주제를 뿌리에서부터 살펴보고 있다.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은 그런 상투적인 성공 스토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한 시선을 통해 전쟁의 실상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자 시도한 것, 그럼으로써 남북 정치체제의 모순을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체제의 논리를 넘어선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증언한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이다.
-염무웅(문학평론가)

『약속』의 배경인 묘향산(2005. 7. 24.)
 『약속』의 배경인 묘향산(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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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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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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