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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는 영화 <허삼관>을 보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안에서 보는 입양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드러내야 하는지라 조심스럽지만 가감없이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말

아마 77년이나 78년쯤에 찍은 사진같습니다. 우리 삼형제입니다.
▲ 1970년대 우리 동네 아마 77년이나 78년쯤에 찍은 사진같습니다. 우리 삼형제입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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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동생

아마 그때가 1980년이었을 겁니다. 1월의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밤, 우리에게 여동생이 생겼습니다.

"얘들아, 동생 왔다!"

우리 삼형제는 방문을 열고 우르르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100일 정도밖에 안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무척 신기했습니다. 아기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무엇이 그리 궁금한 지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봅니다. 우리 삼형제에게도 눈길을 주었습니다. 아기와 눈이 마주친 우리는 그냥 좋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여동생이 생기는구나!

그날이 1월 28일이었습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막내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 구성원이 된 날을 기념하여 막내의 생일을 정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우리 형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여동생을 보러 안방으로 가는 게 첫 번째 임무였습니다.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가 하품도 하고, 엄마 품에 안겨 분유를 먹었습니다. 그 모습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엄마가 밥을 하러 부엌에 가면 우리 형제는 서로 동생을 안아보고 싶어서 몸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동생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집 안에 아기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천 기저귀가 빨랫줄에 걸리리고 장롱에는 분유통이 가득했습니다. 아기가 점점 자라면서 아기를 위한 과자나 장난감이 방 안에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삼형제는 엄마 몰래 막내 과자를 빼 먹는 것이 습관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밭이나 논으로 일 하러 가면 막내 돌보는 건 우리 차지였습니다.

입양가정으로 산다는 건 

동생에게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유모차에 태워서 동네 구경도 시켜줬습니다. 워낙 작은 동네이니 우리 막내가 '입양아'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잘 몰랐지만, 부모님은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맘고생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의도치 않게 공개입양이 돼 버린 상황이었으니 이런 불편함은 우리 가족 모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올 설에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방문했습니다. 대부분 빈집이고 개 한마리가 저를 반겨줍니다.
▲ 어릴 적 살던 동네 올 설에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방문했습니다. 대부분 빈집이고 개 한마리가 저를 반겨줍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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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내가 커가면서 조금씩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빠는 공무원이었는데 동네에서 '면사무소 직원'하면 다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면사무소에서는 학교 선생님과 자주 만나 운동도 즐기고 회식도 하는 편이어서 우리 삼형제는 자연스레 학교나 관내에서 '누구 아들!'하면 다 알았던 거죠. 그 집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하더니만, 친자식들은 팽개치고 업둥이만 챙긴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퇴근 후 논밭 일이 끝나면 오토바이로 두 분만의 데이트를 즐기곤 했는데 막둥이가 네 다섯 살 정도 되자 셋이 함께 읍내로 바람도 쐬러가기도 했거든요. 우리 삼형제야 시골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느라 바빴으니 주위에서 보기엔 '제 자식이 밥을 먹는지 굶는지 나 몰라라 한다'는 시선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대전으로 이사를 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우리 대전으로 이사 갈래?"
"왜?"

엄마는 막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막내가 입양아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입양아가 있는 집안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대전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막내의 입양 사실을 모르는 곳으로요. 안 그래도 당시 형이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형과 한 살 차이인 저도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붙었기 때문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을 떠나며 무너진 가정

1988년 1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가정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에 이사 한 지 두 달도 채 되기 전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당시 외할머니가 몇 년째 암투병 중이었는데 외가에 병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것입니다. 엄마는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셨고, 아빠는 심한 타박상에 다리뼈가 완전히 부서진 데다 의식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막내 여동생은 찰과상만 입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요.

어머니는 1988년에, 아버지는 2014년에 두 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 있는 산소 어머니는 1988년에, 아버지는 2014년에 두 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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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많은 사람들과 친척들이 병문안을 오고 엄마 장례식장에도 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이 모든 일이 막내 여동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입양만 하지 않았으면 이사를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교통사고도 없었을 것이랍니다. 공무원 월급 받고 논과 밭도 있으니, 남들 부러워하게 떵떵거리며 잘 살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리 형제는 그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입원실에 누워 있는 막내를 보며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빠는 상태가 좋지 않아 다리에 철심을 박고 수 차례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큰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아빠는 의식을 회복하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해 했다고 합니다.

<종교 다시 읽기>(청년사:박규태 외 지음) 라는 책을 보면, 가족공동체를 비롯한 지역 공동체의 집단관념과 종교의례를 다루며 다음 구절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공동체의 위기가 생기면 사람들은 집단 관념의 불연속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개인과 집단 모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면 그들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낯선 대상을 찾으려는 것이죠. 그 대상은 사람이나 물건 혹은 새로운 풍습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새롭게 가족의 구성원이 된 며느리가 집중 타깃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통과의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집안에 사람을 들일 때는 잘 들여야 한다"며 그 집단에서 인정한 통과의례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입양아의 경우는 며느리보다 더한 눈총과 오해를 받습니다. 핏줄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가 그만큼 폐쇄적이고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입양을 결정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심사숙고할 부분입니다.

우연히 듣게 된 입양 사실... "아빠! 나 입양했어?"

덧붙여 입양을 결정한 부모는 입양에 대한 안밖의 시선과 고통을 감당해야 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에게 입양이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말입니다. 물론, 아이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애정, 책임감과 의무도 함께 말이죠. '우리'가 위험해질 때는 낯선 어느 것을 잘라버림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으니까요.

우리 막둥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연히 삼촌과 아빠의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물 지으며 아빠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아빠! 나 입양했어?"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여동생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예뻐해 주던 엄마도, 병원에 누워 계신 아빠도, 세 명의 오빠도 친부모 형제가 아니라니! 당시 엄마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큰 댁과 외가할 것 없이 다들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상태라 미처 여동생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여동생의 아픔을 보듬어 주지 못해서인지 몇 년 후 이 상처가 곪아 터져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1988년에 1월에 발생한 이 사고는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1980년 입양가정이었던 우리는 엄마의 사망과 아버지의 재혼(1989년)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가족의 탄생'을 맞게 됩니다.

1편에서 언급했던(관련기사: '핏줄'이 이어져야만 가족일까요?) 한국어 위키 백과사전에서 말하는 가족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 봅니다.

"'가족(家族)은 대체로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집단을 말할 때는 가정이라고도 하며, 그 구성원을 말할 때는 가솔(家率)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입양과 재혼으로 3남 2녀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기고 여동생이 한 명 더 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다복하고 어엿한 가정의 모습을 갖춘 것입니다. 다음 편에는 두 번째로 맞이한 가족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입양, #재혼, #허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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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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