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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내게 말했지. 지금도 아이 어린이집 맡기고 출근하고, 오후 6시면 눈치 보며 칼같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늘 불편하다고... 늘 시간만 되면 사라져 '신데렐라'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동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겠지만, '직장맘'인 우리 당사자들한테는 우스갯소리보다는 가슴 아픈 별명으로 들리곤 하지.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더 예쁘고, 혼자 커가는 아이보다 오랫동안 같이 가는 같은 편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둘째를 생각하게 되지.

둘째 낳고 싶다는 직장맘 후배에게

예전엔 전혀 엄두가 나지 않는다던 네가 다시 둘째를 심각히 고민하게 되는 이유일 거야. 그렇게 고민하던 네게 나는 좀 현실적인 조언을 했어. 양가 부모님 중 한쪽의 도움이 없다면 둘째는 '비추'라고...

물론 양가 도움 없이도 아이들 둘, 셋씩 키우면서 잘 헤쳐나가는 직장맘도 많지만, 그건 직장맘이 일보다는 아이에게 더 많이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운 게 사실이야.

나는 준비 없이 둘째를 가지게 되었지. 누군가 내게 연년생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혹은 직장맘이 아이 둘을 기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나는 둘째를 낳지 않았을지도 몰라.

지금이야 미치도록 예쁘고, 숨만 쉬어도 그냥 귀여워 죽을 것 같은 그런 둘째지만, 시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르지. 나의 경력은 사회 생활 10여 년으로 그냥 끝났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시부모님이 내 직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신 점에 무조건 감사해. 간혹 서운한 감정이 있어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환경이니까.

직장맘들의 고단한 현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야

<미생>의 '직장맘' 선차장(신은정 분).
 <미생>의 '직장맘' 선차장(신은정 분).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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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하지. 어린이집도 있고, 베이비시터도 구하면 되지 않냐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육아 경험이 없는 정치판 사람들이거나 혹은 육아에 있어서 진짜 책임자가 아닌 부책임자일 경우가 많아.

시부모님께 맡겨도 아이가 아프면 하루에도 열 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엄마인데, 남에게 맡기는 엄마들 마음은 열 번이 아니라 그 이상 흔들리지 않겠어?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데, 일이 바빠서 휴가는 낼 수 없고, 해열제를 가방에 넣어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 심정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

​특히 아이들은 아플 때 엄마한테 심하게 매달리지. 열이 펄펄 끓는데, 아이가 매달리는데, 그냥 떼어 놓아야 하는 모진 경험을 어찌 말로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가 둘이 되면 정말 답이 없더라. 한 아이가 아프고 나면... 병이라는 것이 잘 옮아. ​두 명 다 아프면, 어디 부탁하거나 맡길 데도 없어.

내가 아는 동료는 출근하면서 아이 둘을 등원 시켜야 하는데, 한 아이는 아프고, 다른 아이는 시간 없는데 현관 앞에서 응가를 하고... 결국 그날 출근 포기하고 현관 앞에서, 아이들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

나중에 그 동료는 시댁 합가를 택했어. 생활 스타일이 다른 시부모님과 때론 티격태격하고, 주말에는 가사 도우미처럼 주방에서 살지만, 평일에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고 출·퇴근하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고.

남편은 뭐하냐고? 요즘 남편들 참 잘 '도.와.줘'. 그 말은 정말 도와주는 거야. 회사 일에서도 주 책임, 부 책임 제도가 있잖아. 어떤 일에 있어서 누군가가 1차 책임자고, 보조자가 있듯이 육아에 있어서도 ​주 책임자는 엄마인 거지. 남편도 힘들지만, 엄마들 힘든 거에 비하면 덜하다고 생각해. 엄마들이 부탁하거나 닦달해야 도와주니까... 그나마도 잘 협조해 주면 정말 착한 남편인 거지.

남편이 먼저 아이들 등·하원 스케줄 짜고, 하원 후에 아이가 혼자 남지 않게 어디 어디 학원 알아보고, 스스로 돌보미 신청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주로 엄마들이 남편에게 부탁하거나 시키는 거지. 회사 생활 해봐서 알잖아? 남이 부탁하거나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스스로 계획 세우고 성과 내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는 거...

그래도 아이는 자라고, 우리도 성장하지

이런, 조언을 해준다는 게 직장맘의 푸념이 되어 버렸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양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양가 부모님 혹은 친·인척이라도 비빌 언덕이 있다면, 둘째는 '강추'야. 키워보면 알아.

첫째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지만, 둘째는 또 둘째 나름의 매력이 있어. 말로 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말하는데, 왜 숨만 쉬어도 예쁘다고 하는지 그 말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절절히 느껴지니까.

이렇게 예쁜 둘째를 일과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못 낳는 것은 정말 안타까워. 양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란, 사는 위치도 중요하지만, 양가 부모님의 의지가 더욱 중요해. 봐주겠다고 흔쾌히 동의하셔야 한다는 것이지. 나이가 있으셔서 몸이 불편하신 것도 다반사니까 건강도 고려해야 하고.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엄두가 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후배여...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아. 세월은 가고, 더불어 시간도 가고, 아이들은 성장하더라고. 그러면서 아이를 돌봐주는 시부모님도 수월해지고, 육아하면서 서로 부딪힌 많은 시간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으로 변하더라고. ​아이도, 나도, 시부모님도...

"엄마 가지마"라며 울며 매달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경쟁하듯 출근하는 엄마에게 잘 다녀오라며 왼쪽, 오른쪽 ​뺨에 뽀뽀 세례를 하니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직장맘이 건너기 힘든 또 하나의 산이 있는데, 사실, 또 어찌 헤쳐나갈지 약간 겁나는 것도 사실이야. ​그때 경험한 것을 또 정리해서 이야기해줄게. 여튼, 그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낳든 낳지 않든 간에 그 결정은 무조건 옳아.​ 그대의 선택에 미리 응원 보탤게. 파이팅!


태그:#워킹맘, #직장맘, #둘째,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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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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