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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에도 봄 햇살이 머뭅니다.
 돌담에도 봄 햇살이 머뭅니다.
ⓒ 최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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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을 중심으로 강화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보면 전등사가 있는 길상면은 남쪽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강화로 들어오는 다리가 강화대교 하나밖에 없어서 남쪽인 길상면과 화도면을 가자면 읍을 거쳐 빙 둘러서 와야 했다. 그러나 초지대교가 놓이면서 강화읍을 거치지 않고 길상면으로 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온수리는 길상면 소재지가 있는 동네다. 시골의 면소재지 동네가 으레 그렇듯 온수리 역시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파출소와 농협이 있고 그 주변으로 자잘한 가게들이 길 가를 따라 늘어서 있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시골 동네들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지만 온수리는 꽤 번성하다. 인근에 전등사가 있어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찾기 때문이다.

나들길 3코스, 능묘 가는 길

강화나들길 3코스 '능묘 가는 길'은 온수리 버스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총길이 16.2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길은 길상면 온수리를 출발해서 양도면 능내리 가능까지 간다. 이름에서 말하듯이 이 길에는 고려 시대 왕과 왕비의 능이 세 기나 있다. 또 무덤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려 시대 고분도 한 기 있다. 남한 땅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왕릉 5기 중 4개가 강화도에 있고 그중 곤릉, 석릉, 그리고 가능이 나들길 3코스 구간에 모두 있다. 그래서 길 이름을 '능묘 가는 길'로 붙였나 보다. 

나들길 3코스를 걷기로 했던 그 날은 봄이 오는 걸 시샘이라도 하는 양 갑자기 추워졌다. 여러 날 포근하다가 추워지니 체감온도는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이런 날은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게 상수겠지만 나들길을 걷기로 약속을 했던 터라 나갈 차비를 했다.

 전등사 대웅전.
 전등사 대웅전.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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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길 3코스의 시작점인 온수리 버스 정류장에 가니 길동무 너덧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꽁꽁 싸맨 모습이다. 해가 난 지 한참 지난 시간인데도 여전히 춥다. 일기예보를 보니 종일 영하의 날씨일 거라고 했는데, 추울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10분 정도만 걸으면 몸이 데워져 오히려 촉촉이 땀이 날 것이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큰 길을 두고도 일부러 이렇게 길을 잡은 것은 느림의 미덕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리라. 머리에 함지박을 인 여인이 '어서 오시겨~' 하면서 반겨주는 그림이 벽에 그려져 있다. 여인이 이끄는 데로 따라가니 골목길의 벽에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벽화만 보고도 여기가 강화도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2008년 가을께였던 것 같다. 전등사 동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막 만들어진 나들길 3코스를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전등사의 총무스님도 나와 계셨고 인근 마을의 목사님과 신부님도 함께 하셨다. 3코스가 전등사와 그 밑의 동네인 온수리를 거쳐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분들도 함께 하셨던 것 같다. 모두 한 마음으로 나들길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같이 길을 걸었다.

봄 물 가득 길정 저수지

그때부터 나들길을 걸었으니 내 나들길 역사도 꽤 오래 되었다. 길은 늘 새로웠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랐으며 작년이 다르고 올해 또 새로운 얼굴로 찾아왔다. 봄의 길은 환희와 설렘이었고 여름의 길은 열정을 우리에게 주었다. 가을과 겨울에도 길은 또 다른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길과 함께 성장했고 길 덕분에 깊어졌다. 

 봄 물을 가득 실은 길정저수지.
 봄 물을 가득 실은 길정저수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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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길정저수지 근처까지 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잠깐 고민을 했다. 이규보 묘로 가는 정코스를 다 걸을 것인가. 아니면 길정저수지 둑을 따라 가는 번외 길을 걸을 것인가. 걷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나들길을 걷지만 한 걸음이라도 덜 걷고 싶은 게 또 사람인 모양이다. 오늘도 우리는 길정 저수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멘트로 포장한 길보다는 포실 포실한 흙길이 더 좋다는 명분을 대면서 저수지 둑을 따라 걷는다. 

봄물이 실린 저수지는 그득했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담수 량이 적은 듯했다. 겨울 가뭄 탓에 그렇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은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 눈이 오면 길이 얼어붙기 때문에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눈은 반갑지만은 않다. 나 역시 눈길 운전이 부담스러워서 겨울만 되면 매양 눈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나 물 양이 많지 않은 저수지를 보니 올해 농사가 걱정이 되었다.

큰 강이 없는 강화도는 저수지와 수로에 가둬놓은 물로 농사를 짓는다. 강화도에는 큰 저수지가 여럿 있는데 길정 저수지가 그중 가장 크다. 선두포와 가능포 앞바다를 메워 만든 너른 들이 길상면과 양도면에 걸쳐 있다. 그 들에 물을 대주는 게 바로 길정 저수지다. 봄 농사를 앞두고 있는 들판이 아른아른 거린다.

저수지 둑이 시커멓게 불에 거슬려 있다. 해충들을 없애기 위해 들불을 놓았나 보다. 검불 사이로 보얗고 통통한 쑥이 제법 올라와 있다. 쑥을 보자 욕심이 나는지 모두 한 마디씩 한다. 봄나물이며 쑥국이 입으로 만든 밥상 위에 올라왔다.

고려 왕릉 찾아가는 길

 곤릉은 고려 22대 강종(재위 1211~1213)의 비이자 23대 고종의 어머니인 원덕태후의 능이다.
 곤릉은 고려 22대 강종(재위 1211~1213)의 비이자 23대 고종의 어머니인 원덕태후의 능이다.
ⓒ 문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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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와 마을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든다. 고려 왕릉들이 있는 진강산 자락이다. 참나무 사이로 다복솔도 다문다문 서있는 산길에는 인적 하나 없다. 마치 산과 길을 전세라도 낸 양 우리는 마음껏 누리며 걷는다.

고려 22대 희종의 능인 석릉과 22대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가 모셔져 있는 곤릉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원종(24대)의 비이며 충렬왕의 어머니이기도 한 순경태후를 모신 가능도 나들길 3코스에 있다. 한때는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권력의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한 기의 무덤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사이 80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또 대한제국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왕조가 바뀌고 시절이 변했지만 고려의 왕들은 묻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옛날의 영화는 간 곳 없고 지금은 하나의 봉분으로 남아 진강산의 한 기슭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강화 나들길 3코스는 고려 왕릉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에는 포도넝쿨처럼 길이 뻗어있고 길을 따라 포도송이 같은 집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다. 논과 밭을 지나고 마을들을 지나간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 길은 산으로 스며든다. 

길을 나설 때는 바람이 제법 맵차더니 한낮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춘다. 어느 결에 봄이 우리 곁에 와있었다. 봄볕과 함께 길을 걷는다. 우리는 지금 고려의 왕들을 만나러 가고 있다.

 고려 21대 희종(재위 1204~1237)의 능이다.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고려 21대 희종(재위 1204~1237)의 능이다.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 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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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강화 나들길 3코스 '능묘 가는 길' : 온수공영주차장 - 가능(거리 16.2km 소요 시간 5시간 30분)
전등사 경내를 둘러보고 삼랑성 북문을 통해 정족산 둘레길을 돌아 온수리성공회성당, 길정저수지를 지나 3기의 고려왕릉과 고려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묘를 돌아보는 평탄한 길이다. 고려왕릉들이 있는 진강산 자락에는 등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 있어 등꽃이 필 때면 그 장관이 실로 대단하다. 진강산은 조선시대 북벌의 꿈을 꾸던 효종의 명마(名馬) 벌대총의 전설도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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