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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이 만든 크레파스와 이면지 공책
 옮김이 만든 크레파스와 이면지 공책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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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고마운 물건이 된다. 집과 학교에서 쓰다가 만 몽당 크레파스, 회사에서 서류로 쓰였을 이면지, 호텔 투숙객이 쓰다 남기고 간 비누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새것으로 다시 태어나,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오래돼 낡은 여러 개의 물건을 하나의 새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은 청년NGO '옮김' 활동가들. 그러나 이들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진정한 봉사는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청년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곳 '옮김'을 소개한다.

지난 11일 은평구 불광동 청년허브공간에서 '옮김'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윤나리(24·대학생)씨와 활동가 홍은지(22·대학생)씨를 만났다.

- 옮김이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궁금해요.
나리 : "'누군가에게는 버림, 누군가에게는 옮김'이라는 모토 아래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입니다. 옮김은 총 3개의 큰 재가공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쓰다 남은 비누, 짧아져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크레파스, 이면지와 같이 재활용 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 재가공 해 필요한 곳에 보내주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투숙객이 몇 번 사용하고 버려진 비누를 녹여 새비누로 만들어 위생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에 전해주거나 몽당크레파스나 집에서 더 이상 쓰지 않는 크레파스를 수거해 다시 녹여 새 크레파스로 만들어 국내외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 한 면만 쓰고 버려지는 이면지는 반으로 접어 스프링 제본을 한 뒤 공책으로 만들어 필요한 국내 아동지역센터에 보내고 있습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옮겨주는 청년들 '옮김'

옮김 활동가 윤나리(24), 홍은지(22)씨
 옮김 활동가 윤나리(24), 홍은지(22)씨
ⓒ 송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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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김'이라는 단체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나리 : "2010년에는 작은 청년단체였어요. 청년들이 단체를 이끌면 진행이 더디고 잘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월급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규모도 작다 보니 사명감 같은 게 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활동이 흐지부지 됐다가 다시 활동가들이 뭉쳐 2012년에 '옮김'으로 이름을 바꿔 비누사업도 그대로 하고 다른 옮김 아이템도 구상하다 2013년부터 크레파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옮김은 무슨 뜻인가요?
나리 : "사실 옮김은 2010년 '클린더월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비누사업만 하고 있었죠. 근데 다른 것들도 재가공 과정들만 거친다면 비누처럼 필요한 곳으로 옮겨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옮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됐어요.

크레파스가 필요한 곳에 크레파스를 옮기고 이면지가 필요하면 그곳에 이면지 공책을 옮기고. 즉,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옮긴다고 해서 '옮김'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어요. 비누나 크레파스는 시중에 잘 나와 있어서 국내에는 재가공한 물건을 보내줄 만한 수요처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제 3세계에 보내고 있고요. 이면지 공책은 국내에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국내에 보급되고 있어요."

- '옮김'이 지원받는 물건들은 어떻게 모이나요.
나리 : "비누 같은 경우는 호텔로부터 받고 있어요. 크레파스의 경우는 저희들이 직접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수거를 했어요. 지금은 홍보가 많이 돼서 전국에서 택배로 보내주는 일도 늘었어요. 그래서 직접 수거는 가끔 해요. 이면지는 인쇄소에서 받아오기도 하고 직접 이면지를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택배로 보내주시는 분들 중에 저희가 크레파스를 색깔별로 나눠 녹인다는 걸 아시는 분들은  일일이 색깔별로 분류해서 보내주시기도 해요. 또 좋은 곳에 잘 쓰라고 편지를 써서 보내주는 분들도 있어요. 저희가 어떤 봉사를 하는지를 보고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는지 알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은지 : "저희가 처음 옮김 활동을 시작했을 때 무작위로 전화를 해서 '저희는 이런 단체인데 안 쓰거나 버리는 물건 주실 수 있냐'고 물으면 어떤 분들은 관심을 갖고 들어주더라고요. 크레파스가 없는데도 굳이 다른 분들한테 부탁해서 자기가 알아봐서 해주겠다고 하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그런 분들 보면 뿌듯함도 생기고 또 아직 남을 잘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껴요."

"하면 할수록 선뜻 하기 어려워지는 게 봉사인 것 같아요"

- 옮김의 봉사활동이 활동가들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뭔가요?
은지 : "진정한 봉사는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막연히 '나 이제 좋은 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도 한번은 살면서 다른 사람처럼 좋은 일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거든요. 근데 여기 와 보니 좋은 일을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선뜻 하기 어려워지는 게 봉사 인 것 같아요."

나리 : "저희가 몽당크레파스를 녹여서 재활용하는 봉사를 하고 있잖아요. 필요한 곳에 보탬이 되니깐 저희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그냥 만드는 걸로 끝을 냈어요. 근데 받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크레파스 모양이 덜 예쁘거나 손잡이 부분에 스티커가 떨어져있으면 다른 크레파스들이랑 비교가 되면서 받을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요.

그냥 보내주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해선 안 돼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좋은 일을 하려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생각해야 해요. 그저 '너희가 필요할 것이다' 하면서 보내주기만 하는 건 건 봉사가 아니더라고요. 받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진짜 첫걸음이더라고요.

저희도 활동하기 전에는 이런 봉사 팁을 몰랐거든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구나'란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아이들이 물건을 받을 때 더 기분 좋을 수 있게 보완하려 해요."

버려지는 것까지 일일이 다 생각해서 계획

크레파스옮기기 사업에 참여한 봉사자들
 크레파스옮기기 사업에 참여한 봉사자들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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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한 것처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리 : "작년에는 포장도구나 제품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들 없이 시작했어요. 지금은 포장하는 방법도 고안했고 포장할 때 세련되게 보일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준비 되어있어요. 어떻게 만들고 포장하는지를 생각하는데 몇 달이 걸렸어요.

'이런 방법이 좋은 거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을 파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재활용비누도 시중에 나와 있는 것처럼 비닐포장을 하면 과정이 훨씬 간편해져요. 비닐포장을 하면 비누들끼리 서로 들러붙거나 뭉개질 일도 없어서 훨씬 편하거든요.

근데 받는 입장에서 보면, 비닐포장을 뜯다보면 비닐이 쌓이고... 그럼 개발도산국 입장에서는 쓰레기도 받는 거잖아요. 환경을 생각하면서 보내주는 방법이 뭐 있을까 하다가 다시 종이(크라프트지)로 일일이 포장을 하게 됐어요. 버려지는 것 하나까지 생각해서 계획해도 또 모르는 부분에서 문제가 일어나기도 해서 프로젝트를 엎었던 적도 많아요."

- 힘들 때마다 활동가들을 지탱하게 만들어준 봉사활동 기억이 있나요?
은지 : "지난해에 시민들이 봉사활동에 참여 할 수 있게 야외에 부스를 차려 나눔축제를 했어요. 그때 크레파스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는데 시민들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 '옮김'이 어떤 봉사를 하는 곳인지 알려드렸어요.

또 제 3세계 아이들에게 크레파스와 함께 보내질 메시지를 적는 이벤트도 했거든요. 근데 한 시민분이 그 쪽지에 '커서 여기 있는 봉사자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써주셨더라고요. 그날 정말 힘들었는데 그 글 보고 저희 다 뿌듯했어요. 또 이면지 공책을 받은 친구들이 감사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청운 어린이복지단체에서 보내주셨는데. '우리가 보낸 걸 아이들이 잘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옮김 활동가가 생각하는 봉사의 의미는 뭔가요?
나리 : "봉사하는 과정도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물건을 재가공 하고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봉사잖아요. 옮김의 봉사활동은 아픈 분들 도와드리거나 힘을 많이 들여서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크레파스를 녹이고 비누를 포장하는 소소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활동이에요. 많은 분들이 옮김 활동에 참여 하면 '이런 봉사활동은 처음이다', '재미있어서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해요. 저뿐만 아니라 활동에 참여한 친구들도 예전에는 어렵고 힘든 봉사만을 생각했었는데, 옮김 봉사활동은 그렇지 않아서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시간만 투자하면 재미있고 보람도 느끼니까 재미도 배가 되는 거 같아요.

은지 : "봉사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과정인 거 같아요. 예전에는 제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봉사했어요. 봉사를 하면서도 '내가 지금 봉사를 한다'는 생각에 만족했어요. '이 정도 봉사 하면 됐지', '뭘 더 할 필요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활동을 하고 나서 진정한 봉사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전 사실 처음에 '크레파스를 받고도 시큰둥한 친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었어요. 크레파스를 주면 좋겠지 싶었는데 크레파스 받는다고 모두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남자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을 때 '크레파스를 필요로 하는 애들이 있기는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어서 기부하면 잘 쓰일 물건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고, 줬을 때 잘 쓰는 애들이 있는 반면 이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니깐 더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고 생각도 많아 졌어요."

"2014년 자원봉사대상 받고, 매달 봉사활동 해요"

- 앞으로 옮김의 목표는 뭔가요?
나리 : "예전에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해도 여력이 안돼서 자원봉사센터에서 활동을 제안 할 때만 했어요. 그렇게 조금 조금씩 쌓아오다가 지난해에 '옮김'이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했어요. 상을 받고 나서는 인터뷰 요청도 늘었고 함께 봉사하고 싶다는 기업들의 제의도 많아졌어요. 전에는 1년에 많아봤자 4~5번 하던 봉사활동을 이제는 달마다 꼬박꼬박하고 있거든요. 매달 봉사활동을 하는 게 저희 목표이기도 하고요.

지난해에는 대외적 이미지랑 양적 봉사활동 측면에서 성장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질적으로 내부적으로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국제개발을 하고 자원순환에 일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모든 활동가들이 자원순환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자원순환 뿐만 아니라 국제개발이나 환경 등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하고 보이는 것만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게 저희 목표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는 국제개발 봉사활동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인권, 평화, 환경, 여성, 아동 등 저희가 이런 분야에서 봉사를 하는데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일처리 하는데 시행착오가 너무 많더라고요."

- 청년 봉사활동 단체로 개선하거나 나아가야 할 점이 있다면?
나리 : "저희가 아무래도 젊은 단체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남다르고 추진력도 좀 있다고 봐요. 젊은 NGO단체가 가진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청년단체다 보니 활동가들이 활동하는 주기도 굉장히 짧아요. 그래선지 같이 봉사활동 하자고 제안하는 기업들이 꼭 단체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요. '옮김'은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기업처럼 꾸준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활동가들이 활동하다가 개인사정이 있어서 나가기도 하고 나가게 되면 침체기가 오기도 하죠.

옮김의 최고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옮김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저희가 더 이상 옮겨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순환이 잘 돼, 저희가 할 일이 없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그렇게 될 때까지 저희 단체를 지속 가능성 있게 유지하는 게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닥칠 시행착오를 잘 겪는 게 옮김에게 주어진 몫인 것 같아요."


태그:#옮김, #청년NGO, #청년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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