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기호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칠레와의 FTA를 한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정말 FTA가 우리 경제와 일자리 창출, 삶의 질에 도움이 됐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송기호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칠레와의 FTA를 한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정말 FTA가 우리 경제와 일자리 창출, 삶의 질에 도움이 됐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의 손엔 두툼한 책 여러 권이 들려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기자에게도 익숙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한글본)이었다. 책 겉표지는 이미 많이 헤져 있었다. 송기호 변호사는 또 다른 두툼한 책자를 내밀었다. 지난해 11월 타결된 한중FTA 협정문이었다. 그는 "아직 한글본도 없다"면서 책장을 넘겨 보였다. 이 책자는 그가 직접 통상산업부 홈페이지 등에 올라온 내용을 일일이 내려받아 엮어 놓은 것이다.

송 변호사는 "1100여 페이지나 되는 협정문에 목록도 없고, 이렇게 영문으로 올려놓으면 누가 제대로 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나도 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15일은 2012년 한미FTA가 발효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는 예상대로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미국과의 FTA로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커졌고, 투자 역시 크게 늘었다고 했다. 16일 오전 송 변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제통상전문 변호사다. 정부가 추진해 온 무분별한 FTA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폭로해 온 그였다. 그의 비판과 지적은 철저한 사실 관계 분석과 해석에 따른 것이었다. 한미FTA 발효 직전에 드러난 수백여 곳의 협정문 오역 파문은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고개를 숙였고, 보수신문인 <조선일보>까지도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할 정도였다.

"영문으로만 볼 수 있게 한 중국FTA 내용, 누가 이해하겠나" 

송 변호사는 한미FTA에 대한 평가에 앞서 중국과의 FTA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는 "부실한 한중FTA를 정부가 강행하려 하고 있다"면서 "지금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주 국회에서 이르면 다음달께 협정문에 정식 서명할 것이라고 했는데.
"(고개를 흔들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영문 협정문을 보이며) 아직 정식 한글협정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것부터 국민에게 제대로 공개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 정부 쪽에선 영문본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정식 서명은 한글과 중국어로 된 협정문으로 할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 (영문본이) 1100여 페이지나 된다. 목록도 제대로 없고... 저도 쉽지 않은데,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한미FTA 때도 그랬지만, 정식서명에 앞서 한글본을 가지고, 투명하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특히 지난 주말 중국에서 대외개방과 관련해 중요한 내용이 발표됐다. 이것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송 변호사는 중국어로 표기된 수십여 장의 문서를 보였다. 중국 정부가 향후 자국 시장을 좀 더 개방하겠다는 것과 함께 관련 품목 등을 발표했다는 것. 그의 말을 들어보자.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중국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대외개방 품목과 한중FTA 조문 사이에 상충되는 내용이 없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협정문에) 한국에는 개방하지도 않은 품목이 이번에 새로 포함돼 있는지 등을 따져 봐야죠. 이것이 오는 4월 10일부터 시행된다고 하는데, 정부도 (한중FTA의) 협정문 서명 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식품위생 안전 대책도 없는 이상한 협정문

이어 그는 협정문을 펼쳐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국과의 FTA 협정이 너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 그가 우려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환경 문제와 일자리 그리고 식품안전 부문이다.

송 변호사는 "지리적인 관계나 사회문화적 특성 등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FTA는 다른 FTA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중국과의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으로 누굴 위한 FTA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왜 한중FTA에서 환경문제가 중요한가.
"매년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황사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중국 씨씨티브이(CCTV) 전직 앵커가 만든 환경 다큐멘터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의 환경 오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4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봤다고 하는데, 결론은 석탄과 석유 등 주요 산업에서 환경법 관련 규제가 거의 없거나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중국내 환경 관련 법규나 제도가 미비해서 각종 환경오염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국내로 수입되는 중국산 저가 철강 자재들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석탄 등을 태워서 발생하는 황이나 미세먼지 등을 규제하는 제도 자체가 사실상 없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도 한미FTA 조항에 환경문제로 자국이 피해를 입게 될 경우 (한국 쪽에) 의견을 직접 제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 한중FTA에도 환경관련 부문이 있지 않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들은 매년 중국 본토로부터 날아드는 오염물질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당연히 FTA 조문에 우리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그는 이어 일자리와 식품검역문제 등에서도 한중FTA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중국은 값싼 노동력 뿐 아니라 고부가가치 분야의 노동력도 풍부하다"면서 "협정문대로 발효되면 중국 노동자들의 국내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산 식품에 대한 엄격한 검역 등 식품안전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시 송 변호사의 말이다.

"1100여 페이지가 넘는 협정문 내용 가운데 식품안전 관련 부문은 단 4페이지에 불과해요. 내용도 지극히 식품안전에 대한 선언적이고, 추상적이에요. 이대로라면 중국산 먹거리들은 제대로 된 식품안전 검역을 거치지 않고 무방비로 수입돼요. 게다가 이 먹거리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한중FTA로 해결할 수 없도록 돼 있어요. 국민건강권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죠."

송기호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한중 FTA협정이 환경문제, 일자리, 식품안전 문제에 대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인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한중 FTA협정이 환경문제, 일자리, 식품안전 문제에 대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불투명한 FTA보다 공정한 시장 개방이 우선"

그와의 대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한중FTA의 졸속적인 추진은 이미 예견됐다. 과거 칠레를 시작으로 유럽연합, 미국 그리고 호주, 캐나다 등과의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칠레와의 FTA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정말 FTA가 우리 경제와 일자리 창출, 삶의 질에 도움이 됐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의 결론은 더이상 FTA는 우리 경제의 성장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한미FTA가 발효한 지 3년이 지났다. 정부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와 투자 증가 등을 말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대미 수출 증가가 FTA 효과라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 그런 식이라면 대 유럽연합 수출은 왜 줄었을까. 최근 몇 년 새 미국 경기의 회복이 수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설령 FTA 효과를 봤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동안 일자리가 크게 늘었는가. 성장률은 높아졌는가. 아니지 않나."

그는 한미FTA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불공정 무역보복 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협정체결 때만 해도 정부는 앞으로 양국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이 사라질 것처럼 선전했다"면서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고 강조했다.

상계관세란?
외국의 공급자가 공급국 정부로부터 보조금 또는 장려금을 지급받아 수출경쟁력이 높아진 물품이 수입됨으로 인하여 국내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보조금 범위 내에서 상계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내산업이 공정경쟁을 도모하고 관련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 위키백과
- 현실에선 한미FTA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비관세장벽이다. 작년에 우리나라 세탁기와 철강제품 등에 대해 미국 정부는 반덤핑 상계관세를 매겼다. 미국의 엄연한 불법적인 관세부과였지만, 한미FTA 규정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했다."(관련기사: "수출 늘었지만... 미국 입맛대로 척척 바뀌고 있다")

그는 "한미FTA 발효 4년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개성공단 제품은 (미국으로) 하나도 못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은 향후 남북경제통합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지만 한미FTA에선 사실상 사문화돼 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경제위기 때 정책 자율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점이나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법과 제도 개선 등으로 보편적인 무역협정에서 크게 어긋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정부에 한미FTA를 둘러싼 30개 항목의 문서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향후 투명한 통상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한미FTA 관련 주요 문서는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FTA 문제를 놓고 기자와 꾸준히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의 이야기는 변함이 없다. 공정한 시장 개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나 서민,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만 무차별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기득권층은 뒤로 숨어버리는 차별적인 개방은 안 된다는 것. 그의 마지막 말을 적어본다.

"법률시장만 봐도 그래요. 법무부에서 마련한 시장개방 내용을 보면, 외국계 법률회사들은 국내시장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게 돼 있어요. 다른 업종과 달리 지분투자나 고용 등에서 쉽지 않아요. 변호사인 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김앤장을 비롯한 대형 로펌 등의 기득권은 유지해주면서, 농민이나 노동자 등은 말 그대로 가혹한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잖아요. 과연 누굴 위한 FTA인가요. 한미FTA는 그래서 실패한 겁니다."


태그:#한미FTA, #송기호 변호사, #한중FTA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