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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라(Lukla, 2800m) 공항에서 두 명의 포터와 만났습니다. 트레커들은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카트만두보다 루클라에서 포터를 고용합니다. 네팔리의 항공료는 트레커의 절반이지만 왕복이면 부담입니다.

포터, 다울라 라이와 치링 타망

포터의 이름은 다울라 라이(Dhaula Rai, 32살)와 치링 타망(Chhiring Tamang, 22살)입니다. 히말라야를 닮아 순박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웃으며 "나마스테'라며 인사를 건넵니다. "나마스테"로 화답하지만, 그들의 부실한 복장과 장비가 마음에 걸립니다. 쿰부 트레킹은 보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4, 5천 미터 고지를 일주일 이상 걸어야 합니다. 폭설과 추위를 만날 수 있기에 방한복과 장비는 필수입니다.

순박한 포터, 다울라 라이(Dhaula Rai)와 치링 타망(Chhiring Tamang)
▲ 포터 순박한 포터, 다울라 라이(Dhaula Rai)와 치링 타망(Chhiring Tamang)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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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다울라 라이는 150cm 남짓한 키에 찢어진 등산화를 신고 있습니다. 포터에게 부실한 신발을 지적하며 "Are you ok?(괜찮니?)"라고 물으니 "No problem(문제없어)"이라고 답합니다. 그에게 이번 트레킹은 올해 첫 일거리입니다. 비수기라 포터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루클라 공항 주위에는 일을 찾는 많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의 가녀린 어깨에는 어린 자식과 아내의 생계가 달려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일자리입니다. 등산화를 구입하라고 하니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신발 한 켤레의 가격이 5, 60불이니 삼 일치 일당과 맞먹습니다.

일을 포기할 수도 등산화를 구입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입니다. 쿰부 최고의 교역 중심지이자 트레킹 거점인 남체에서 등산화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팁 대신에 등산화를 사 주면 될 것 같습니다. 표정이 밝아진 그들은 순식간에 짐을 메고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가이드는 트레커와 일정을 함께하지만 포터는 짐을 옮기는 것이 업무이기에 트레커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체력에 맞게 이동합니다.

트레킹을 시작하며

로지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선글라스와 두터운 동계용 장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카트만두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두고 온 것 같습니다. 선글라스로 자외선을 차단하지 않으면 설맹의 위험이 있으며 해발 5천 미터를 넘나드는 쿰부 트레킹에서 보온이 잘되는 장갑은 동상 예방에 필요합니다.

한적한 루클라 시내 모습
▲ 루클라 한적한 루클라 시내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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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라(Lukla, 2800m)는 공항이 있어 쿰부 트레킹의 관문입니다. 여행사, 호텔, 술집, 당구장, 잡화점 등 트레커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과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성수기에는 왁자지껄한 저잣거리지만, 지금은 겨울철 비수기라 찬바람만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쿰부 지역 지도.
 쿰부 지역 지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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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동안 칼라파타르(5550m)와 고쿄리(5360m)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쿰부 히말라야에는 히말라야 8천 미터 급 14좌 중 4곳(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초오유)을 경험할 수 있으며 세계 3대 미봉(美峰)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6896m)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 절약을 위해 루클라까지 항공기를 이용하였지만, 지금부터는 동력을 사용하는 어떤 기계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합니다. 거대한 쿰부 히말라야 심장부를 향해 한 발 한 발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걸을 때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작고 사소한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내 마음에 투영됩니다. 작은 꽃, 나무, 경전이 새겨진 바위, 계곡의 물 흐름까지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쿰주에서 첫번째 접하는 설산 '꽁데'
▲ 꽁데 쿰주에서 첫번째 접하는 설산 '꽁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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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클라를 지나자 멀리 꽁데(6093m) 모습이 보입니다. 쿰부에서 처음 접하는 설산입니다. 산도 사람도 적당한 거리에 바라봐야 아름답습니다. 산속에 들면 산은 보이지 않고, 사람도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트레킹을 통해 '적당한 거리'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를 배웠으면 합니다. 

오늘은 해발 루클라(2800m)에서 시작하여 2500미터 팍딩(2500m)까지 걷습니다. 8킬로미터 남짓한 짧은 거리입니다. 고소 적응을 위해 널널하게 일정을 잡았습니다. 세상에서는 남보다 빠른 것이 자랑이지만, 히말라야에서는 빠른 것이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이 고도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못하면 '고소'란 놈이 찾아와 트레킹을 포기하거나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하는 트래킹
▲ 좁교 사람과 동물이 함께하는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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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딩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비수기여서 트레커보다 생필품을 가득 실은 말이나 좁교(야크와 물소의 잡종)가 무리지어 지나갑니다. 히말라야의 길은 트레커와 주민들이 함께 사용합니다. 실낱같은 길을 따라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어 있으며 삶을 삶이 이어져 있습니다. 겨울철 트레킹의 장점은 고즈넉하다는 것입니다. 인적이 뜸한 산길을 수행하듯 천천히 걷습니다. ​

팍딩까지 좌측에 두드코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줄기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에서 출발하여 갠지즈강을 따라 가장 낮은 뱅골만까지 긴 여행을 합니다. 세상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의 겸손함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보며 걷는 저에게 강물은 끊임없이 만트라(Mantra, 진언(眞言), 참된 말, 진리의 말)를 전하지만, 우매한 저는 깨닫지 못하고 위만 바라보고 걷고 있습니다.  ​

티베트 불교의 영향
▲ 룽다,아 마니석 티베트 불교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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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마니 밧메홈' 6자 진언이 적혀 있음
▲ 마니석 '옴 마니 밧메홈' 6자 진언이 적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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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지역은 대부분 티베트에서 이주한 세르파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가파른 벼랑 위에는 곰파(사원)가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에는 불교 경전을 새긴 마니차(경전이 새겨진 원통형 바퀴)와 마니석(경전이 새겨진 바위)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담장에는 만국기처럼 불교의 경전을 새긴 룽다(장대에 매단 깃발)와 타르초(만국기 같은 깃발)가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삶은 종교이고, 종교가 곧 삶입니다. ​

일가족이 밭에 거름을 주고 있음
▲ 밭일 일가족이 밭에 거름을 주고 있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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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트(2652m) 마을을 지납니다. 마을 어귀 밭에서는 가족이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동네 아낙이 아이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있으며 햇볕 따스한 양지에는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구슬치기와 술래잡기로 겨울 오후를 보내며 마을을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팍딩에서의 첫날밤

팍딩에서 쿰부에서의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로지는 강가 넓은 부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돌과 목재를 이용하여 짜임새 있게 지었습니다. 지붕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있어 온수와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객실에는 샤워장과 충전기가 있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히말라야에서 '핫샤워'와 '충전'은 트레커의 로망입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전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팍딩 숙소 모습
▲ 롯지와 마니차 팍딩 숙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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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마당에 마니차가 있습니다. 로지 샤우니(남자 주인)가 마니차를 도색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정성을 다해 채색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합니다. 점심에 시작한 작업은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해거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마니차에는 불교경전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어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습니다. 샤우니는 어떤 업보가 있기에 오후 내내 경전을 읽고  있는 것일까요?

늦은 밤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에 맑은 종소리가 들립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처럼 맑고 은은한 종소리가 제 마음의 번뇌까지 씻어 줍니다. 마니차 윗부분에 작은 종이 달려 있어 돌리면 종소리가 납니다.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밖에 나와 마니차를 돌리고 있을까요?

그의 바람이 무엇이든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쿰부에서의 첫날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태그:#쿰부, #루클라, #팍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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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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