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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피습으로 얼굴과 손에 자상을 입고 치료를 마친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피습으로 얼굴과 손에 자상을 입고 치료를 마친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퇴원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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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주한미대사 피습 때문에 난리다. 3개월 전 익산의 한 성당에서 사제폭발물 테러가 났을 때, 일부 보수단체들은 테러범을 향해 우국청년이라 치켜세우고 모금운동이며 탄원서까지 올렸다.(관련기사 : 보수단체 "인화물질 투척 학생 위해 1340만원 모금") 하지만 주한미대사 피습이 일어난 지금,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테러근절을 외치며 '테러방지법' 입법까지 주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무소불위인 국정원 권한을 더 한층 강화하는 것으로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야무진 꿈보다 테러근절에 더 효과적인 것은 정치적 유불리에 테러를 악용하려는 얕은 계산을 버리는 것이다. 테러와 같은 증오범죄는 국민을 '분열시켜 지배하려는' 얕은 수의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한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게 되어 있다.

성당에서 벌어진 폭발물테러에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 편향된 경험을 북한 실상인 양 왜곡 과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며 테러피해자인 나와 신은미 선생님을 비난한 박근혜 대통령이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했다면 이번 리퍼트 대사 피습과 관련해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는 일갈이 아니라, '한반도 긴장고조에도 불구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때마다 강행해온' '한미연합사'에게 그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당시 익산에서 폭발물에 화상을 입은 곽군은 서울의 화상전문병원에 한 달이 넘도록 입원해 있었다. 그는 테러 후유증으로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그를 위해 3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와 소송비가 모금되는 감동이 있었으나 그 감동의 주인공 중엔 미 대사 피습에 장탄식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여야 인사들은 없었다.(관련기사 : "양은냄비 테러 때 입은 옷, 아직도 지독한 냄새가...")

오히려 나름 진보 태생인 한 야권 인사는 방송에 나와 곽군의 붕대 감은 모습을 향해 "화상 때문에 감은 건지, 추워서 감은 건지' 의심스럽다는 식의 조롱을 던지기도 했다. 리퍼트 대사의 병실 문턱이 닳도록 줄을 서는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200명 국민들이 모여 앉은 성당에서 터진 폭발물에는 어떻게 그토록 무심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테러 직후, 성당 근처에서 여전히 피신 중인 와중에 서울의 집이 보안수사대에 의해 압수수색 중이라는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관련기사 : "피해자 압수수색? 테러 보호해주겠다는 메시지")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초유의 사제폭발물테러는 언론의 허위 왜곡보도와 분단이 낳은 괴물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리퍼트 대사도 곽군도 한쪽 뺨과 한쪽 손에 큰 상처를 입었다. 둘 모두 별 상흔 없이 완쾌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상처야 치료된다 하더라도, 근본원인을 잡아내고 그를 치유하는 길은 멀어만 보이니, 이대로라면 또 다른 누구의 뺨과 손목이 위태로울지 모를 일이다.

리퍼트 대사의 창상도 곽군의 화상도 '38선'이 낳은 동복의 자식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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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토크콘서트 자리에서 터진 사제폭발물 테러는 물론 주한미대사 피습도 원인은 '분단'이다. 김기종씨는 키리졸브 훈련이 남북대화와 이산가족상봉까지 가로막아 이를 강행하는 미국에 경종을 울리려 했다고 하니, 짧게 보면 키리졸브 훈련이 그 원인이겠다. 그러나 결국 그 훈련을 강행하는 쪽도 훈련을 반대하는 쪽도 분단현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니, 곽군과 리퍼트의 선 자리가 하늘과 땅 차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결국 분단의 제단에 강제로 세워진 희생양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벽두 올해를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이라 규정하고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자고 호소한 바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대다수 언론들이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한다. 신기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나날, 분단 시점도, 분단 원인도, 분단고착화 과정도 모르거나 애써 모르는 척 살아왔는데.

이렇게 우연히, 민족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 언론마저 1945년 8월에 일제로부터 해방도, 국토의 분단도 벌어졌다는 것을 인식한다니 말이다. 흔히들 분단의 직접적 원인처럼 인식하는 한국전쟁이 벌어지기도 전, 아니 일본의 공식적인 항복 선언이 있기도 전, 이 땅에 그어진 38선은 누구의 작품인가.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려면 우리는 결국 1945년 8월 38선이 그어진 그날의 역사를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고사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도 그에 대한 저항도 피의 토벌도 있기 전, 슬프지만 우리 땅은 이미 갈라졌고 오늘 분단 70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혹자는 '느낌표'를 혹자는 '물음표'를 그릴 것이다. 원래 뻔한 이야기는 그렇다.

모든 폭력은 불행하고 불편하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테러로 인한 인명피해 소식을 듣는 것은 일상이 단조로운 이런 감옥의 독방 안에서는 더더욱 괴로운 일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그간 세계 곳곳에 뿌려놓은 분단과 분열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그로 인해 너무 많은 나라가 내전상태에 빠져 있고 너무 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자해적인 테러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상태에 몰려왔다. 미 외교관의 목숨뿐 아니라 분단 때문에 죽어간 한반도의 숱한 목숨도, 남미와 중동의 생명도 다 귀중한 것이다.

리퍼트 대사 뺨의 창상도 곽군의 화상도 70년 전 1945년 8월 그어진 이 땅의 깊은 상처자리 '38선'이 낳은 동복의 자식이다. 근원의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명약은 '평화'다.

2015. 3. 10. 황선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다섯 번째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다섯 번째
ⓒ 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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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퍼트, #테러방지법, #통일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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