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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이전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을 읽은 터라 에세이 자체는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소설은 재미있었지만 엉뚱했고, 성에 대한 지나치게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는 재기발랄했으나 당혹스러움을 자아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도 소설일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면 너무한 걸까?

<버티는삶에관하여>
 <버티는삶에관하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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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이 5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그가 밝혔듯이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한 칼럼과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엮은 그의 인생사 중간 갈무리쯤 되겠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부에 작가의 경험담을, 2부에 사회 정치적인 이야기를, 3부에 언론의 폭력성을, 4부에 영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에세이답게 쉽게 읽어나갔지만 중간 중간 멈춰서 생각을 곱씹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1부에서 '노인, 가을'의 이야기는 가장 문학적으로 읽힌 부분이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 또한 그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자신을 '별로'라고 하는 작가가 자신은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서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흡사 내 얘기를 하는 것 마냥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면서도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가 에세이를 통해 다루는 이야기의 범주는 넓고 다양하다. 자신의 신변잡기부터 사회 정치적인 문제의식과 더불어 언론의 폭력성에 대한 날선 비판까지도. 인간의 욕망과 삶의 페이소스가 담긴 영화에 대한 통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하게 변주된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표준국어대사전 참조). 바로 '당위'에 대한 역설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당위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현실의 많은 억압들이 당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가정에서나 학교 또는 사회에서도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러면 안 돼!' 혹은 '이렇게 해야 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말 뒤에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이유를 불문하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당위는 공격과 저항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비록 그러한 저항의 노력이 승리를 거두지 못할지라도.

당위는 우리의 편견일 수도, 가치관일 수도, 경험적 지식의 소산일 수도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또 강요 당하는 당위는 누군가에게 억압일 수도, 폭력일 수도 있다. 철학자 강신주가 어느 강연에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누구나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고. 단지 그 폭력의 정도만 다를 뿐이라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당위를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과연 우리의 경험과 사유의 산물인지도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시에도 균형과 강조를 위해 수미쌍관의 기법을 사용하듯 이 책도 앞(작가의 말)과 뒤에 버티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벌여 놓아 정작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잊힐까 염려했던지 제목도 '버티는 삶에 관하여'다. 작가는 세상의 당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적 선택이 버티는 삶의 태도에 있다고 본 걸까.  

인생의 좌표라는, 그 단어부터 너무나 거대해 노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세상의 말에 더 이상 무심할 수 없는 나이에 닿아가면서, 결국 버티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것도, 좀 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내는 것. 록키 발보아가 그랬듯이 말이다. 언제나 록키 발보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었다. 마지막이다.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 내시길. (본문 368쪽)

영화 <록키> 속 주인공 록키 발보아는 챔피언 아폴로와의 시합에서 15라운드를 버텨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15라운드에 이르기 위해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버틴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을 생애 최고의 성취로 여긴 록키가 위대해 보이는 것은 그가 시합의 결과가 아닌 과정에 오롯이 집중한 까닭이다. 그는 버티는 것으로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우리는 록키처럼 인생의 15라운드를 버틸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제 막 3라운드가 시작됐다. 쓰러질지 끝까지 버틸지는 순전히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어쭙잖은 위로나 '힐링'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어내는 삶의 자세에 대해 역설한 작가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읽는다. 그는 '끝까지 버티며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끝까지 버티어 내길 바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선택만 남은 셈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반양장, 일반판)

허지웅 지음, 문학동네(2014)


태그:#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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