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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청의 엔젤존/엔젤숍 사업
 강동구청의 엔젤존/엔젤숍 사업
ⓒ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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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소셜벤처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경제구조 속에서 벤처를 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모한 일인 데다가, 여기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셜미션까지 고민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과연 이들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소셜벤처를 시작하려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지만 어쨌든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열정적인 사회적 기업가들. 다행히 사회에는 이런 사회적 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엔젤 투자자'라고 부른다.

엔젤 투자는 1920년대 초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유래된 용어로, 당시 무산 위기에 처한 공연을 후원해주는 사람들을 천사(angel)에 비유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엔젤 투자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는데,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말 벤처 붐과 함께 사용되었다.

엔젤 투자자들은 '묻지 마 투자' 혹은 자금 공급이라는 소극적 역할에 그쳤던 일반 투자자들과 달리, 기업 경영에 대한 조언이나 사업 노하우를 제공한다. 이는 결국 엔젤 투자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인데, 일반 투자자들의 목적이 금전적 이익이라면 엔젤 투자자들의 목적은 그 기업의 성공이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나 사회적 의미 때문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엔젤 투자자들은 무엇보다 경영자의 진정성을 주시하며, 기업의 사회적 기여도를 중시한다. 사회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 후배들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돕고자 한다. 그 중에는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 기업가들도 많은데, 그들은 후배 기업가들을 보며 자신의 그 시절 모습을 떠올리며 열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요컨대 엔젤 투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셜벤처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이다. 내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어야만 투자를 하는 이 척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믿고 디딜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강동구의 엔젤존/엔젤숍 지원사업

엔젤존2호 워터팜
 엔젤존2호 워터팜
ⓒ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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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지금 막 설립된 소셜벤처 기업들. 문제는 그들이 앞서 언급했던 엔젤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경기가 어려워 투자 자체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아직 사회적경제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 막 창업된 기업들을 도울 만한 선배기업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셜벤처 기업의 창업을 마냥 행정의 지원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행정의 직접적 지원은 국민의 세금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확실한 결과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세금을 특정 기업에다가 몰아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최근 소셜벤처와 관련되어 정부의 많은 지원사업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2013년부터 서울시 강동구에서 진행하는 엔젤존/엔젤숍 사업은 눈여겨 볼 만하다. 위 사업은 강동구청이 나서서 지역 내 숨은 공간(유휴 및 공유)을 찾아,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사회적경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도록(엔젤존),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그곳에서 교육, 학습할 수 있도록(엔젤숍) 돕는 사업인데, 행정의 직접적인 지원은 최소화하면서 지역의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공간만큼 사회적경제 조직들에게 필요한 자원도 없지 않은가.

사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공간들이 비어 있다. 대형점포의 영업장, 종교단체와 공공기관의 회의실, 야간 영업 위주의 뷔페, 카페 등 놀고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그 공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엔젤존/엔젤숍 사업은 바로 이와 같은 공간을 구청에서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공간이 필요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에게 이어줌으로써 사회적비용을 절감한다. 구청은 사회적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 의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구청이 제공한 공간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활동하면서 그 지역의 경제활동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강동구 엔젤존 2호점

지난 4일 서울시 동부기술교육원에서 열렸던 엔젤존 개소식은 바로 위와 같은 사업의 두 번째 성과물이다.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시 동부기술교육원은 평소 직업학교 운영 외에 창업지원센터 운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구청에서 진행하고 있는 엔젤존 사업을 접한 뒤 그 취지에 공감하여 사무실의 일부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동안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던 동부기술교육원이 엔젤존 사업을 계기로 강동구와 더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엔젤존 2호점에 입점하는 업체는 다름 아닌 워터팜이다. 2013년 강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진행했던 '희망별동대' 사업에 '국내에서 낭비되는 물을 아껴 그 돈으로 물이 부족한 제3세계에 우물을 판다'라는 모토로 지원해서 소셜벤처의 기반을 닦은 기업이다.

워터팜의 사무실
 워터팜의 사무실
ⓒ 강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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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청은 엔젤존에 입점하는 업체에 대해 ▲ 무보증금 ▲ 임대료는 무료이거나 시세보다 현저히 낮아야 된다(최소 1년 무료) ▲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과금은 자부담(경우에 따라 협의) ▲ 협의 없이 건물소유주가 스타트업 기업을 내보낼 수 없다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워터팜의 경우 무보증금에다 임대료와 공과금 모두 무료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워터팜이 한 단계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덕분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워터팜의 박찬웅 대표는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본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관련기사: 샤워하는 게 죄스럽다면... 저에게 오세요) 이를 계기로 여성미래센터 등 전국의 단체/기업들과 협약을 맺게 되었다. 이후 2015년 1월 '서울시 에너지 나누는 이로운 기업'에까지 선정되어 현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박찬웅 대표는 이번 강동구 엔젤존/엔젤숍 사업이 워터팜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확실한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공간을 얻으려면 적지 않은 자금이 들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기업(스타트업)은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큰 문제인데, 저희는 출발이 좋은 셈이지요. 다른 소셜벤처들도 이와 같은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업비는 그래도 다양한 지원사업 등을 통해 그나마 얻을 수 있는데, 인건비나 임대료 같은 고정비는 지원받기 어렵거든요. 결국 그 모든 비용을 제 사비로 충당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수익을 내야 한다는 건데 소셜미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기업에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물낭비와 물부족으로 발생하는 물 불균형에 주목하는 기업
▲ 워터팜 소개 자료 물낭비와 물부족으로 발생하는 물 불균형에 주목하는 기업
ⓒ 워터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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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소셜벤처,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을 번듯이 키워내려면 사회 전체가 힘을 써야 한다. 대기업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이 기형적인 경제 구조 속에서 작은 돈이라도 모아, 돈이 없으면 네트워크를 통해서라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

왜 내가 괜히 그들을 도와야 하냐고? 그것은 우리 모두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득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대신 좀 더 많은 열정을 쏟는 사회적 기업가 아니던가.

워터팜의 성공을 기원하며, 강동구의 엔젤존/엔젤숍 같은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태그:#강동구 엔젤존엔젤샵,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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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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