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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덕이의 유치원 졸업 당시의 사진입니다.
 덕이의 유치원 졸업 당시의 사진입니다.
ⓒ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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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3주차 언어치료를 다녀온 덕이가 저녁을 잘못 먹었다는 말을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다. 무슨 일일까 싶어서 덕이가 자고 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덕이는 자고 있지 않았다.

고모 : "덕아, 어디 아프니?"
덕 : "아니."
고모 : "저녁 식사를 아주 조금 먹었다고 할머니께서 그러시던데 무슨 일 있는지 궁금한데?"
덕: "괜찮아요."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왠지 불편한 듯 보였으나 덕이는 괜찮다고만 한다. 나 또한 덕이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추측이나 선입견으로 앞질러 말하는 것을 자제했다.

덕이가 아직은 생각과 감정에 대한 의사 표현을 상황에 적절하게 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덕이와 관련된 것은 덕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는 덕이를 존중하는 태도이며,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덕이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섣부른 내 생각으로 더하고 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덕이를 받아들일 때 덕이의 변화에 도움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짐 덕분에 덕이와 대화하면서 내 자신에게 길들이고 있는 긍정적 특성 하나는 '오래 참음'이다. 사실 나는 무슨 일이든 그리 오래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덕이와 대화하면서부터는 '오래 참음'을 훈련하게 됐다. 어려운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덕이에게 질문을 하고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다그치거나 내 생각과 내 추측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그것은 덕이와 내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덕이의 발전도 돕지 못했다.

그날 밤에도 일단 덕이를 재우고 덕이를 언어 치료에 데리고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봤다. 친구가 하는 말. "덕이가 전철을 타거나 버스, 또는 택시를 타면 바로 잠든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 내 차를 탔을 때도 덕이는 자주 잠들었다. 내 딴에는 재밌다고 생각해 동요나 동화를 차 안에서 들려줘도 덕이는 잠을 잤다.

다른 아이들 하물며 다른 조카조차도 버스, 지하철, 택시, 자가용을 탄다고 해서 그리 쉽게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 뭔가 덕이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구나' 싶었다. 다음 날 전화로 서울대 소아 정신과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것도 일종의 차 멀미와 같다고 알려주셨다. 정확히 알게 되니까 안심이 됐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친구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도 언어 치료를 다녀온 덕이가 기운이 없어 보여 씻긴 후 재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나는 또 친구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하는 말은 "덕이가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나와 각별한 친구고, 덕이를 어려서부터 몇 번 만난 적 있지만, 친구와 덕이 단 둘이서 언어 치료 50분과 오고 가는 90분씩 약 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덕이로서는 어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덕이와 소통... "말하기가 어려웠어?"

아,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아,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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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에게 물어 보았다.

고모 : "덕아, 창예 고모가 어렵니?"
덕 : (아무 반응이 없다.)
고모 : "덕이가 고모 없이 창예 고모와 둘이서 다니려니까 신경이 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니?"
덕 : (아무 말이 없다)
고모 : "덕아, 고모가 덕이를 언어 치료에 데리고 다니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니?"
덕 : "응."
고모 : "이해해줘서 고마워. 덕아, 창예 고모에게 들었는데 덕이가 차 안에서 잠들어서 창예 고모가 덕이를 업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덕이가 등에서 잠잘 때 정말 사랑스럽다고 하던데?"

덕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용히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과자에 대해 물어 보았다.

고모 : "덕아, 나와 함께 다닐 때마다 빼빼로를 사 먹었는데 창예 고모와 함께 빼빼로 사 먹어 봤니?"
덕 : "아니."
고모 : "빼빼로 먹고 싶다고 말해보지 않았니?"
덕 : "응."
고모 : "혹시 창예 고모에게 말하기가 어려웠어?"
덕 :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 : "그랬구나, 나라도 아마 덕이였으면 창예 고모가 어려웠겠다. 옆에 나도 없는데, 그치?"
덕 : "응."

이거였구나! 언어 치료를 받으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에 보였던 가게들, 그 안에 있던 빼빼로 과자를 사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못하고 그냥 다녔던 것이었다.

언어 치료실에 보내기만 한다고 해서 당연히 1:1 대화가 자연스럽게 쑥쑥 좋아지리라 여기지 않았으나, 그것을 집에서 나와 함께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일단 창예 고모와 언어 치료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대화를 덕이와 함께 연습해 봤다.

"창예 고모, 나(저)는 빼빼로 먹고 싶어요"라고 말해볼래? 그러자 덕이가 나를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창예 고모 나 자고 싶어요, 나 힘들어요, 나 업어주세요, 나 과자 사고 싶어요, 목 말라요"와 같은 표현들을 내가 창예 고모라고 생각하고 하게끔 했더니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는 친구에게도 덕이와 이렇게 연습한 것을 말해줬다. 그 친구는 "알았다, 진작에 그렇게 해볼 것을 못했다"고 미안해 했다. 별말씀을, 착한 친구!

그날 밤 덕이는 새근새근 잘 잤다.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나를 일깨운다.

덧붙이는 글 | 자녀가 부모를 가까이 가기 쉽다고 여긴다면 부모의 훌륭한 특성들을 자녀들은 본받으려 할 것이고, 부모의 특성을 통해 자녀가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옥숙 생각



태그:#편안함과 불편함, #겸손과 오만, #인정과 이기적, #화해와 대화, #조화로움,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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