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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골마을은 마을 지형이 활모양 같다 하여 활골이라 불린다.
 활골마을은 마을 지형이 활모양 같다 하여 활골이라 불린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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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남이면 활골마을. 아내와 함께 시골로 내려온 지 정확히 1년 지났다. 처음 이곳에 와서는 급하게 달리던 모든 것들이 일순간 정지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속도를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도시의 속도감과는 여전히 다르다. 때때로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기도 하니 단순히 '느리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시에서 시골로 공간을 이동한 시간 여행자처럼 조금씩 시차에 적응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전입신고를 위해 찾은 면사무소에서 직원은 '왜 시골로 이사 왔는지'를 물었다. 낯선 도시인에게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집 주소를 말하자 누구 집인지, 마을에 연고가 있는지를 거쳐 농사를 지을 것인지, 뭘 하고 살 건지로 질문이 이어졌다. 전입신고는 무사히 끝났지만 질문은 그 이후로도 어디에서나 계속되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물론, 우체국 집배원이나 택배 배달원도 우리를 궁금해했다.

많은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까 – 혹은 버틸까 - 하는 것이었다. 처음 내려와 혹독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추워서 다시 서울로 도망가면 안 되니 마을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불을 때워 주겠다는 농담을 건넨 어르신도 계셨다. 집주인인 선배가 우리 근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이야기를 3개월이 지난 후에 듣고 함께 웃었다.

1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살았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버텨낸 시간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일말의 자신감이 교차한다.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이겨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지난 한 해 동안 그러했듯 조금씩 배워갈 것이다.

시골에서의 삶은 자기 주도형 학습

화목 난로에 사용할 장작을 쪼개다 보니 겨울이 다 갔다.
 화목 난로에 사용할 장작을 쪼개다 보니 겨울이 다 갔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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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급행열차'에서 내려 시골로 들어오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던 삶에서 벗어났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은 새로운 노동으로 채워졌다. 출근과 퇴근이 따로 없는 삶은 자유롭지만 한동안 부자연스러웠다.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 후 주어진 '자유'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쇼생크 탈출>의 노인이 이해되었다. 그 어색함에 적응하기 위해,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도시에서 살던 관성이 하루아침에 멈추지는 않았다. 제철음식 나물밥상이 맛있지만 한 번씩 생각나는 햄버거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웠고 읍내에 있는 금산 유일의 햄버거 가게가 단골집이 되었다. 사소하게는 이런저런 일로 방문하는 분들 접대용 음료수를 늘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시골에 살려면 냉수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어느 분의 충고를 듣고는 꼭 뭔가 사서 준다는 것이 도시적인 강박관념 아니었을까 뒤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알아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추진해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의 삶이 시간표가 잘 짜인 공립학교에 가깝다면 시골에서의 삶은 자기 주도형 학습이 필요한 홈스쿨링이다. 작물을 제때 심기 위해서는 미리 종자와 밭을 준비해야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나무를 하고 장작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누구도 무엇을 하라거나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봄은 이미 문턱에 와 있다

활골에서의 1년을 기념하면서 오가는 분들 편히 쉬시라고 밤나무 벤치를 만들었다.
 활골에서의 1년을 기념하면서 오가는 분들 편히 쉬시라고 밤나무 벤치를 만들었다.
ⓒ 조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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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전에 하던 일을 시간제로 하면서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공을 살린 방과후 교사나 문화원 강사 같은 자리는 가욋일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쉽지 않았다. 예산이 빠듯한 기관에서는 한 과정 개설이 다른 과정 폐지로 이어지니 잘못하면 누군가의 자리를 뺐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더 조심스러웠다.

지출이 큰 도시와 달리 시골에서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텃밭을 일구면서 줄어든 식료품비는 원래 그 비중이 크지 않아 효과가 미미했다. 오히려 차 없이 생활할 수 없는 환경이라 서울에서는 없던 차량유지비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맞추면서 사는 데 지장 없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도 나쁘지 않겠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것도 괜찮다.

시골에서 한 해를 보내보니 다음 한 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와 달리 좀 불편하고 힘든 일은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삶의 재미를 찾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소박하고 고즈넉한 삶 찾아 내려온 것 아니던가. 며칠 전 아침에도 활골에 눈이 내렸다. 산골이라 해가 떨어지면 매섭게 춥기도 하고 간혹 영하의 날씨로 내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봄은 이미 문턱에 도달해 있다. 며칠 전, 1주년을 기념하며 텃밭에 상추씨를 뿌렸다. 다시 시작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피천득 '봄')

덧붙이는 글 | '활골닷컴'(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연재됩니다.



태그:#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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