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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가 능숙한 솜씨로 배를 견인하고 있다.
 젊은 부부가 능숙한 솜씨로 배를 견인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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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평소대로 베란다로 나간다. 심호흡하면서 굳어진 몸을 풀며 하루를 시작한다. 포스터 해변과 멀리 배링톤 국립공원(Barrington National Park)의 겹겹이 싸인 산등성이는 오늘도 멋진 모습으로 나를 매혹한다. 매일 아침 보는 바다와 산이지만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은 멀리 산등성이 사이에 구름이 낮게 끼어 있다. 자그마한 산들이 섬처럼 구름 위에 떠 있다.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카메라에 담는다.

아내가 베란다로 나와 생일을 축하한다. 시골로 이사 와 처음 맞는 생일이다. 아내와 단둘이 조촐하게 맞는 생일이다. 시드니에 있다면 가까운 친구를 불러 조금 떠들썩한 하루를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도 이웃이 있지만, 생일이라고 초대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럽다.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하고 컴퓨터에 앉아 인터넷을 뒤적이는데 전화가 온다. 골드코스트(Gold Coast)에 사는 큰손녀의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작은 손녀도 보고 싶다며 '해피 버스데이'를 외친다. 딸보다 손녀가 더 보고 싶어진다. 친구들도 손자 손녀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만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내 생일은 13일인데 금요일과 겹치는 경우가 있다. 호주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마의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생일이 되는 것이다. 올해 생일이 금요일이다. 아내는 좋지 않은 날이 생일이라고 말은 하지만 표정은 밝다. 

평소와 다름없이 동네 사람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오후가 되어 아내를 따라 나선다. 포스터(Forster)에 새로 개업한 식당으로 향한다. 얼마 전에 동네 여자들과 갔었는데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는 맛있고 풍성하게 주는 식당을 택했으나 요즈음은 분위기로 식당을 택한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터에 들린 김에 간단한 쇼핑도 한다. 쇼핑센터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초밥집이 있다. 얼마 전에 개업했다. 한국사람 보기 어려운 곳에서 초밥을 팔고 있으나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손님이 제법 많다. 내가 이민 왔을 때만(1986) 해도 생선을 날로 먹으면 미개인처럼 보던 호주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선회를 서투른 젓가락으로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해밀톤(Hamiltons)이라는 식당에 들어선다. 포스터의 대표적인 다리 근처 바닷가에 있는 식당이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장식되어 있다. 오늘이 '블랙 프라이데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백포도주 한 병 얼음에 놓고 식사한다. 양은 많지 않으나 멋을 낸 생선 요리다. 조금은 떠들썩한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음식을 대하니 생일이라는 실감이 난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단출한 생일 파티(?)를 한다.

음식 맛을 돋우는 적당히 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끝내고 포스터 제방으로 향한다. 자주 찾는 곳이다. 돌고래가 항상 노닐며, 생선 손질하는 곳에는 수십 마리의 커다란 펠리컨이 모이는 곳이다. 오늘은 고깃배가 없어서 그런지 펠리컨 3마리가 한가하게 서성이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돌고래가 먹이를 찾아 오늘도 바다를 휘젓고 있다. 제방에는 아빠와 딸이 돌고래를 구경하며 낚시하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배가 제방 사이를 고속으로 들어온다. 낚시하고 들어오는 배일 것이다. 배꼬리에 이는 물거품이 영화 장면 같다. 선착장에 들어선 배를 구경한다. 중년의 부부가 타고 있다. 배에서 내린 여자가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온다. 남자는 배를 익숙한 솜씨로 여자의 도움을 받으며 트레일러에 싣는다.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니다. 생선 손질하는 것을 보고 싶으나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눈길을 제방 쪽으로 돌린다. 돌고래는 아직도 자맥질하며, 제방은 큰 파도를 막으며 항구를 지키고 있다.     

식후의 포만감을 달래며 아내와 함께 제방을 걷는다. 육십을 넘기도록 살았으니 오래 살았다. 지난 삶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간다. 이제는 삶을 정리할 때라는 생각을 다시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삶을 위해 소유해야 하는 것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이제는 더 많은 소유를 위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평소에 하던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자유로운 삶,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펠리컨(Pelican), 오늘은 고깃배가 적어서 인지 펠리칸도 많지 않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펠리컨(Pelican), 오늘은 고깃배가 적어서 인지 펠리칸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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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호주한국일보에 연재하는 것을 한국에 사는 독자를 위해 수정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격주로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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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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