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 장예모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을 봤다. 중국 문화대혁명기, 공안에게 쫓기던 남편이 눈앞에서 체포된다. 몇 년 후, 기다리던 남편이 돌아오지만 헤어지던 순간의 충격으로 기억이 망가진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오히려 아내에게 남편은 자신을 감시하며 괴롭히던 공안으로 보일 뿐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끊어놓은 이들 부부의 삶이 애절한 로맨스와 어우러져 진한 잔상을 남겼다. 영화를 본 후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아내 역할을 한 공리의 허망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개구리> / 모옌 / 민음사 / 2012
 <개구리> / 모옌 / 민음사 / 2012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지난주엔 문화대혁명기 직후 중국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을 읽었다. 모옌의 장편소설 <개구리>를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난 것이다. 모옌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 소설인 <붉은 수수>를 쓴 작가이다. <개구리>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이 주요 배경이다.

1949년 중국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신중국' 시대가 열린다. 당시 5억 4천여만 명이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1969년 8억 명을 넘겼다. 20년 만에 약 3억 명이 늘어난 것이다. 심각성을 느낀 마오쩌둥은 1971년 인구증가 억제 지표를 국민경제 발전계획에 추가하면서 계획생육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흔히 계획생육이라고 하면 한 부부 당 한 자녀만 낳을 수 있는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중국의 계획생육은 만혼(晩婚), 만육(晩育), 소생(少生), 우생(優生)을 골간으로 한다.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고, 적게 낳고, 건강한 아이를 낳자는 것이다.

중국은 여자 20세, 남자 22세를 결혼 연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보다 3년 이상 늦게 결혼하는 것이 '만혼'이고, 여성이 24세 이후에 출산을 하는 것이 '만육'이다. 만일 20세에 출산하는 경우, 100년 만에 5대를 낳게 되지만, 25세로 출산 연령이 늘어날 경우 1대가 줄어 4대만을 출산하게 되는 것이다.

우생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건강한 아기를 낳자'는 것이지만, 이 정책에 의해 근친결혼 뿐만 아니라 유전성 질환자와의 결혼이 금지되고, 나중에는 국가번영과 민족발전에 이바지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미로까지 확대되면서 대표적인 중국의 반인권 정책으로 지탄을 받게 된다.

이 가운데 1980년부터 시행한 '소생'이 바로 한 부부가 한 자녀만 낳게 하는 '독생자녀' 정책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계획생육도 이 부분에 집중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서양 의학을 배운 중국 1세대 산부인과 의사인 자신의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네 통의 긴 편지로 나눠 쓴  형식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실제 자신의 고모 이야기를 이 소설 속에 담았다.

계획생육 이전, 산모를 괴롭히는 나이 든 산파를 내동댕이치고 피 묻은 아이를 받아 껄껄 웃던, 산모와 생명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젊고 활달한 고모가 계획생육 정책을 집행하는 책임자로 임명된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산부나 가족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돌연 모든 것이 뒤바뀌면서 그녀는 병원에 끌려온 임부의 낙태 수술을 해야 했고 그녀들의 통곡 소리와 그 가족들의 욕설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녀의 깊은 마음 속 고통과 모순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었다.' - 서문 중에서

'고모'와 동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늘 긴장된 상태로 살아간다. 5대 독자의 아내가 남자 아이를 낳기 위해 몰래 강을 타고 도망가다가 숨지고, 주인공의 아내도 둘째 아이 낙태 수술 중 과다 출혈로 세상을 뜬다. 망자의 가족은 고모를 살인자 취급하고, 자신의 눈앞에서 여러 차례 생명을 떠나보낸 고모는 결국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하며 정신을 놓아버린다.

영화 <5일의 마중>이 국가의 폭력을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비시켰다면, 소설 <개구리>는 믿기 어려운 현실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 녹여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대화하듯 펼쳐내는 이야기에 점점 빨려 들어 서둘러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산아제한 정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결코 그것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국가 또는 권력 집단은 언제 어디서든 개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사회 질서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저출산이니 아이를 낳으라 하고, 양육비는 책임지지 않고, 부자세 대신 소득세를 늘리고, 국정원이 댓글을 달고, 하루아침에 담뱃값을 올린다.

폭력적인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감내하거나 그냥 지켜만 보는 이유는, 국가가 내세우는, 이보다 더 무질서하고 불행한 미래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국가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막연한 공포에 질려 조용히 순응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개구리>가 들춰낸 국가 '폭력'의 속살을, 마냥 가슴 아프게만 받아들여선 안 되는 이유이다.


개구리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2012)


태그:#개구리, #모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