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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tmere 흑백 필름으로 담은 사진
▲ 송파구 마천시장 Kentmere 흑백 필름으로 담은 사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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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35mm 필름 1롤 36장 혹은 24장의 가격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흑백 필름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컬러 필름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ISO(감도)도 100 이상의 필름들이 등장하면서 어두운 곳에서도 셔터 속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컬러 필름의 가격은 당연히 흑백 필름보다 비쌌다.

더군다나 카메라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소풍을 가거나 졸업식을 하면 사진사들이 따라와 제법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대였으니 사진은 다소 희소성이 있는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고 일반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사진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의 급속한 발전은 '셀카의 시대'를 가져왔고, 노래방으로 전 국민이 가수가 된 것처럼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전 국민이 사진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옛것에 대한 향수와 나름 고생해 가며 익혔던 카메라에 대한 추억들을 간혹 떠올리게 된다. 그때마다 거의 잠자다시피한 필름 카메라들을 깨워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 충동으로 한 달여 전 흑백 필름 4롤을 구입했다.

사람 냄새 나는 사진

흑백필름으로 담긴 컬러 세상도 아주 오래된 풍경같다.
▲ 인사동 쌈지길 흑백필름으로 담긴 컬러 세상도 아주 오래된 풍경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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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풍경
▲ 인사동 인사동 쌈지길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풍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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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지만, 전부 합쳐 38번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36번까지가 1롤이니 이제 겨우 한 통을 찍은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로는 수십 컷 찍는 것이 일도 아닌데 필름 카메라는 그렇게 쉽게 눌러지지 않는다. 단순히 기동성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품이 많이 들어가고 흔하지 않은 것이니 나름 정성껏 사진을 담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한 달이 지나도록 겨우 1롤과 2장밖에는 찍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흑백 필름을 현상하는 사진관을 찾는 일이다. 충무로에는 흑백 필름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관들이 지금도 영업하고 있다. 수소문하여 25년째 흑백 필름만 작업한다는 'Ansel Adams'라는 사진관을 찾았다. 필름 1롤 현상하는데 4천 원, 스캔하는 데 4천 원이다.

인화는 가장 사이즈가 작은 것이 3천 원씩이니 현상 결과물을 보고 선택해 꼭 인화할 사진만 인화하는 것이 좋다고 돈 욕심없는 주인장이 설명하다. 물론 디지털 인화로 하면 백 원 단위로도 가능하다. 수작업으로 인화하면 최소 10배 이상은 더 비싼 것이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수작업으로 인화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업 결과물은 디지털 인화와 비교 불가다. 디지털 인화는 줄 수 없는 흑백이 색감과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래서 필름 구입부터 현상과 인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도 간혹 이렇게 필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다가 필름 작업, 그 중에서도 흑백 필름 작업은 제법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맥은 끊기지 않겠지만, 작업하는 이들이 적다보니 그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대가를 주려면 더 비용을 내야 할 것이다.

인사동 쌈지길을 흑백 필름으로 담다.
▲ 쌈지길 인사동 쌈지길을 흑백 필름으로 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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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거리 풍경(2015년 2월 중순)
▲ 인사동 인사동 거리 풍경(2015년 2월 중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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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으로 식구들을 담고, 거리의 풍광들을 담았다. 아내는 흑백 사진 속 자신이 마치 20대 소녀같다고 좋아한다. 흑백 사진이 삼십 년의 세월을 뒤로하게 한 것이다. 아이들도 아내 사진을 보더니 둘째 딸하고 엄마가 판박이라 하고, 아들은 자기의 사진을 보더니만 나의 판박이라고 한다.

흑백필름으로 작업을 한 것은 거의 30년 만의 일이다. 필름 카메라일때에도 주로 컬러 필름으로 작업을 했고, 디지털 시대에 간혹 아날로그가 그리워 필름 작업을 할 때도 컬러로 작업을 했을 뿐이었다. 필름에 더해 카메라도 어떤 기종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불편한 만큼 추억의 깊이는 더해진다. 그래서 이 맛에 간혹 고비용이 드는 데다 오래 기다려야 하고 불편함에도 필름으로 사진 작업을 하는 것이다.

더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름이 주는 느낌은 디지털이 갖고 있진 못하다. 그것이 어쩌면 과학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소박하고 다소 거칠지만 따스한 사진은 세련된 디지털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다. 편해졌고,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쉽게 휴지통에 버려지는 디지털 사진의 운명은 모니터 혹은 저장 장치 안에서 잠을 잘 때가 많다.

인사동 골목길
▲ 골목길 인사동 골목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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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세서리를 고르고 있는 가족들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 인사동 악세서리를 고르고 있는 가족들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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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름 사진은 현상뿐 아니라 인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것이 살아 있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너무 약사빠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사람 됨됨이를 많이 잃어버렸다. 마음이 강퍅해져 남의 불행에 무감각하고, 더 나아가 자기의 불행이 아니면 좋아라 아픈 이들을 더 아프게 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사람 사는 세상 같지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이 되려면 좀 천천히 느릿느릿 살아갈 줄 알고, 좀 오래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며, 조금 손해를 볼 줄도 알고, 소박한 것을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뭔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런 것 하나 쯤은 생활이나 취미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시인들에게 어쩌면 필름 카메라가 그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있는 사진들은 Kentmere 흑백 필름으로 작업하여 현상한 후 스캔한 것입니다.



태그:#흑백 필름, #흑백 사진, #인사동, #마천시장,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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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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