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야폴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전망대인 푼힐을 거쳐 ABC 코스로 합쳐지는 촘로까지 트레킹코스
▲ 트레킹코스 나야폴에서 출발하여 최고의 전망대인 푼힐을 거쳐 ABC 코스로 합쳐지는 촘로까지 트레킹코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출발이다

10일간 일정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이다. 서둘러 짐을 꾸려 가이드와 포터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가이드(성껄, 36세,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와 포터(사갈, 22세, 성껄과 같은 고향 출신)가 기다리고 있다. 두 번째 만나는 성껄은 벌써 낯 익어 반갑다. 오늘부터 앞으로 열흘 동안 우리를 도와 줄 지팡이다.

경비는 하루에 3000루피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3만(약 30만원)루피를 준비했다. 간식은 감 말린 것과 비타민C, 찹쌀과자, 초콜릿 등 집사람 친구들이 여행을 떠나올 때 싸준 것들과 참깨, 콩가루를 섞어 만든 미숫가루, 비상식으로는 라면, 누룽지 등을 챙겼다.

트레킹 시작점인 나야폴까지 택시로 갔다. 이곳에서 짚에 합승하여 자동차로 갈 수 있는 힐레까지 갈 생각이었다. 나야폴까지 택시로 가서 힐레까지는 지프차에 합승하는 것이 경비를 절약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이 계획은 현실감이 없는 처사였다.

지프 운전수는 고객 한 사람을 태우나 8명을 태우나 자기가 받는 돈의 금액은 2000루피로 같다. 정원인 8명을 태우고 짐의 무게까지 합치면 자동차에 무리가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합승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사고방식이다.

나야폴에서 도보로 출발하면 티켓퉁가에서 숙박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다음날 일정이 빠듯하여 고라빠니에서 푼일 일몰을 보기 힘들다. '히말라야에서 차량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량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는 안내책자의 내용이 생각나 힐레까지 지프로 가기로 했다.

네팔의 지프차 길은 세상의 자동차 길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지 않는 길이 아닐까 싶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차 안의 뭔가를 잡고 있지 않으면 머리를 찧기 십상이다. 길에서 자동차를 수리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런 길이라면 몇 번만 다녀도 차가 망가질 것 같다.

비레탄티에서 팀스와 퍼밋을 제시하고 티켓퉁가를 거쳐 힐레에 도착했다. 지프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니 이미 오지 산 중으로 들어와 있다. 이곳부터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돌계단 길이다. 한 켠에는 나귀와 말 등에 얹을 수 있도록 같은 크기의 보따리에 담은 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힐레에서 오늘 숙소인 반단티까지는 약 9km 정도의 거리였고 경사가 급한 돌계단 길이었다. "천천히 천천히"를 음률에 맞춰 노래같이 부르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돌계단을 오른다. 힐레 고도가 1400m이고 반단티가 2200m이니 800m 높이의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짚에서 내려 첫째날 숙소인 반단티까지 가는 길은 돌계단 길이었고 그 겟수를 대강 헤아랴보니 족히 4000개는 될 성 싶었다.
▲ 돌계단 길 짚에서 내려 첫째날 숙소인 반단티까지 가는 길은 돌계단 길이었고 그 겟수를 대강 헤아랴보니 족히 4000개는 될 성 싶었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다. 2시간이나 걸었을까? 집사람이 몹시 힘들어 한다. 나도 눈 앞이 아른거리고 중심잡기가 힘들다. '히말라야에서는 차로 갈 수만 있다면 차로 가야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집사람 배낭을 성껄에게 넘기고 아무런 생각 없이 쉬고 걷고 만을 계속한다.

'더는 못 가겠다' 싶어 주저앉아 온 길을 되돌아 보면 산비탈에 자리한 작은 산골마을이 아스라하다. '장하다'는 생각에 또 올라갈 힘을 얻는다. 울라리 마을에 이르자 12시다. 점심을 하기 위해 롯지로 들어섰다. 롯지 식당은 산비탈에 기둥을 세워 만든 정자 같은 곳이라 멀리 볼 수 있어 온 길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은 산비탈에 듬성듬성 붙어있는 집에서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부럽기도 하고 너무 힘들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점심 식사 메뉴로 모모(만두)와 달걀 중탕을 시켰더니 3시간 돌계단을 오르면서 소진한 에너지를 보충하기엔 양이 너무 적다. 더 시킬까? 망설이고 있는 데 옆자리 성껄과 사걸의 메뉴는 달밧(네팔전통음식)이다. 커다란 접시에 가득 채운 밥과 감자 등이 푸짐하다. 집사람도 식사량이 부족했는지 우리도 저녁에는 달밧을 먹자고 하면서 부러워하는 눈치다. 추가로 달밧을 주문하기엔 너무 많은 것 같아 간식으로 가져온 것으로 보충하고 갈 길을 나섰다. 오후 1시 20분이다.

'걷고 오르고'가 힘들어지니 정신을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다 보니 생각이 단순해진다. 단순한 생각은 텅 빈 공허함 같은 것이라 부담이 없어 좋다. 수행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쉬엄 쉬엄 왔지만 4시가 되니 오늘의 숙소가 있는 반단티 마을에 도착했다. 롯지로 들어서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잠자리는 각오했던 것보다는 나았지만 좁고 조악하다. 공동으로 쓰는 샤워장에는 옷을 벗어 걸만한 곳도 없고 물은 미적지근하다. 샤워하는 동안에 전깃불이 꺼지더니 한참 뒤에야 들어온다. 이부자리는 습기가 많아 걷어내고 집에서 준비해간 침낭을 폈다.

잠자리에 누웠더니 만감이 교차한다. 앞으로 10일간을 적어도 오늘 정도를 걷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더해진데다. 전깃불이 들락거리는 바람에 켜놓은 촛불이 낯선 분위기를 만든다.

아래층에서 나누는 도란도란 말소리에 이끌려 내려가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쫑알거린다. 인종 전시장 같은 이곳에서는 미소가 공통언어다. 미소를 보내면 미소의 답장이 온다. 미소가 공통어인 세계로 들어왔지만 나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웃음이 적어진다'는 나이었다.

다시 자리에 누었더니 샤워하다 함석조각에 찔린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진다. 산속에서는 사소한 일도 심각한 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나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한 후 항생제를 복용하고 다시 자리에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깊었을까? 장대같이 내리던 비가 그쳤다. '내일 아침에는 맑고 좋은 날씨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1월 18일까지 네팔 히말랴야를 트레킹하고 인도를 여행한 얘기입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 #트레킹, #정부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