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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6일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사건의 1심 재판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사초 폐기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판결했다. <한겨레> 2015년 2월 7일자 1면
▲ 1심 재판결과 '사초 폐기 아니다' 2015년 2월 6일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사건의 1심 재판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사초 폐기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판결했다. <한겨레> 2015년 2월 7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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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로써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발생했던 두 가지의 논란은 일단락됐다(관련기사 : 백종천·조명균 무죄... 노무현 '명예회복').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했다는 이른바 'NLL 포기발언'이다. 이는 지난 대선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정상회담에) 관련이 된 사람들이 관련된 그 사항에 대해서 명백하게 밝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공세를 폈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직접 나서서 "(NLL포기발언이 사실이라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박 대통령뿐 아니었다. 지난 2013년 2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노-김 대화록'을 봤다고 운을 떼면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은) 국격(國格)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며 "이제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 문제는 밝혀지겠지"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을 위해서 회의록 내용이 '안 밝혀지는 게 낫겠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정상회담 회의록은 지난 2013년 6월 전격적으로 공개됐다. 국민들은 확인했다. NLL 포기발언은 없었다. NLL 포기발언과 관련해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던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2014년 5월 원내부대표에서 물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은 NLL 포기라는 말씀을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고 뒤늦게 양심고백(?)을 했다. 이미 2012년 대선과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때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은 뒤였다.

위기 때마다 등장 'NLL, 사초 실종=국기 문란' 비판했던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과 관련해 "사초 실종, 국기 흔드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에서는 '수사 가이드라인' 이라며 비판했다. <한겨레> 13년 8월 7일자 3면
▲ 박 대통령 "사초 실종, 국기 흔드는 일"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과 관련해 "사초 실종, 국기 흔드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에서는 '수사 가이드라인' 이라며 비판했다. <한겨레> 13년 8월 7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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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가 바로 '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삭제 논란이다. 2013년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위원들이 국정원에 요청해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열람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시점이 절묘했다. 일주일 전인 6월 14일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국정원, 서울경찰의 수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대선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당장 민주당에서는 "김용판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면서 기세를 올렸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틀 후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촛불집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NLL 포기발언'을 재차 들고 나온 시점이 바로 이 때였다.

'회의록을 봤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의원들에 이어 남재준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후 이를 6월 24일 일반에게 전격 공개해버렸다. 박 대통령이 "여야가 제기한 국정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전격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대화록이 공개된 다음날인 25일 박 대통령은 "NLL은 수 많은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순간순간 등장했다.

진실은 힘이 셌다. 공개된 대화록을 본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NLL 발언 문제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바로 이 때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과 'NLL 망령'을 완전히 떨어내고 싶어하던 민주당이 이상한 합의를 한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관련 자료 일체의 열람 및 공개를 국가기록원에 요구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7월 18일 국가기록원이 '대화록'과 '녹음기록물(음원파일)'을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7월 22일 국회의원 등이 방문해서 조사했지만 역시 찾지 못했다. 침묵하던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 대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조선일보>는 이튿날인 23일(화)~27일(토) 연속해서 '대화록 실종' 관련된 사설을 게재했다. 26일 사설의 제목은 '나라의 위신이 노-김 회의록 진실 규명에 걸려 있다'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 다시 전격 등장했다. 8월 6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말했다. 야당과 언론에서는 당시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전면에 나섰던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사과해야

대화록 실종 사건이 발어진 무렵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제목이 '대화록 지운 참 나쁜 사람들'이다.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1심 재판부 판결에 따르면 지울 것을 지웠을 뿐이다. <조선일보> 13년 7월 30일
▲ 당연히 지울 것을 지웠을 뿐인데 대화록 실종 사건이 발어진 무렵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제목이 '대화록 지운 참 나쁜 사람들'이다.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1심 재판부 판결에 따르면 지울 것을 지웠을 뿐이다. <조선일보> 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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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5일 검찰은 위에 언급한 사건에 대해 기소를 강행했다. 당시 검찰은 '노 대통령의 지시로 원본이 삭제됐다'고 밝히고, 수정본은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화록 삭제 과정에 개입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으로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과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15년 2월 6일 그 사건에 대한 1심 재판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불구속 된 두 사람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 초본을 보고) 조 전 비서관에게 반환하면서 내용을 재검토해서 수정하도록 지시한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최종 단일본을 전제로 작성된 대화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동안 검찰과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은 노련했다.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치밀했다. 삭제된 최초 보고본을 '원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수정된 것을 '수정본'이라고 표현했다. 법원에서는 이 용어부터 바로잡았다. 최초 보고본은 '초본'일 뿐이고 대통령이 승인해야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된 것으로 해석했다.

1심 재판부 판단은 대통령, 새누리당, 보수언론 등 집권세력의 '공론'을 뒤집고 나온 것이란 점에서 주목한다. 조 전 비서관 등이 초본을 삭제, 폐기한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1심 판결에 침묵했고, 그 많은 사설과 1면 기사를 쏟아 부었던 <조선일보> 역시 A8면 사이드 기사로 처리한 후 사설 등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아예 간추린 뉴스로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을 보이지 않는 피고인석에 앉혔다" 재판부 판결이 전해진 6일 노무현재단은 성명을 냈다. 2012년부터 시작된 '피고인 노무현'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를 피고인석에 앉혔던 사람들이 이제 같은 자리로 옮길 때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박 대통령은 순간순간 등장했다. 그의 책임이 무겁다.


태그:#대화록, #대통령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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