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 마을에 늦은 오후가 스며든다.
일찌감치 포구로 들어온 배들은 내일의 수확을 위해 잠시 쉬고 있다.
흔들리는 파도, 흔들리는 향기.
투망을 고정시키는 둥그런 구슬이 하오의 햇살을 받았구나.
밧줄은 바다를 꿈꾼다. 그 꿈 사이로 하얀 등대
엿보이고 삶의 진득함이 파도를 흔든다.
잠시 걸음을 옮겨 마을로 들어간다.
오래된 풍경, 오래된 마을. 청사포 마을의 속살들이 보인다.
정겨운 우물터. 오래 전부터 이 마을을 수호신처럼 지켜왔던
펌프에는 사람의 향기가 넉넉하게 물들어 있다.
그 향기를 따라 펌프는 예전의 영화를 꿈꾸겠지.
해풍 따라 유유히 흔들리는 미역줄기
어느 여인의 머리채를 닮았는지
은은하게 풍겨오는 짭짤함이 혀끝을 자극한다.
오늘도 청사포에는 미역이 바다 바람을 맞고 있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다리가 빠진 목의자 하나. 가나긴 그리움을 안고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옛날 주인이 제 몸 위에 앉아
책을 읽던 전설을 상기하며. 비를 맞고 바닷바람을 맞아도
의자는 꿈을 꾼다. 재회의 그날을.
그물망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 아니, 살아오는 것들.
다시 포구는 내일을 준비하며 조용히 그물을 다듬는다.
오래된 풍경이 남아 있는 청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