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012년 대선을 뒤흔들고 정상회담록 열람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번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해서 그간의 경과를 생각하면 허망함이 느껴질 정도다. 

서울중앙지방법원 30형사합의부의 판결을 요약하면,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지 못한 회의록 초안은 폐기하는 게 당연했다, 완성본 회의록을 국정원이 생산해 보관한 상태에서 다른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남겨두는 게 오히려 관련 법 위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론은 대통령선거 직전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노무현 NLL 포기 발언' 의혹 제기로 시작돼 회의록 실종 사태가 사초폐기 논란으로 진화한 상황에서 여러 기록·정보공개 전문가들이 내놓은 의견과 같다. 법적인 지식과 복잡한 해석이 없이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판결문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 초안을 폐기하라고 지시를 했는지는 아예 쟁점으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들이 제시한 수많은 유죄 증거와 정황이 이 사건 핵심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 헛수고였다는 얘기다. 결재권자의 수정·보완 지시를 받은 회의록 초안을 남겨두지 않는 건 당연했기에 폐기 지시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 틈틈이 "노무현의 지시로 폐기"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은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는 모습.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은 2007년 10월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이 사건 재판과정을 되짚어보면 검찰은 기회가 나는 대로 '노무현의 사초폐기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2013년 12월 9일 열린 이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검사는 사초폐기의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이어서 (수사결과) 발표 내용에 언급을 못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에 NLL 문제와 관련해 회담 당시에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청와대 내부에서 발언한 내용, 회의록 폐기 동기 및 경위와 관련된 내용이 (증거물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포함돼 있다."

1년 2개월여 뒤인 지난 1월 19일 결심공판에서도 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당시 백종천 안보실장과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이 사초를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주장대로라면 책임은 죽은 노 전 대통령에게 있을 터인데 검사는 이 두 사람에게도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는 '엄정함'을 보였다.

회의록 누설한 새누리당 인사에겐 '관대'

검찰 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자료사진).
 검찰 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공직자들에게 무척 엄했던 검찰은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누설한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통일비서관 시절 국정원본 회의록을 들여다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한 뒤 회의록 내용을 언론사와 박근혜 캠프의 김무성 총괄선대위원장, 권영세 상황실장에게 누설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약식기소했을 뿐이었고, 정 의원을 정식 재판에 회부해 유죄 선고를 내린 건 법원이었다.

검찰은 대선 선거일 직전인 2012년 12월 14일 정상회담 회의록 일부를 수많은 인파가 몰린 유세장에서 낭독한 김무성 총괄선대위원장(현재 새누리당 대표)도 무혐의, 지인들에게 '우리가 집권하면 NLL 대화록을 공개한다'는 말을 한 권영세 상황실장도 무혐의로 처분했다.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정윤회 문건'을 청와대 밖으로 유출한 박관천 경정을 구속기소한 것과는 천지 차이다. 새누리당 인사들에겐 관대함을 보였다는 걸 넘어 'NLL 포기' 논란을 '사초폐기'로 진화시키며 정치적 이득을 취한 새누리당의 종북몰이 장단에 검찰이 칼춤을 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태그:#회의록, #남북정상회담, #NLL포기, #사초폐기
댓글4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