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따뜻한 봄날,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 나들이를 가면 어떤 동물보다 아이들을 즐겁게 맞이 해주는 동물은 '원숭이'이다.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가 활동적인 아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폴짝폴짝 뛰어줄 리 만무하고, 야행성인 사자도 눈만 껌뻑거리며 졸고 있거나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우리 밖 사람들의 복장만 터지게 하기 일쑤다.

그러나 원숭이는 다르다. 사람이 나타나면 '꽥꽥꽥'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도 한다. 관람객의 먹거리를 달라고 가슴을 치며 꽥꽥거리다 기습적으로 빼앗기까지 한다. 이 역동적인 동물을 보고 아이들은 놀라 울음보를 터트리기도 하고 즐거워 깔깔거리기도 한다.

우리가 원숭이를 보며 놀라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발일 수도 있는 손을 사용하고 직립보행을 흉내 내고, 인간의 먹거리를 다 먹는다. 심지어 간단한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 원숭이 서커스, 원숭이 쇼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와 같은 이유이다.

앤서니 브라운이 그의 그림책으로 데리고 온 동물 역시 '원숭이'족이다. <돼지책>의 돼지 가족, <나와 너>의 곰 가족, <마술 연필>의 귀여운 테디 베어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윌리 시리즈'를 나은 '원숭이'가 단연코 우세하다.

고릴라 가족
 고릴라 가족
ⓒ 웅진주니어

관련사진보기

앤서니 브라운은 인간과 닮은 원숭이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재미를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잘못을 꼬집어 주기도 한다. 원숭이들은 미술관에 가기도 하고 종횡무진 동화 속에서 신기한 모험을 즐기기도 한다. 축구선수가 되기도 하고 인간과 같이 다사다난한 일상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의인화'라는 통로를 통해 인간이 사는 세상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고릴라 가족>은 조금 달랐다.

그저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를 심어놓기를 즐기는 앤서니 브라운의 평소 작품 성향을 생각하며 <고릴라 가족>을 집어들은 독자들은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며 점점 더 당황하게 된다. 마치 영·유아의 숫자 학습책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숫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이 책 잘못 산 거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인내력을 가지고 숫자 10까지 넘어가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이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등장한다. 수염까지 실감나는 자화상으로. 대체 어느 그림책에서 작가의 자화상이 생생하게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그렇게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모두 한 가족입니다. 나의 가족이기도 하고...."

도대체 누가 가족이란 말인가! 10종류의 유인원족? 그의 나머지 말을 듣기 위해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저마다의 표정과 저마다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화면 가득 독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나머지 말은 "여러분의 가족이기도 합니다"라고 뇌리에 꽂힌다.

이쯤 되면 독자는 다시 그림책의 첫 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작가가 전달한 이야기가 그냥 숫자 놀이가 아니란 걸 안 이상 정확한 메시지 수용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첫 장을 펴게 되는 것이다. <고릴라 가족>의 참 맛은 이때부터 느낄 수 있다.

첫 장을 다시 넘기면 한 마리의 고릴라가 뚫어져라 독자를 바라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고, 심지어 미소 짓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 장은 미소 짓는 엄마 품에 안긴 오랑우탄 아가, 아빠미소 지으며 사진 찍고 있는 침팬지 가족, 겸연쩍은 미소로 바라보는 맨드릴개코원숭이... 처음 보는 원숭이 종류와 생생한 표정들에 빠져들고 있을 즈음 작가는 이 다양함에 비수를 꽂는다. 그저 모두 한 가족이라고. 내 가족일 뿐 아니라 당신들의 가족이라고...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들은 온통 편가르기로 넘쳐난다. 피부색에 따라, 민족에 따라, 나라에 따라, 저마다의 이념에 따라, 심지어 그러다 싸우기까지 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공격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우리의 현실은 아무리 봐도 디스토피아의 세상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이야기 한다면 세상은 점점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살며시 바라본다. 매일매일 뉴스를 시끄럽게 하는 대한민국 국회 의사당에도, 죄없는 사람들 잡아가 주홍색 옷 입히고, 편가르기의 희생양으로 삼는 IS 땅에도, "옛다, 이 사람들아" 하고 <고릴라 가족>을 전해주고 싶다.


고릴라 가족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웅진주니어(2012)


태그:#고릴라 가족, #앤서니 브라운, #유토피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