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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사회> 책표지
▲ <약탈적 금융사회> 책표지 <약탈적 금융사회> 책표지
ⓒ 도서출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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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더해서 만든 신조어가 바로 '청년실신'입니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취업 재수, 삼수를 하게 되고, 벌이가 없이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적지 않은 빚을 떠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서 대출을 받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계부채 1060조 시대라는 말을 애써 들이밀지 않더라도 사회에 힘차게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청년들이 부채를 떠안고 시작해야 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어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가계부채의 지속적 증가와 청년층의 부채문제가 특히 대두하는 것은 부채의 문제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80% 이상이 부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나 중산층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부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언제부터 빚을 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기억해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사회에서 '저축'을 강조했었습니다. 누구나 저축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려 했고 기업은 은행을 통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저축보다 소비와 대출이 장려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입니다. <약탈적 금융사회>의 저자는 그때부터 은행들의 영업 전략이 바꿨다고 말합니다. 즉 그 이전까지 은행의 주 고객은 기업들이었습니다.

기업은 은행을 통해 투자하였고 은행은 기업에 대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시민들의 저축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은행 직접대출을 줄이고 주식을 통한 투자액을 늘립니다. 자연스럽게 은행의 주요 고객은 일반 소비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카드영업이 활황을 띄었고 신용카드소비와 은행의 대출영업은 우리 삶의 중요한 일상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외환위기 이후부터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합니다.

가계부채는 정확히 '쌍방과실'

빚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빚을 진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채가 모두의 문제가 되었고 부채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현실은 과연 빚 문제를 채무자만의 책임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채무자의 무분별한 소비의 문제, 방만한 재무관리의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무분별한 대출영업과 고금리 대출은 과연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지 저자는 되묻습니다. 오히려 채무자의 과도한 죄의식 이데올로기가 문제라는 겁니다.

채무자들은 금융의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재무관리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죄의식에 갇혀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합니다.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가계부채는 정확히 '쌍방과실'이라고 단언합니다.

모든 부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프레임은 정확히 금융권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가 도외시한 채권자의 책임 그리고 정부와 언론의 책임에 대하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 채권자, 즉 은행들은 채무자의 모든 신용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빚을 갚을 만한 소득과 재무상황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리한 대출영업을 감행하여 수익률을 달성하기에 급급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부채확대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LTV(Loan To Value ratio)를 확대 적용하는 등 주택담보대출을 더 조장하여 가계부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론도 부채확대에 동조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빚'을 통한 재테크를 기획기사로 내보내는가 하면 급할 때 택시 타듯, 급할 때 고금리 대출을 하라는 대출광고도 무분별하게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과 금융환경으로 인해 소득이 없는 계층이 무분별한 대출과 함께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채권자의 책임이 강조되지 않는 사회는 약탈적 금융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약탈적 금융이란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신용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갚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는 것은 만약 채무자가 갚지 못할 경우에 담보로 제공한 자산을 채권 대신 회수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담보자산 없이 과도하게 주어지는 신용 대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채권 추심이 지독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금융회사는 이자대금뿐 아니라 원금이 회수될 때까지 악착같이 빚 상환 압박에 나설 수 있습니다. 물론 채무조정 및 파산면책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가난한 채무자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절차와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이를 활용하는 채무자는 적고 모든 것을 자신의 문제로 안고 있는 과도한 채무자의 죄의식이 도움조차 구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을 채무자로 만드는 '부채주도성장'을 정부는 과감히 버려야 하며 채무자들에게는 채무자 우호적 상담복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제 정부는 채무자들에게 더 빚을 질 수 있는 '금융복지'가 아니라 대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채무자의 권리 강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채무자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인지하고 불법적인 추심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채무자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지나친 죄의식에 눌린 채무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밝히려 하지 않고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과도한 채권자 위주의 시각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입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묻기 이전에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업 최고이자율은 34.9%입니다. 가난하고 소득이 없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고금리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반면, 일본의 대부업 최고이자율은 15~20%입니다. 2008년 '이자제한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 이토록 개혁적인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신용카드, 빚 피해자 연락 협의회'를 중심으로 1984년부터 지속적인 채무자 연대운동과 법 개정 노력이 병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사례는 아래로부터의 채무자 권리 신장 운동이 새로운 사회로 나아 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어려운 개혁과제 가운데 '부채문제' 또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정한 금융사회'를 향한 의미 있는 걸음이 우리사회에서도 강력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약탈적 금융사회>/제윤경·이헌욱/1만3000원/부키
글쓴이는 희년함께 사무처장입니다.



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부키(2012)


태그:#제윤경, #약탈적 금융사회, #채무자연대, #희년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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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믿음으로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주어진 토지권과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신입니다. 희년정신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토지배당,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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