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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집안을 치우고 세탁기가 돌린 빨래까지 깔끔하게 널고는 잠시 숨을 돌립니다.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2~3일에 한 번씩 빨래를 돌려도 두 개의 건조대에 가득 차게 널어야 합니다. 천천히 힘주어 팍팍 털고 두 손에 들고 쭉쭉 펴서 널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뭐해? 아... 빨래 널어? 좋네. 그나저나 우린 봄 방학이 담주부터인데..."

말 끝을 흐리는 동생. 뭐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교실이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방학기간이 있습니다. 덕분에 겨울방학 일주일가량 저희집에 와서 있었던 조카의 방학 스케줄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뭐, 언제 또 오겠어? 이모가 휴직해서 집에 누가 있을 때. 이때나 오지. 보내!"

그제야 동생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가면서 '그래두 되나?'하고 대답합니다. 그나저나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근데, 너희는 빨래 언제해? 나 회사 다닐 때는 빨래할 시간이 없어서 새벽에 일어나면 그때부터 돌리고, 아침 준비해서 먹고 치우고 하다보면 시간이 없어서 널고 회사가기도 바쁘더라고."

"밤 11시쯤?"이라고 대답하는 동생에게 밤 늦게 돌리면 아랫집에 미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럼 어떻게 하느냐며 반문했습니다.

아이들이 벗어둔 옷은 산더미같지, 아침 출근시간이 빨라서 7시쯤 나가야 하는 상황에 새벽에 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밤에 돌린다며, 어제도 그 빨래 다 널고 자느라고 새벽 1시쯤에 잠이 들어 피곤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늦어도 오후 8시, 또는 10시까지는 세탁기 돌리는 걸 마쳐야

동생의 말에 언젠가 인터넷카페에서 밤늦게 새탁기 돌리는 위집과 층간 소음 문제로 싫은소릴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묻는 사람의 글의 본적이 있습니다. 늦어도 오후 8시, 또 다른 의견은 10시까지는 세탁기 돌리는 걸 마쳐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글을 보면서 난 그래도 새벽에 돌려서 조금은 덜 시끄러울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밤 늦게 돌리지 말고 새벽으로 바꾸라고... 그러나 동생의 말이 가슴을 확 후려쳤습니다.

"에그 언니, 우리 회사 사람은 윗집인지 새벽에 일찍부터 세탁기를 돌리는데, 소리도 소리고 배란다 물통에 물떨어지는 소리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대. 그것도 역시 피해야!"

"아, 이 얘기는 나네!" 결국, 맞벌이로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는 엄마들. 궁여지책으로 밤 늦게 또는 새벽에 돌릴 수밖에 없는 세탁기 소리가 남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짜증나는 '저 집 여자의 세탁기 돌리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맞벌이부부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대책들에 대해 논의가 많습니다. 보육과 지원등 많은 부분 이 논의되고 있지만, 다 그렇게 알아서 하려고 살겠지 싶은 이런 사소한 문제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알겠지만, 음식을 먹다가 놀다가 수시로 더럽히는 옷을 일주일 동안 모아두었다 왕창 빨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세탁소에 맡기기도 어렵고, 드러내놓기는 그렇지만 늘 안고 살아가는 문제점. 바로 이거였습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장면.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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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씨 자녀 서언·서준이가 빨래 널기도 척척 폭풍 성장 중이라는 내용을 봤습니다. 맞벌이의 자녀인 우리 아이, 특히 큰녀석은 10살이 되어가지만,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으면 절대 도와줄 생각을 안합니다.

폭풍성장은 커녕 후퇴하려는 가 잠깐 쳐다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도와 달라거나 혼낼 수가 없습니다. 여섯 살 정도였나? 주말부부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때, 아침에 두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고 먹이고 치우고, 로션 바르고 옷입히고, 머리까지 묶인 후, 또 나도 회사갈 준비를 마치면 어느새인가 출근시간이 다 다가와 버립니다. 허겁지겁 아이에게 서두르며 빨래 좀 같이 널자고 재촉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제 스스로 와 천천히 도와줄때까지는 그저 기다릴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빨래 돌리는 집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면 좋겠습니다. 일도 좋지만 지나치게 야근을 중시하고 강요하는 우리 문화를 바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고, 그 삶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웃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전까지는 시끄럽긴 하지만 윗집에서 들리는 밤늦은, 또는 너무 이른 세탁기 소리가 열심히 살기 위한 몸부림이겠거니 하고 조금 참고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태그:#세탁기 소리, #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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