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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오성홍기를 자랑스레 펼치고 있는 중국인 친구
 오성홍기를 자랑스레 펼치고 있는 중국인 친구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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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지내다보면 한국과 중국이 강한 유대감으로 뭉칠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반일감정'을 논할 때다. 중국인들이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십중팔구 반일감정에 대해서다. TV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항일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된다.

2012년 중국-일본간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건 댜오위다오(钓鱼岛, 센카쿠열도)의 소유권 분쟁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독도 문제와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독도는 우리나라 영토지만 댜오위다오는 현재 일본의 소유란 것이다. 중국은 땅을 반환 받지 못한 것에 대해 굉장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댜오위다오를 언급한 이유는 중국생활을 하던 중 반일감정을 가장 격정적으로 느낄 때였기 때문이다.

중국인 친구의 활화산 같은 애국심

'댜오위다오는 중국 것!' 글이 쓰여진 티셔츠
 '댜오위다오는 중국 것!' 글이 쓰여진 티셔츠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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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사귄 중국친구가 있었다. 성격이 명랑하고 매사에 진취적인, 전형적인 대륙기질의 여성이었다. 평소 그녀의 애국심은 대단했고 그에 비례해 반일감정도 뜨거웠다. 미래에 행여나 그녀와 마주칠 일본인이 불쌍해질 정도였다.  

하루는 함께 외식을 하고 시내를 걷고 있을 때였다. 우리 옆으로 뒤쪽에 종이를 붙인 트럭 한 대가 지나갔는데, 그녀가 갑자기 크게 흥분하며 환호했다. 꿈에 그리던 아이돌 스타를 만난 팬의 반응이었다. 뜬금없는 함성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굴리고 있자, 그녀는 무슨 상황이었는지 설명해주었다. 트럭 꽁무니에 붙은 글귀 때문이었다.

'일.본.제.품. 불.매'

불과 몇 자 되지 않는 반일 글귀에 그토록 열광한 것이다. 오버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그 열정이 부러웠다. 당시 중국 상점이나 관광명소는 일본인 손님을 거부했고, 택시는 일본인을 태우지 않았다. 그보다 지나친 사례도 있다. 감정이 격해진 일부 시민이 일식집과 일본 브랜드의 옷가게를 때려 부수기도 한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과격하고 폭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 중국인들은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긍심이 매우 크다. 현지에서 머무를 외국인이라면 이런 불같은 중국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심해야 한다. 일본이 중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택시 기사의 일성 "나는 일본이 너무 싫어!"

중국인 친구들과 학교 안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학교 안에서.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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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대학교에는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아시아 대륙,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다. 그중 요코(가명)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일본여성 특유의 조신함과 발랄함을 가진 친구다.

2012년 반일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요코와 시내를 나갔다 택시를 타게 됐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중국어를 이용한다. 택시기사가 억양을 듣더니 어디에서 왔는지 관심을 보였다. 당시 중국의 살벌한 분위기를 알고 있었기에 요코와 눈을 맞춘 뒤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택시기사의 음성이 대뜸 높아졌다.

"나는 우리를 괴롭혔던 일본이 너무 싫어! 한국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었잖아. 너도 그 씹어 먹을 일본이 당연히 싫지?"

난처했다. 옆에 있는 요코의 눈가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안 하자니 분위기가 살벌했다. 택시기사는 심한 욕을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머뭇거리자 "너 한국사람 이라며?"라는 추궁이 돌아왔다. 아니라고 했다가는 달리는 차에서 집어던질 기세였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종종 길거리를 걸어가던 일본인이 중국인에 의해서 린치를 당하곤 했다. 내가 사는 지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이곳에 살던 일본인들도 몸을 사리고 다닐 때였다. 결국, "그렇다"고 동조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요코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물론 나도 택시기사의 역사인식에 동의하고 요코가 없었다면 함께 일본을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의 침울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요코는 그때의 충격과 공포로 아직까지도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일부의 예다. 현지에는 일본을 좋아하는 중국인들도 꽤 많다. 요코는 주변에서 챙겨주는 중국인 친구도 많다. 사실 평소 농담으로 "너 한국에 사과해"라고 하면 "스미마셍"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와 나는 친하고 막역한 사이다. 그럼에도 긴장의 연속인 그녀의 유학생활이 때로는 딱하다.

일본과는 반대 대우, 중국은 한국문화 홀릭 중

한국연예인이 모델인 광고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연예인이 모델인 광고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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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인에 대한 처우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한국을 동지로 생각하며 친근감을 내비치곤 한다. 한국에 대한 호감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 내 한류바람은 실제 크다. 그 중심은 드라마나 예능, 아이돌이다. 젊은 층은 노래, 춤, 화장, 패션 등 한국의 문화를 흡수하고 중장년층은 드라마로 한국의 감성을 느낀다.

한국방송을 즐겨보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어는 이미 생소한 언어가 아니다. 나를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사랑해', '고마워' 같은 기본 어휘는 대개들 알고 있다. 한국어를 궁금해 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그 덕에 나도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쏠쏠한 용돈벌이도 했다.

또한 드라마의 여파로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의 음식을 찾게 돼 자연히 한국음식점도 늘어났다. 작년 <별에서 온 그대>가 현지에서 대히트를 쳤다. 여주인공이 즐기던 '치맥'이 내가 지내는 진저우까지 상륙한 것을 보며 한류의 위력을 실감중이다.

부끄럽지만 연예인이나 경험해 볼 수 있는 기념촬영이나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물론 이곳이 중소도시라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연예인을 내세워 말을 걸어오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한류가 나의 유학생활을 풍부하고 유쾌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한국의 방송업계 종사자분들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한국 물품만을 취급하는 대형마트도 있다.
 한국 물품만을 취급하는 대형마트도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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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질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마냥 밝다고만 할 수는 없다. 동북공정 등 많은 역사 문제로 중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오늘의 형제가 내일의 적이 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들이 보여준 일본에 대한 적대심, 한류로 인한 한국에 대한 호감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해 중국에 다가가는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2014년 한국을 여행한 중국인, 일명 요우커의 수는 6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을 직접 경험하고 소비하려는 중국인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그들을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면 이해해야만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과도한 국수주의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날 택시에서 내렸을 때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물을 찍어내던 요코의 모습은 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방학이 끝나면 맛있는 밥 한 끼를 챙겨줘야겠다.


태그:#중국, #반일감정, #중국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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