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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본 사회에서 '공주님' 신드롬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주님'이란 궁극적으로 어떤 조건을 지칭하는 말일까? 돈이 많아야 할까? 학력도 높아야 할까?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직업에 종사해야 '공주님'으로 불릴 수 있을까?

여기까지는 (물론 쉽지 않겠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진짜 '공주님'을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책 <불평등 사회, 일본>의 저자는 이런 물음을 이어간다. 그리고는 "아!"하고 탄성을 자아낼 만한 답을 발견한다.

마침내 그가 찾은 '궁극적 기준'은, 바로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는가'다. 출생과 동시에 결정되는 사회적 기반. 본인이 결코 선택할 수 없는 부분, 즉 태어난 지역 등의 주변 환경이 삶의 큰 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본 계층 사회 연구한 학술 저서

 <불평등 사회, 일본>
 <불평등 사회, 일본>
ⓒ 한양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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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사토 도시키는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국제사회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SSM조사'로 불리는 '사회 계층과 사회 이동의 전국 조사' 자료를 토대로 일본의 계층 사회를 연구했다. 'SSM조사'는 20세부터 69세까지의 남녀를 대상으로 10년에 한 번씩 행하며, 본인의 현직과 부모의 직업·학력 등을 묻는 설문조사다.

수치와 도표로 구체화한 자료는 수십 년에 걸친 계층의 이동을 드러낸다. 저자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직종을 나누고, 그 안에서도 고용 상층과 하층을 구분한다. 자영업과 농업 분야도 항목으로 넣어 도시와 농촌 간의 이동, 직장인에서 창업자로 바뀐 사례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성별과 학력, 직업별로 각각 '이상적 배분주의'를 묻고 답한 결과다. '어떠한 사람이 높은 지위와 경제적 풍요를 얻는 것이 좋은가'하는, 설문의 31번째 문항에 대한 그룹별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그 결과 과반수가 '실적'보다는 '노력'을 많이 한 사람에게 많은 자원이 배분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대답했다. 성별로 따져보면 남성이 더 높은 비율로 '실적주의자'였고, 학력이 높거나 화이트칼라 직종의 고용 상층인 경우라면 그 성향은 더욱 짙어졌다.

책은 또, 세대별로 구간을 나눠, 부모의 직업과 학력이 다음 세대의 직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한지 살펴보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사회의 개방성을 측정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개방성 버블' 붕괴된 일본

연구 결과를 다양하게 비교하고 구간을 세밀하게 나눌수록 암담해진다. 저자 스스로도 "유쾌하지 않다"면서도 냉정하게 분석을 이어간다. 요약하자면, 일본 사회가 학력 위주의 폐쇄적 경향이 굳어지면서 급기야 '엘리트의 재생산' 구도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에 의해 다음 세대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한때나마 일본사회가 믿었던 "90%가 중류(중산층)"라는 생각, 즉 '총 중류 사회'라는 신념을 박살내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반짝하는 현상에 불과했고, 계층간의 이동은 경로 의존성이 짙어지면서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는 1936년에서 1955년 사이 출생한 이른바 '단카이 세대'가 40세를 맞이한 이후로 경제 성장의 효과가 거의 사라졌으며, 개방성의 버블도 붕괴됐다고 표현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본인 현직으로 측정하면 일본 사회는 전문직·자영업을 제외하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좀 더 열린 선발사회가 된 듯 보인다. 그러나 본인 40세 직장으로 부모자녀 간의 지위 재생산을 더욱 적확하게 파악하면 '좀 더 열렸다'고는 도저히 말하기 어렵다. 마지막의 '단카이 세대'에서는 전후 출생의 화이트칼라의 개방성이 상실되고 전전과 비슷하게 '노력해도 별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본문 62쪽 중에서)

앞서 언급된 '이상적 배분주의' 설문에서 고학력과 화이트칼라 직종에 속한 사람일수록 '실적주의'로 기울었던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자료를 종합한 결과는 일본 사회에서 정작 누군가의 지위가 실력보다도 부모의 학력·직업에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에 "본인의 노력이 본인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또한 "노력주의를 '패자의 우는 소리'로 간주하게 만드는 것이 학력 사회"라고도 주장한다.

15년 전 연구된 일본 사회, 오늘날 한국과 닮았다

저자는 본문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차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쟁의 형태를 가장한 불평등의 심화'가 문제라고 비판한다. 일본형 산업 사회는 엘리트 주의를 표방하면서 나름의 선발 시스템을 갖췄으나, 지속해서 쌓인 폐쇄성이 계층 간의 이동을 막았다는 것이다. 결국 '노력해도 별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고, "우리들에게 현재 보이는 것은 끝의 끝인 광경"이라고 자조한다.

이처럼 <불평등 사회, 일본>은 일본 현실을 자료로 정리해, 세대를 넘어선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렇게 발견된 시스템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기회의 평등 사회에는 사회 안전망도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닌 격차의 확대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00년에 출간된 것을 최근 번역한 것이다. 사회과학 서적임에도 당시 13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 이후로 일본은 '1억 총 중류 사회'가 흔들리면서 '중류의 붕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지위와 교육, 경제적 요소가 격차를 낳으면서 '격차 사회'가 일본의 2006년 '올해의 신조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규제를 풀면서 시장 만능주의를 내세운 고이즈미 정권 시절의 이야기다.

15년 전의 일본 사회는 오늘날 한국과 닮았다. 임금은 제자리에서 오르질 않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으며, 규제 완화가 만병 통치약 구호로 쓰이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 말이다. 일본의 '중류'에 해당하는 '중산층'은 이미 오래전 설 자리를 잃었고, 소득 격차와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달한 것은 당시 일본과 흡사하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자랑으로 여기던 한국의 1990년대는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듯하다.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도 '끝의 끝인 광경'인걸까? 기회의 불평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OECD 가입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극도로 낮은 출산율에서 포착되는,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 사회의 소리 없는 비명을 그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도 일본 교수가 언급한 '사회 안전망'에 고개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불평등 사회, 일본>(사토 도시키 씀/ 이경희 옮김/ 한양대학교 출판부/ 2014.12/ 1만 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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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 주로 영화리뷰와 서평을 씁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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