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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당 편집주간
사 진 : 이주빈 광주-전남 지역팀장
정 리 : 이영주 전남 서남권 주재기자

이낙연 전남지사가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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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그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으로 지은 말이다. 업무보고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늘 현장을 방문하는 이낙연(63) 전남지사의 상의 주머니에는 늘 큼직한 수첩이 담겨 있다. 메모하고 확인하는, 오랜 <동아일보> 기자생활에서 체화된 일종의 '직업병'이다. 공무원들은 이런 꼼꼼함이 불편하기도 하다. 더욱이 전남도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 박준영 지사(3선)에 이어 기자 출신 지사를 네 번째나 연거푸 맞이했다.

4선 의원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거쳐 전라남도 도정을 맡은 이낙연 지사가 내건 구호는 '생명의 땅 전남'과 '청년이 돌아오는 전남'이다. 이 지사는 이 두 가지 비전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브랜드 시책으로 '섬'과 '숲'을 내세웠다. 섬과 숲 가꾸기에 푹 빠져 있는 이낙연 지사를 지난 21일 도청 집무실에서 만나 그간의 소회와 비전을 들어보았다.

- 오랜 기자 경력이 도정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공무원 사회는 업무 일관성과 지속성을 중시한다. 공무원 조직에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일일이 확인하는 현장성과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에겐 창의성과 현장성이 가미돼야 한다. 그래서 현장을 중시하는 기자 경험이 도정에 도움이 된다."

- 신년사를 보니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과 '숲 속의 전남 만들기 사업', 이 두 가지 브랜드 시책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주말마다 많은 섬을 다녀오신 것으로 아는데 지난 6개월여 동안 도정을 수행해온 소회부터 밝혀 달라.
"지금까지 16개 섬을 다녔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가능성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낀다. 가능성은 방향을 잡고 예산이 수반되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답함은 석유화학, 철강, 조선산업 같은 전통산업이 전남의 GRDP(지역내총생산)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데, 똑같이 어려움에 처해 작년 기준으로 15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점이다.

산업이 다변화되지 못하고 석유화학, 철강, 조선에 과대하게 의존하다 보니 도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답답하다. 광양(철강), 여수(석유화학), 목포(조선) 시민들은 그런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실감할 것이다. 그점이 매우 안타깝다."

지역내총생산(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은 시·도 단위별 생산액, 물가 등 기초통계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동안 해당지역의 총생산액을 추계하는 시·도 단위의 종합경제지표를 말한다. 지역내총생산액은 각 시-도의 경제규모, 생산수준, 산업구조 등을 파악하여 지역경제 분석 및 정책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제공된다. 통계청은 1985년 이후 GRDP를 작성해왔으나 지역감정 심화 등의 우려로 공개를 미루어오다 1993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남도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GRDP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임기 동안 성공한 섬 8개 저도 늘리고 싶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오마이뉴스 취재팀과의 인터뷰에 앞서 답변 자료에 메모를 하고 있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오마이뉴스 취재팀과의 인터뷰에 앞서 답변 자료에 메모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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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에 착안한 배경은 무엇인가.
"도지사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남을 잘 아는 원로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만났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이 지금 전남지사를 하신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고건 전 총리(1975~79년, 전남지사 역임)는 '섬'이라고 했다. '왜 하필 섬이냐'고 묻자, '다른 지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전남만의 자산 아니냐'고 반문하더라. '그럼 그땐 왜 안 하셨냐'고 물으니 '그때는 당장 먹고 살기가 바빠서 식량증산과 재해예방에 전력했지만 이제는 섬을 관광자원화 할 때'라고 하더라."

- '숲'에 착안한 배경은?
"백영훈 박사를 찾아뵈었더니 '산에 유실수를 심겠다'고 답했다. 처음엔 산에 밤나무가 많은데도 일손 부족으로 수확을 못하는데 유실수를 또 심어야 하느냐는 회의가 들었지만, 다듬어보니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졌다."

백영훈(85)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영화 <국제시장>으로 새삼 주목받은 '광부-간호사 파독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백 박사는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4년 상업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이를 주선하고 통역을 맡아 차관을 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북 김제 출신인 백 박사는 국내 최초 국비장학생 1호이기도 하다. 백 박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저씨'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전남에는 전국 섬의 65%가 넘는 2219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가고싶은 섬 가꾸기'는 섬 고유의 자연과 문화의 매력, 역사와 삶의 향기를 극대화해 나가는 사업이다. '10개년 계획'을 통해 풍광과 생태-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고, 시군과 주민의 동참 의지가 강한 24개 섬을 사업대상지로 추진한다. 올해는 먼저 6개 섬을 선정하고, 이후 매년 2개 섬을 추가해 나갈 계획이다.

- 왜 굳이 섬인가.
"전남에는 이미 여수 비룡도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등 성공한 섬이 서너 개 있다. 임기 동안 추가로 (성공한 섬을)8개 정도 늘리고 싶다. 육지에도 둘레길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금오도 비렁길, 해남 백련사와 미황사를 잇는 길은 천혜의 길이다. 백련사는 정약용 선생이 18년간 머물었고, 지금 손학규 고문이 거주하고 있다.(웃음) 이곳을 제주올레를 능가하는 둘레길로 만들고 싶다. 전남의 둘레길은 육지 중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굳이 비행기 타고 가지 않아도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예산은 어떻게 뒷받침 되나.
"올해부터 10년 동안 총 2633억 원(국비 1064억 원, 도비 564억 원, 시-군비 1005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국비는 중앙부처의 도서종합개발사업, 관광자원개발사업 등과 각종 공모사업 예산을 적극 활용하고, 시-군이 자체 추진하고 있는 섬 개발사업과도 연계 추진하겠다. 이렇게 해서 재정부담을 줄이고 사업효과도 키우려고 한다."

- 섬의 난개발과 주민소득의 미미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섬 고유의 생태자원을 보전-정비하고 필요한 곳은 경관의 복원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청정한 특산물로 만든 섬 밥상과 어촌 체험, 마을축제 등 다양한 섬마을 테마 관광상품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주민에게는 소득으로 연결되도록 할 것이다. 또 '숲속의 전남 만들기'와 연계해 섬에 자생하는 꽃과 나무를 보완 식재하고 군락지를 정비할 계획이다.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주민 참여가 중요하다. 주민참여를 높이기 위해 주민협의회를 구성-운영하고 교육과 견학, 컨설팅 등을 통해 주민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민간 전문가 영입도 추진 중이다. 이렇게 해서 전남 섬 여행자가 현재 연간 600만명에서 10년 후에는 1200만명으로, 귀어가(歸漁家)는 257가구에서 760가구로, 가구당 소득은 3900만 원에서 590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섬'과 함께 또 하나의 브랜드 시책인 '숲속의 전남 만들기'는 전남 전체를 거대한 숲이나 아름다운 공원처럼 가꾸고, 산림의 가치를 높여가는 사업이다. 이 역시 '10개년 계획'을 통해 전남도 산림의 공익가치를 2013년 14조 원에서 사업계획이 종료되는 2024년에는 30조 원으로 늘린다는 목표이다.

"은퇴자들 새로운 인생 위해 전남 찾을 것"

이낙연 전남지사가 1월11일 완도 군외면 삼두리 동백치유의 숲 조성대상지를 찾아 “가고 싶은 섬” 가꾸기와 “숲 속의 전남” 만들기 브랜드 시책을 구상했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1월11일 완도 군외면 삼두리 동백치유의 숲 조성대상지를 찾아 “가고 싶은 섬” 가꾸기와 “숲 속의 전남” 만들기 브랜드 시책을 구상했다.
ⓒ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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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속의 전남 만들기 사업'의 예산은 어떻게 뒷받침되나.
"올해부터 10년 동안 총 5300억 원(국비 2605억 원, 도비 740억 원, 시-군비 1845억 원, 민간 110억 원)을 투자해 3만1000ha의 숲을 조성하려고 한다. 국비는 산림청의 나무심기 관련예산을 최대한 활용해 지방비 부담이 최고화되도록 하면서 우리 도와 시-군이 적정 분담비율을 정해 소요재원을 확보하도록 하겠다."

숲 가꾸기 사업은 크게 경치를 좋게 하는 경관림 조성과 돈이 되는 나무를 심는 소득림 조성의 두 갈래 추진된다. 경관림은 생활 주변의 자투리땅과 유휴지, 도로와 철도 주변, 나들목,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신도시에 어울리는 나무를 심어 지역의 경관미를 높이도록 한다. 또 도시에는 공원, 도시숲, 가로수, 하천변 수림대 등을 조성하고 도시 외곽 숲과 녹색띠로 연결되도록 할 예정이다.

소득림은 간척지나 공유지, 야산, 한계농지 등에 돈이 되는 나무를 심어 단지화하는 것이다. 건축용과 버섯용 목재, 숯 생산을 위한 전략수종, 고령화-건강 100세 시대를 맞아 수요가 늘고있는 견과류와 밀원수 등을 집중 식재할 계획이다. 고흥 석류단지, 장흥 호두단지, 완도 동백숲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낙연 지사는 일본 식품회사들이 벌써 완도 동백숲을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두 가지 모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사업이다. 특히 '육림'은 수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거의 한 세대를 지나야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이다.
"역대 전남지사 열 분을 초청한 간담회에서 방향을 잘 잡았다고 말해주시더라. 산림청장을 만나서도 도움을 요청했다. 또 버스로 각 시-군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송정리역과 목포역을 중심으로 버스교통망을 어떻게 만들지, 옛날 철로를 이용한 '슬로우 철도' 활용도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긴 미래로 봐서 전라남도가 산업화에서는 배제되고 소외됐지만, 산업화 이후 시대에는 반드시 '돌아오는 전남'이 될 것이다. 옛날식의 산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고, 미국 플로리다처럼 은퇴자들이 새로운 인생을 위해 전남을 찾을 것이다.

임기 안에 결과를 보고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내 아들이 지금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고충을 이해해주면 만족한다. 전주-군산 벚꽃길은 황인성 전 총리가 전북지사 시절에 만들었는데 지금도 그분이 만든 길로 회자되고 있다. 먼 훗날 한 세대가 지난 후에라도 인정과 평가를 받으면 만족한다."

- 앞으로 친환경 농업을 유기농 중심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배경이 뭔가.
"친환경농산물 저농약 인증제가 올해로 폐지된다. 내년 초부터 본격 유기농 시대가 열리게 된다. 친환경 개념이 더 엄격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유기농 중심 농업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전남이 전국 친환경 인증면적의 50%를 차지하는데, 유기농도 전국 50% 비중을 유지하자는 게 목표다. 이를 실현하려면 생산과 판매를 도와야 한다."

"중국인들, 아름다운 환경에 대한 갈망 있다"

- 전남도의 친환경 농업 지원정책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이 달라졌는지 농축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설명해 달라.
"우선 생산에서는 유기농 인증농가의 소득감소분과 생산비 차액 보전을 위해 지원하는 직불금을 그동안 국비로 5년간만 지원하던 것을 전국 지자체 최초로 도 자체 예산을 확보해 5년이 지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원(ha당 논 60만 원, 밭 120만 원)하겠다. 또 친환경 농산물 인증품목을 쌀 중심에서 채소, 과수, 임산물 등으로 넓혀서 전남이 유기농은 항상 선두라는 브랜드를 지켜나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매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내 유치원, 어린이집, 초-중-고교 급식에 유기농 쌀을 100% 사용해 확실한 판매처를 확보하면서 아이들 건강도 챙기겠다. 이를 위한 추가예산 4억 원은 이미 편성했다. 내년에는 광주시와 서울에도 유기농 쌀 급식을 요청할 생각이다. 또 농협, 한살림, 생협 등과 계약재배를 확대하고, 한마음공동체, 학사농장 등 향토업체의 대도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확대해 안정적 유통망을 확충해 나가겠다."

- 도청의 신년 업무보고와 지사의 동선을 보니 도정의 안테나가 중국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도처럼 중국 관광객이 찾을 만한 '킬러 콘텐츠'가 전남에 구비되어야 하는데 어떤 구상을 갖고 있나.
"간단히 말하면, 섬과 친환경 농업이다. 중국이 갑작스런 도시화와 공기 오염에 시달리다 보니 맑은 공기와 물, 안전한 식품에 대한 요구가 있다. 도시를 벗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에 대한 갈망이 있다. 제주도는 포화상태고 신선한 식품 제공에 한계가 있다. 전남의 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거기에 있다.

10월말 상해에서 무안공항 통해 귀국할 때 중국 동방항공을 탔다. 기내 잡지를 보니 뉴질랜드 우유광고가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신선한 식품, 바로 이게 전남도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북경에서 당 고위 여성인사를 만났다. 스마트폰을 보여주는데 전남 영암에서 먹은 한우고기 사진을 보여주더라. 맛있고 행복해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고 말하더라. 놀랍게도 중국에서 쇠고기 수요가 늘고 식생활 변화가 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부응하는 게 전남도의 할 일이다."

- 상하이 근교 친환경 농업단지를 체험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분야는 한국보다 한참 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 스스로가 자국식품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 전남에서 중국 수출 식품 중 1위가 고흥유자차이고, 그 다음으로 완도 김이 많다. 중국 내륙지방은 앞으로 냉동 해산물에 대한 수요도 높아진다. 유기농산물 생산-가공-체험의 6차산업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중요시하는 중국 부유층을 집중 겨냥해 수출을 늘려나가겠다."

이낙연 지사는 지금 '섬'과 '숲' 그리고 중국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가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전남을 '청년이 돌아오는 생명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즐거운 변화'는 이제 막이 올랐다.


태그:#이낙연, #전라남도, #섬 가꾸기, #숲 민들기, #친환경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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