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머리가 열리는 나무를 찾아- 투르판 01
▲ [당신에게 실크로드 09] 사람머리가 열리는 나무를 찾아- 투르판 01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앎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익숙한 공간에서 눈을 떠서 최단 시간을 계산해 버스를 타고, 아는 사람과 인사를 하며 삶을 살아간다. 불확실성이 없는 세상. 내가 아는 세상은 늘 평화롭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번거롭게 질문하지 않아도,  낯선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모르는 세상은 정반대다. 정해진 것은 없고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갈림길에는 선택이 필요하고, 선택에는 확신이 동반된다. 하지만 그 확신은 맨땅에 헤딩이라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얻어진다. 모름 속에서 산다는 것은 피곤하고 또 위험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세상에서 발을 떼기 두려워한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 이라고.

바꿔서 말해볼까. "중원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고." 당시 중원을 떠나 서역으로 향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랬을 거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서역으로 향하는 친구를 전송하며 시를 읊었다. "그대에게 다시 한 잔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 벗이 있겠는가." 앞으로 다시 못 볼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거다.

양관과 함께 서역으로 향하는 관문 중 하나다. 이 길을 나서면 천산북로로 이어진다
▲ 옥문관 양관과 함께 서역으로 향하는 관문 중 하나다. 이 길을 나서면 천산북로로 이어진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서역. 기원전 3~4세기에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온갖 괴물과 야만인이 나오는 곳이다. 변경을 넘으면 머리가 하나에 몸이 셋인 삼신국 사람들도 있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관흉국 사람들도 있다. 코끼리의 몸에 얼굴은 없는 제강이라는 동물도 있다.

세월이 몇 백 년 지나도 서역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중국 당나라 때 쓰여진 술이기(述異記)에는 서쪽 바다 위에 있는 대식왕국에는 인면수(人面樹)가 있다고 한다. 이 인면수는 사람의 얼굴과 똑같은 꽃이 피는 나무인데, 너무 많이 웃으면 그 얼굴 같은 꽃이 떨어진다 했다. 공교롭게도 서쪽의 페르시아에도 이런 인면수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람 머리가 열린다는 왁왁나무다. 말하는 나무라고 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의 숲에 도착했을 때 돌아가라는 신탁을 전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말하는 나무를 방문한 알렉산더 대왕. 14세기 이란 카니왕조
▲ 왁왁나무 말하는 나무를 방문한 알렉산더 대왕. 14세기 이란 카니왕조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저 변경을 넘으면 저 너머는 불확실성의 세계. 확실한 정보는 없이 소문만 무성한 세계다. 로마 사람들은 비단이 나무에서 열린다고 믿었고, 중국 사람들은 서쪽나라 바다에는 귀신끼리 물건을 거래하는 귀신시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탄 야간 버스는 투르판을 향하고 있었다. 뒷사람 발이 내 머리에 닿는 구조라 밤새 모르는 사람 발 냄새에 시달렸다. 버스기사는 달리며 연신 담배를 피워댄다. 한밤 중, 검문소 같은 곳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소문대로 칸막이 없이 구멍만 뻥뻥 뚫려있다. 두 명이 동시에 볼 일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내가 입구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자 중국 아주머니 한 명이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킨다. 그나마 남녀 구분이 있어서 다행인 건가. 사실 중국 여행 전에 가장 겁을 냈던 부분이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덤덤하다. 뭐 어떠랴. 나는 지금 변경 넘어 신비로운 세계로 향하는데.

오전 8시 30분. 버스는 서역에 도착했다.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세계

투르판에 유스호스텔이 있다는데 결국 못 찾았다. 택시 기사를 닦달하다가 포기하고 투르판 빈관이라는 중급 호텔로 갔다. 그 호텔 지하에 60위안짜리 도미토리가 있다. 도미토리에 가보니 침대 세 개가 있다. 침대 헤드가 모두 시꺼멓다. 수많은 사람이 기름진 머리를 비볐을 저 침대헤드에 나도 머리를 비벼야하나. 내 마음 속 소녀 감수성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결국 100위안 더 내고 지상의 호텔방으로 옮겼다. 사실 방보다 지하 복도가 문제였다.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음산함이다.

변경 너머 신비로운 세계, 투르판. 그러나 첫 인상은 신기할 정도로 더러운 호텔 때문에 무너졌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세계긴 하다. 이곳부터는 신장위구르 자치구다. 중국에 속해있긴 하지만, 이곳을 중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부터 바뀌었다. 오묘한 떨림이 있는 중국식 가락이 아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흥겨운 리듬이다. 사람들 외모도 바뀌었다. 눈이 깊고 코가 큰 서역인의 얼굴이다. 히잡을 쓴 여성들도 많고, 제시카 고메즈 닮은 예쁜 아가씨들도 눈에 띈다. 투르판의 인구 중 70 %는 위구르인이라고 한다.

위구르 인들은 큰 눈과 짙은 눈썹을 지니고 있다
▲ 이발소 아저씨 위구르 인들은 큰 눈과 짙은 눈썹을 지니고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미인이니까 사진 좀 찍어주세요" 라고 하자 환하게 웃는 그녀. 미녀는 마음도 예쁘다
▲ 위구르 아가씨 "미인이니까 사진 좀 찍어주세요" 라고 하자 환하게 웃는 그녀. 미녀는 마음도 예쁘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시장 분위기도 확 달라진다. 물건들은 훨씬 더 조악해졌지만, 파는 물건은 스카프, 향신료, 기도용 작은 카펫 등 훨씬 다채로워졌다. 이곳 특유의 무늬가 새겨진 옷감 구경도 흥미롭다. 초록, 파랑, 노랑, 빨강, 검정, 흰색으로 되어 있는데 공작새 깃털 같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늘 명절 같은 화려한 원피스 차림이다. 투르판 여인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유심히 보다가 무늬가 화려한 원피스와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를 하나 샀다.

전통복을 입은 위구르 소녀
▲ 전통복 전통복을 입은 위구르 소녀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투르판의 재래시장, 물건은 조악해졌지만 색깔은 화려해졌다
▲ 시장풍경 투르판의 재래시장, 물건은 조악해졌지만 색깔은 화려해졌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신비로운 서역, 투르판에는 불타는 산과 요괴가 있다. 화염산 이야기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서역으로 향할 때, 요괴의 방해로 불이 타고 있는 이곳을 지나가지 못했더랬다. 결국 나찰녀에게 파초선을 빼앗아 마흔 아홉 번 부치고 이 산을 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화염산은 붉은 사암으로 된 산이다. 울퉁불퉁 깊게 파인 산의 모습이 흡사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모양새다. 50도는 기본, 70도가 넘을 때도 있다는 한 여름에 보면 진짜 타오르는 모습일 거 같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촉~
▲ 하늘을 나는 손오공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촉~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화염산 구경에도 질릴 즈음, 주황색 새 같은 큰 기계가 들판 곳곳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석유 시추기다. 아, 신비롭다 투르판. 산은 저절로 불타고 땅에선 기름까지 나는구나. 불모의 땅에서 돈이 뽑혀 나오는 걸 보면서 난 질투에 시달렸다. 이때 머릿속에 어린왕자가 스쳐지나갔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이 철없는 어린왕자를 여기에 데려다 놓고 싶다. 아가야, 사막은 기름을 감추고 있어서 아름다운 거란다. 국제유가에 울고 웃는 비산유국 국민의 심정을 네가 알겠니.

사막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땅, 사막. 부드러운 둔황의 사막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금빛 모래는 사라지고 무채색 자갈밭과 황량한 산이 이어진다. 투르판은 그 메마른 땅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존재한다. 투르판 시내에 들어서면 키 높은 포플러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푸른 낙원이다. 나무 잎사귀가 한 노인의 등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흥겨워졌다. 풍요로움에서 오는 기쁨이다.

투르판은 텐산산맥 남쪽의 분지지형이다. 위구르어로 '움푹 들어간 땅'을 뜻한다. 해발이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도 있다. 그 낮은 지형이 이곳을 오아시스로 만들어 주었다. 사막의 사람들은 우물을 만들어 설산의 눈 녹은 물을 모으고 지하에 긴 터널을 팠다. 지하의 수로는 물의 증발을 막고, 낮은 지형을 따라 물은 저절로 30~40 km떨어진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설산의 눈녹은 물이 지하수로를 따라 여기까지왔다
▲ 카레즈 설산의 눈녹은 물이 지하수로를 따라 여기까지왔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이 관개수로가 투르판의 또 다른 신비, 카레즈다. 카레즈는 시내에 두 개의 박물관이 있다. 카레즈 시설의 모형과 원리 등을 전시해 놓았다. 대단한 구경거리라기보다 지하수로로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혼자 '퐁당퐁당'을 부르며 놀고 있는데 다시 어린왕자가 등장한다.

"것 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 녀석이 끈질기다. 그래, 샘이 있어서 사막은 아름답다. 정확히는 반전의 매력이다. 쓸모없는 듯 보이나 자원이 나오고, 죽어있는 듯 보이나 생명을 지니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대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막 속 오아시스의 매력을 즐기기 위해 포도구로 갔다. 포도구는 시 외곽의 포도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투르판의 고온 건조한 날씨는 질 좋은 포도를 만들어 냈다. 길을 가다보면 황토색 흙벽돌로 듬성듬성 지어놓은 집이 있는데 건포도를 말리기 위한 창고다. 아직 5월이지만 벌써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 관광지인 포도원에서 포도덩굴 아래를 거닐며 잠시 한숨 돌렸다.

포도구에는 집집마다 건포도를 말리는 창고가 있다
▲ 포도구의 집 포도구에는 집집마다 건포도를 말리는 창고가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오디는 까만 오디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하얀 오디도 있다. 맛은 둘다 맛있다.
▲ 오디 따는 아저씨 오디는 까만 오디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하얀 오디도 있다. 맛은 둘다 맛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마을로 나서봤다. 일요일 오전, 전체적으로 조용하다.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트랙터에 탄 채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도 당연하다는 듯이 트랙터를 몰았다. 오디의 계절이었다. 잘익은 오디를 따먹으며 남의 동네 구경을 했다. 이곳의 집은 담이 높고 어두침침한 중국식 집과 달랐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평상이 있고 시렁 위의 포도덩굴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대문이 예쁘다. 나무 대문에 공간을 나누어 색이 예쁜 그림을 그려놨다. 정성이 들어간 퀼트공예를 보는 것 같다. 무슬림의 상징인 별과 달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소공탑과 같은 이슬람 건축물, 투르판의 특산물인 수박과 포도 그리고 춤추는 여인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집집마다 다른 대문의 모습에 반해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유난히 예쁜 대문이 많았던 투르판
▲ 투르판의 대문 유난히 예쁜 대문이 많았던 투르판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대문이 예쁜 집에는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 위구르 노부부 대문이 예쁜 집에는 마음씨 고운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유난히 대문이 예쁜 집을 한참 보고 있는데 안에서 스카프를 쓴 위구르 할머니가 나왔다. 웃으며 인사를 하자 손목을 잡아끈다. 마당 구석에서 부추를 다듬던 할아버지는 대문으로 들어서는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오래 전부터 알던 이웃집 손녀를 맞이하는 것 같다.

평상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할머니가 뜨거운 물에 찻잎을 하나 띄워 주셨다. 부추를 다듬던 할아버지 손길이 분주해진다. 이거 다듬어 줄 테니 점심을 먹고 가란다. 라디오에선 이슬람 기도문이 흘러나오고, 두 내외는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이를 대접할 준비에 바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 진짜 다른 세계에 들어섰구나.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투르판, #화염산, #카레즈, #포도구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