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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상주중학교.
 남해 상주중학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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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시인(詩人)인 중학교가 있다. 중학생 시인들이 한 해 동안 쓴 시를 모아 시집을 펴냈다. 남해 상주중학교(교장 여태전)가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라는 제목의 시모음집을 최근에 냈다.

이 학교가 전교생 시모음집을 내기는 이번이 네 번째다. 학생들이 <국어> 수업시간에 쓰거나 '재량시간 시 쓰기' '환경보전 전시회 작품' 때 썼던 작품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다.

이번 시 모음집에 담긴 시는 200여 편. 이 학교는 1~3학년 전교생이 63명인데 최근에 전학 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시를 1~3편씩 써서 책에 수록했다.

중학생 시인의 작품은 '일품'이다. 시는 때가 묻지 않았고, 상주은모래해수욕장의 모래처럼 맑다. 시의 소재도 다양한데, 요즘 중학생의 관심거리인 온라인 게임인 '롤'(LoL)이라든지, 페이스북도 등장한다.

이 학교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과 바로 붙어 있다. 창문을 열면 남해의 비릿한 바닷내음이 바로 코로 들어오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해수욕장에 떨어질 정도다. 이런 풍광을 수채화처럼 묘사해 놓은 시들도 있다.

학생들의 시 쓰기는 한정숙 교사의 지도로 이뤄졌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쓴 시를 스스로 낭송해 보도록 한 뒤 수행평가에 참고로 하기도 한다.

한 교사는 "아이들한테 시를 쓰도록 했더니 정서적으로 매우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쓴 시는 별로 손 보지 않고 거의 그대로 책에 실었다, 아이들이 쓴 시가 인쇄되어 나오니까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주중학교는 중학생 시인들이 쓴 시모음집을 연말에 내서 각 가정에 배부하고, 관내 관공서 등에도 배부해 지역주민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를 잘 쓰는 학교답게, 이 학교 학생들은 '남해군 학예제 백일장' 등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계산하지 않고 세상을 만나는 아이들"

남해 상주중학교는 전교생들이 쓴 시를 한데 묶어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라는 제목으로 시모음집을 냈다.
 남해 상주중학교는 전교생들이 쓴 시를 한데 묶어 <토끼를 깨워 함께 가는 거북이>라는 제목으로 시모음집을 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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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시집을 내기도 했던 여태전 교장은 "아이들의 시를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빙그레 웃음 짓는 순간이 많았다, 아이들의 시는 꾸밈없이 솔직하여 따뜻한 미소를 자아낸다, 맑고 밝고 따뜻한 언어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라며 "아이들은 요모조모 계산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대상과 세상을 만난다, 시는 직관으로 쓰는 언어예술이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다 직관력 높은 시인"이라고 말했다.

여 교장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대상에게 맑고 밝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거기서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며 "아이들이 태생적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시를 술술 풀어내게 하는 일이 교사의 교육활동이다, 아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눈빛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이 곧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남해 바닷물처럼 맑은 중학생 시인들이 쓴 시 몇 편을 감상해 보자.

"골마루,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골마루/골마루, 교실로 들어갈 때 꼭 밟고 가야되는 골마루/골마루, 작품도 전시하고 꽃도 전시하기 좋은 골마루/골마루가 있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작품도 전시하고/난 골마루가 좋다"(1년 전승훈 "골마루").

"커튼이여! 저 강한 햇빛을 막아다오/커튼이여! 내 미래는 막지 말아다오/커튼이여! 저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지 말아다오/커튼이여! 내 앞에 있을 때와 내 뒤에 있을 때를 구별해 주오/커튼이여! 내 앞의 짜증나는 벽이 아닌 나의 아름다운 문이 되어 주오"(1년 김정빈 "커튼").

"지우개를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지우개는 쓰면 쓸수록 없어지고/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 기억을 잃어버린다/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기억들이 사라지고 내가 없어진다/지우개를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2년 기철호 "지우개).

"수업 종이 쳤다 10초 후에 중앙 계단에서 들리는 신발소리/빠르도다 빠르도다 이렇게 빨리오다니 큰일이로다/쉬는 시간 종이 쳤다 5분이 지나도 말을 해 드려도 나가지 않는 사회 선생님/야속하도다 야속하도다 왜 나가지 않는 것인가?/언제부터 수업 시간이 50분으로 바뀐 것인가?"(3년 이한솔 "사회시간").

"나처럼 길고 얇은 몸을 가진 나처럼 까만 머리를 가진 내 연필/내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림을 그려주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글씨를 써 주는 내 연필/선생님의 속사포 수업을 빠르게 받아 적는 내 연필/연필이 저절로 시험지에 정답만을 써 주면 좋으련만"(3년 김지용 "연필").

"학교 올 때 맨날 보면서 오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여름엔 행복한 모습의 사람이 가득한 상주은모래해수욕장/수업중 창 밖을 보면 시원한 바닷물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푸르른 바닷물에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풍덩! 하고 빠지고 싶네/학교 올 때 맨날 보면서 오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1년 정찬우 "상주은모래해수욕장").

남해 상주중학교 도서관.
 남해 상주중학교 도서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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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상주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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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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