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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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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들은 하나·외환은행 통합은 이미 결정됐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약속했던 합의문을 지키라고 하면 생떼 부린다고 생각해요. 약속을 지키자는 내가 오히려 매도당하는 상황입니다. 회사는 '통합은 이미 결정됐으니, 너희는 챙길 것 있으면 챙겨라'는 식이에요."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짧은 한숨을 반복해서 내쉬었다.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노조사무실 한 켠 간이침대가 이유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해 여기서 먹고 잔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경영진의 일방적인 통합 결정에는 흥분하기도 했다.

그럴만도 하다. 지난해 7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회장이 노조와 합의 없이 돌연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을 선언을 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이는 2012년 2월 17일 작성된 외환은행을 향후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이른바 2·17합의서는 노사뿐 아니라 당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입회해 서명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노사합의 없이 단독으로 합병신청을 하더라도 이를 처리해주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노조는 더 수세에 몰렸다. 지금까지 금융위원회는 하나금융지주가 합병신청을 해도 예비인가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말을 바꾼 것이다.

지난 13일 노조는 통합여부 논의를 포함한 60일기한 본 협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지주는 노조와의 대화와는 관계없이 수일 내 예비인가 신청을 제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15일 오후 5시께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노조사무실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다. 사측 대표단과 본 협상 1차 회의를 마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외환은행을 위해 머리를 맞대자며 대화에 나섰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그날 노사 간 나눈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예비인가신청 제출 말라고 하니 김한조 행장 침묵하더라"

"노사 간 대화 중에 예비인가신청을 내지 말 것을 요청하니 대표단 5명이 한 순간에 조용해지더라"
 "노사 간 대화 중에 예비인가신청을 내지 말 것을 요청하니 대표단 5명이 한 순간에 조용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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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명동 KT빌딩에서 김한조 외환은행장을 포함한 사측대표단 5명과 김 위원장을 포함한 노조대표 5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김 위원장은 "60일 본 협상 의제와 일정을 김 행장에게 전달했다"며 "김 행장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60일이 아니라 1주일 안에 끝낼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유감도 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47년의 역사를 지닌 외환은행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고 고객, 기업, 조직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걸린 문제"라며 "절대 1주일 안에 논의될 수 없는 사안들"이라고 못 박았다.

또 하나금융지주가 금융위에 합병예비인가 신청을 수일 내 제출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3번 정도 강하게 반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김 행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 위원장은 "노사 간 대화 중에 예비인가신청을 내지 말 것을 요청하니 대표단 5명이 한 순간에 조용해지더라"며 "이 안에서는 예의를 차리지만 밖에 나가서는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 같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3시간 동안 협상을 끝내고 나와서 예비인가 신청 임박이라는 기사들이 쭉 뜨는 걸 보니 순간 멍하더라"며 "'과연 저 사람들이 이 대화에 진정성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이날 하나금융지주는 회사 차원에서 작성한 제안서를 노조에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이 자료를 공개했다. 지주 쪽이 작성한 이 제안서는 '통합 협상 의제 및 논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두 장 분량이다. 크게 통합방향 및 원칙, 고용안정, 인사원칙 및 근로조건 등을 포함했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2·17합의서의 고용안정, 근로조건 등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 한다',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 및 부속합의서를 포괄적으로 승계한다',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보상체계를 도입 한다', '업무 및 IT통합추진과 관련해 시스템 통합 시 반영되지 않은 부문에 대해서는 새로운 TFT를 구성해 개선·반영 한다' 등을 명시했다.

김 위원장은 "굉장히 미흡한 자료"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회사 측이 내민 제안서는 조합에 대한 일방적인 통보"라며 "내용도 보면 통합을 전제하에 조합원이 궁금해 하는 사안으로 축소해 제안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통합전제'가 아니라 '통합여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외환은행 통합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줬다"며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유무형의 어려움이 분명히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합을 진짜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양쪽이 솔직하게 논의하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통합여부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공개토론회를 열 것을 사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금융위원회의 입장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난 12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7월 이후 하나·외환 간 노사합의를 6개월 동안 기다려왔다"며 "노사가 합의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노사가 끝내 협의가 안 될 경우 노사합의 없이도 하나·외환은행 통합을 승인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노사합의를 6개월 간 기다렸다는데 그건 김정태 회장의 입장일 뿐"이라며 "지난해 7월 김 회장이 일방적으로 통합을 선언했는데 노사 간 실질적 대화는 11월에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11월 28일 노사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협상을 시작했지만 12월 23일 이후로 중단됐고 실질적 협상기간은 20여일도 안 된다"며 "본 협상을 이제 시작했는데 대화기간을 충분히 줬다는 말은 납득이 안 간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예비인가신청 받으면 협상모드에 찬물을끼얹는 것"

김 위원장은 "본협상 제의(14일)한날부터 다음날 인가신청을 내겠다고 기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며 "만약 금융위원회가 지주 쪽의 예비 인가신청을 받는다면 협상모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고 관이 나서서 통합에 대해 강압하는 꼴이 되는 것"
 김 위원장은 "본협상 제의(14일)한날부터 다음날 인가신청을 내겠다고 기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며 "만약 금융위원회가 지주 쪽의 예비 인가신청을 받는다면 협상모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고 관이 나서서 통합에 대해 강압하는 꼴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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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오는 17일 하나금융지주가 합병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금융위가 28일 정례회의에서 이를 처리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 묻자 김 위원장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에 대해 노조 차원의 입장 정리가 아직 안 됐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본협상 제의(14일)한날부터 다음날 인가신청을 내겠다고 기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만약 금융위원회가 지주 쪽의 예비 인가신청을 받는다면 협상모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관이 나서서 통합에 대해 강압하는 꼴이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주와 금융위가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예비인가신청을 할 경우)대화 중단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6급전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보였다. 노조가 통합전제조건으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끼어 넣고 '시간끌기'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사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큰 틀에 대해서는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아니면, 일부만 전환할지와 급여 인상 여부에 대해서는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재 외환은행 전체 직원 7400여명 중 약 27%인 2000여명은 무기계약직이다.

김 위원장은 "2013년 10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합의했다"며 "이를 지난해 1월까지 시행하기로 했지만 사측은 1년 넘게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측에서는 정규직 전환이 비용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애초에 합의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비용 등)부풀린 계수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사회통념상 은행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랑 다를 바 없는데 그걸 가지고 이러냐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안다"며 "그러나 조직 내에선 엄연히 차별이 존재하고 또 무엇보다 전환에 대해 직원들에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과는 별개로 노조위원장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다"라고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과 인터뷰는 1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외환은행을 지키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만약에' 통합을 한다면 꼭 좋은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이라는 이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의제입니다. 우리를 믿어준 고객들, 그리고 외환이란 자부심으로 일했던 직원들을 위해서죠. 하지만 '만약에' 통합을 한다면 정말 좋은 통합이 되어야합니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통합을 이룰 수 없어요. 조직과 조직을 합치는 일이에요. 특히 조직문화가 잘 융합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한 교감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고요. 통합을 위한 통합이 안 되도록 최선을 다해봐야죠."


태그:#하나금융지주, #외환은행, #김근용 , #김정태, #김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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