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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에는 서른 개가 넘는 지역언론이 있다. 그 가운데 협동조합이라는 틀에서 출발한 독특한 언론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콩나물신문>(www.kongnews.net)이다. 이 글은 <콩나물신문>의 새내기 기자가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고 뒹굴며 신문을 만들다 겪는 이런저런 일들을 온전히 기자 마음대로 적는 글이다.

<콩나물신문>이 어떤 신문이고 왜 이름이 '콩나물'인지 한 번에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실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연들이 쌓여갈수록 <콩나물신문>은 잘 자란 콩나물처럼 점점 토실해질 것이고 또 그런 콩나물들이 수북이 담긴 시루처럼 풍성해질 것이다. - 기자 말

운전면허시험장
 운전면허시험장
ⓒ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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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면허 딸 돈이 없어서이고 그 다음으로는 굳이 면허를 따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아직도 면허가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러는 당신들은 왜 운전면허를 갖고 있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언제부터 운전면허가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을까. 한 달에 백만 원 남짓 버느라 공과금이다 뭐다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사람한테 운전면허를 따라고 말하는 건, 결국 한 달 동안 밥을 굶으라는 얘기다. 바쁘면 버스나 택시를 타면 된다. 백 년도 못 사는 사람이 시간을 아끼면 얼마나 아낀다고 차를 굴리는 걸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콩나물신문사에서 만난 이사님들 가운데 내게 운전면허를 따라고 되풀이해 말하는 한 분이 있었다. '기자의 기본은 신속성인데 <콩나물신문>에 기자로 들어왔으면서 운전면허가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분은 거푸 강조했고 나는 그냥 헤헤 웃으며 입을 닫았다. 기자의 기본은 신속성이 아니라 진실성이라고, 내가 아는 기자들 가운데는 차 없이 움직이는 기자도 제법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있었다.

신속성이라니 얼마나 우스운 표현인가.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과 자동차를 타는 것을 견주면 시간이 대체 얼마가 차이 날까? 기사 하나가 쓰레기가 되느냐 마느냐 가를 만큼 정말 엄청난 차이가 날까? 그래도 이 바닥에서 기자들도 여럿 알고 현장 취재랍시고 이곳저곳에서 굴러먹다 온 나는 신속성 운운하는 것이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자의 신속성이란 어떤 장소에 가장 빨리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언제 떠날지를 가장 빨리 판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읽어본 <콩나물신문>에는 1분 1초를 다투는 바쁜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큰 언론사가 내는 신문에서도 막상 그런 소식들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기자의 기본은 신속성인데..." 표정관리 어려웠지만

콩나물협동조합 이사회가 열린 날, 뒤풀이에서 또 다시 내 운전면허 이야기가 나왔다. 두 번째로 듣고 있자니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면 운전면허 학원비를 대신 내줄 테니 일단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빨리 면허부터 따라는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입술을 실룩거리며 억지로 웃으려 애썼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운전면허가 있는 기자를 바라신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런 사람을 새로 뽑아 쓰시라'는 말이 혀끝에까지 올라앉아 있었다. 면허를 따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난해부터 조금씩 품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내가 왜 빚까지 져가면서 억지로 운전면허 공부를 해야 하는가.

팽팽하게 당겨진 새총처럼 온몸이 뻣뻣해져 있는데, 뒤풀이 자리의 이야기는 2월 말에 있을 정기총회까지 조합원을 몇 명이나 더 모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사님들은 총회 날까지 300명이 넘는 조합원이 들어오면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들을 이야기했고, 이사 한 명이 새 조합원 10명씩을 데려오자는 약속을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사님들이 함께 돈 추렴을 하기로 했는데 그 짧은 사이에 꽤 많은 돈이 모아졌다.

그냥 다들 <콩나물신문>에 자기 돈 때려박자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사님들의 얼굴은 마치 방금 켠 전구처럼 환했다. 모두들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떻게든 총회 전까지 300명만 넘겨 보자고 술잔을 쨍쨍 부딪치는 이사님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찡했다고 해야 할까. 돈 한 푼 안 나오는 일에, 오히려 자기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나 기분 좋아할 수 있다니.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흔히 엿보이는 어떤 단단한 힘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고, 300명은 열심히 하면 분명 넘길 수 있다며 해맑게 웃는 얼굴들을 보면서 더러운 것이 섞이지 않은 어떤 열정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게 학원비 대줄 테니 운전학원 등록하고 면허 따라고 지난번에 이어 거푸 이야기하던 이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내 마음은 마지막으로 크게 움직이고야 말았다.

"새 기자님한테 선물 하나 드리고 싶어서 그래."

간절한 열정을 확인한 순간, 스트레스가 고마움으로

도시 한가운데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의 불 같은 마음에 나도 뭔가 성의를 좀 보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니 이번이 아니면 운전면허를 또 언제 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옆자리에 어머니를 태우고 벚꽃 구경을 가는 오래된 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그분이 도와주시는 돈으로 운전면허를 따기로 마음먹고 그분에게 내 뜻을 전했다. 그전까지는 뻣뻣하기만 하던 온몸이 그제야 풀렸다.

기자라는 직업에 신속성이라는 것을 갖다붙이는 것에는 여전히 뜻을 함께 할 순 없지만, 취재 말고도 자동차를 써먹어 가며 <콩나물신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내가 그분들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결국 내게도 그리 나쁘진 않을 테니, 이번 기회에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니 내게 선뜻 학원비까지 안겨준 그분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해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콩나물신문> 조합원들은 다들 가족이자 선후배이자 친구라고 거듭 힘주어 이야기하는 그분의 품이 참 넓게 느껴지기도 했다.

봄이 오기 전에 운전면허를 딴다고 해서 내가 가려는 곳에 전보다 더 빨리 다다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설령 차이가 난다고 해도 조금만 더 일찍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협동조합 하나를 1년 동안이나 애써 지켜온 분들 사이로 파고드는 데에 쓸모가 있다면, 그리고 그분들에게도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운전면허증이라는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도 제법 소중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뜻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콩나물협동조합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재미있자고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참 뭉클한 곳이기도 한 것 같다.


태그:#콩나물신문, #마을신문,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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