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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홀리는 사막의 울음소리- 둔황 01
▲ [당신에게 실크로드 07] 여행자를 홀리는 사막의 울음소리- 둔황 01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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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릅니다... "아무것도 없잖어"

기차에서 눈을 떴다. 아직 둔황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남았다. 란저우에서 둔황까지는 14시간이 걸린다. 바깥을 바라보니 산도 나무도 없는 삭막한 풍경이 펼쳐진다. 풍력발전기만 몇 킬로미터씩 이어져 있었다.

란저우에서 둔황가는 기차안
▲ 풍력발전기 란저우에서 둔황가는 기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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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눈을 가늘게 뜨고 봐도 산이 안 보인다. 조금이라도 물이 있으면 어김없이 민가가 있다. 찰흙을 개어 만든 듯 작고 네모난 집들이다. 정말 사람이 사는 걸까. 또 혼자 이상한 곳에 와버렸구나. 어쩐지 쓸쓸해진 아침이다. 여정의 10분의 1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쓸쓸하면 어쩌자는 건지. 신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했다.

여긴 아무 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 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포기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되돌아 갈수도 없잖어
- 장기하와 얼굴들, <아무것도 없잖어>

'저쪽으로 석 달을 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나온다는 선지자의 말만 믿었는데 와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한탄을 내용으로 한 명곡이다. 푸석한 바깥 풍경과 잘 어울린다. 풍경만 푸석한 게 아니다. 하루를 기차에서 보낸 내 피부도 건드리면 바스라질듯 메말라 있다. 30대 중반, 마른 나무에 물 주듯 피부에도 수분공급이 필요한 나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내 피부가 받아야 할 대접에서 너무 먼 길을 택했다. 앞으로 몇 달간 이런 메마른 풍경이 이어질 터였다. 미안해, 피부야.

드디어 나무와 풀이 꾸준히 보이기 시작한다. 오아시스의 도시 '둔황'이다. 옛날엔 과일이 많이 난다고 '과주(瓜州)'라고 불리고, 또 모래가 많다고 '사주(沙州)'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실크로드의 전성기, 오아시스는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필요한 물자를 준비해 두 갈래로 흩어졌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피하기 위해서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한 번 가면 당신은 돌아올 수 없으리라"라는 뜻이란다. 저주같은 이름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동서 1000㎞, 남북 400㎞에 달한다. 면적으로 보면 영국보다 넓다. 시간도 공간도 길을 잃고 아득해지는 곳. 그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을까. 이 사막을 북으로 우회하는 길을 천산북로, 남으로 우회하는 길을 천산남로라고 한다. 나는 천산북로를 따라 투르판, 우루무치, 쿠처, 카스로 갈 계획이었다. 

둔황 시내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못생긴 체 게바라가 그려져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오후에 시내를 돌아보는데, 아까 기찻간에서 부르던 '아무것도 없.잖.어' 노래가 절로 나온다. 시안이나 란저우처럼 고층 건물은 아예 없다. 납작한 건물들과 쭉쭉 뻗은 대로, 이쪽으로 30분, 저쪽으로 30분 걸으니 대충 시내 구경은 끝났다. 사실 둔황시 볼거리보다는 둔황 외곽의 모래산인 명사산과 석굴군인 막고굴이 유명하다. 또 옥문관과 양관, 서천불동, 한대성벽, 야단지질공원 등도 둔황에서 가볼 수 있는 관광지다.

시내 중심에는 둔황의 상징 '반탄비파상'이 있다. 비파를 머리 뒤로 넘겨 연주하는 비천상의 모습인데 막고굴 237호굴 벽화에 등장한다. 비파 좀 칠 줄 안다고 뒤로 치다니.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다. 비파 역시 페르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온 악기다. 우리나라에는 5세기경 신라에 도착했다.

비파는 이 맛에 치는 거다
▲ 반탄비파상 비파는 이 맛에 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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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사주 야시장이 문을 연다. 비천상을 조각한 나무 공예품, 스카프, 장신구, 유리공예품 등 관광지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시장 구경을 흥겹게 만든다. 하등 쓸모가 없는걸 알지만 지갑에서 위안화가 날 좀 꺼내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면 빛을 잃을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여행 중엔 이런 조악한 물건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양꼬치 구이와 맥주가 둔황의 밤을 흥겹게 만든다. 이번에는 닭발로 된 중국 요리를 시켜봤다. 닭은 어쩜 발도 맛있는지. 중국 친구들은 한국의 '치맥'을 궁금해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영향이다. 치맥을 먹어본 적 없는 이들에게 그 맛을 어찌 전하겠는가.

밤 늦도록 인파를 헤치고 돌아다니자, 이제야 옛 교역의 중심 도시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은 사람들은 멀리서 보이는 도시의 모습에 신기루가 아닌지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큰 숨을 내쉬며 술과 음식, 그리고 미녀가 가득한 풍요로운 도시로 즐겁게 들어왔을 것이다. 낙타 등에는 서역에서 온 유리, 금, 후추, 이국적인 동물 등이 실려 있었을 것이고, 온갖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사막을 건넌 모험담을 자랑했을 거다.

오아시스가 품은 도시 둔황, 그때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사막 속에서 홀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밤이 되어야 둔황은 활기를 찾는다
▲ 사주야시장 밤이 되어야 둔황은 활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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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어쩜 발도 맛있는지~♡ 닭과 함께 둔황의 밤은 '평화롭닭'
▲ 사주야시장 닭발 요리 닭은 어쩜 발도 맛있는지~♡ 닭과 함께 둔황의 밤은 '평화롭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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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홀리는 사막의 울음 소리

명사산(鳴沙山). 산이라고 이름 되어 있지만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의 모래 구릉을 칭한다. 명사산은 둔황 시내에서 5Km 정도 떨어져있는데, 120위안(한화 2만 2천원 정도)을 내야 한다. 주황색 장화를 빌려 신고 사구를 오르며 경치 구경을 할 수도 있고, 낙타 타기, 패러글라이딩, 사륜 구동차 등을 체험할 수도 있다. 관광지다 보니 조금 번잡한 감이 있다. 하늘과 모래만 있는 '진짜 사막'의 막막함을 느끼려면 사람들을 피해 꽤 걸어야 한다.

관광지 명사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사막에 신비하게 솟은 샘 '월아천'이다. 초승달처럼 생긴 월아천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둔황이 사막으로 변하자 하늘의 천녀가 흘린 눈물이 이 오아시스라고 한다. 실제로는 곤륜 산맥의 눈 녹은 물이 이곳에서 솟았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고갈되어 지하수로 물을 보충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신비로운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선 기술력이 필요한 시대다.

3천년간 물이 마른적 없었으나 지금은 주변의 농지개발로 물이 고갈되어 지하수로 보충중이다
▲ 월아천 3천년간 물이 마른적 없었으나 지금은 주변의 농지개발로 물이 고갈되어 지하수로 보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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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鳴砂)'는 '모래가 우는 소리'라는 뜻이다. 바람에 모래가 날리면서 나는 소리가 울음소리나 음악소리 같다는 거다. 마르코 폴로는 모래가 우는 소리를 '밤에 여행자를 불러내는 유령의 목소리'라고 했다. 대오에서 멀어졌을 때 동료의 목소리인양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 목소리를 따라갔다가 영영 길을 잃고 사라진다는 거다. 심지어 북과 같은 악기나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환각에 사로잡힌다고 하기도 했다.

마르코 폴로에 대해선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쿠빌라이 칸이 우울할 때,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함으로써 그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는 거다. 그에 대해서는 지금도 역사상 최고의 허풍쟁이라는 평가도 있다. 아마 사실에 과장을 섞어 신비롭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그의 말대로 사막에는 사막만의 소리가 있다. 유령은 아니겠지만. 사방이 고요할 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다. 이렇게 고요할 때 바람소리만 들려도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관광지 명사산에서는 어딜 가나 사람들로 가득해 사막의 소리를 들을 순 없었다.

가파른 모래산을 손주를 업고 올라가는 할아버지
▲ 할아버지와 손주 가파른 모래산을 손주를 업고 올라가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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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이 가파른 모래산을 널 업어서 올랐는데 나중에 모른척 하면 안된다
▲ 할아버지와 손주 얘야, 이 가파른 모래산을 널 업어서 올랐는데 나중에 모른척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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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기 무덤

낙타를 타고 진짜 모래산을 찾아 나섰다. 중국인 어린 커플과 낙타몰이 농부, 그리고 나, 이렇게 단출한 구성이다. 농부의 동네를 벗어나자 나무는 금방 사라져 버리고 황무지가 나왔다. 저 멀리 모래산이 눈에 보이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낙타를 타고 메마른 풍경 가기를 한 시간. 그동안 황무지에 세워진 무덤 수백 기를 지났다.

물이 없는 곳의 무덤은 이런 모습이었다. 아마 벌초를 하진 않겠지
▲ 황무지의 무덤 물이 없는 곳의 무덤은 이런 모습이었다. 아마 벌초를 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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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없는 사막의 무덤이다. 우리나라처럼 흙으로 동그랗게 만들고, 그 위에 떼 대신 벽돌을 덮었다. 그 앞엔 작은 제단이 놓여 있다. 죽은 이를 부르는 오색 깃발이 꽂혀 있는 무덤도 있다. 강한 볕에 깃발도 빛이 바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다. 하긴 잔디가 자랄 땅이 아니다. 매일 무덤에 물 주러 올 수도 없을 거고. 이곳에선 황토색 무덤이 당연하다. 하지만 늘 보던 무덤이 아닌지라 전두엽에 깊이 박히긴 한다. 남의 무덤에 예의는 아니지만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물론 꿀렁꿀렁 웨이브를 타는 낙타 위에서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런데 특이한 무덤이 눈에 띈다. 짚과 흙으로 지어놓은 작은 움막인데, 입구에 작은 통로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시묘살이하는 움막인가 싶지만, 사람이 드나들기엔 너무나 작은 입구다. 강아지라면 모를까. 물어보니 아기 무덤이라고 답한다. 아기가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저곳에 놔두었다가 엄마나 아빠가 죽으면 그때 그 뼈를 거두어 함께 묻어준다고 한다. 복장제인 셈이다. 저 움막도 우리나라 식으론 초분(草墳)인가 보다.

홀로 외롭게 서있는 아기무덤. 어느 집 아이 무덤일까
▲ 사막의 아기 무덤 홀로 외롭게 서있는 아기무덤. 어느 집 아이 무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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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죽으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까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무덤에 들어가 아빠엄마없이 어둠속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 괜히 그런 기분을 상상하면서 눈물짓곤 했다. '엄마가 내 무덤에 좋아하는 소꿉살림이랑 인형이랑 넣어줘야 할 텐데...' 걱정하면서. 참 잔망스럽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잔망스러운 성격은 그대로 남아, 나는 또 사막에서 공연히 눈물 지었다. 아이 혼자 어둡고 캄캄한 무덤에서 얼마나 무서울까. 그래서 아이 시신을 지상에 두는 걸까. 부모는 죽은 아이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래서 그 뼈를 거둬 함께 묻어주는 걸까. 이 생에서 이어지지 못한 연이 저 생에서 다시 이어지는 것을 상상해 봤다. 국내에서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있고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어른이 되는 건 늘 좋은 일이라 생각해 왔다. 직장상사에게 쌍욕을 듣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제 살 깎아 돈 벌어서 병원비 대는 삶이긴 하지만, 일 속에는 성취의 기쁨도 있었다. 어설프게나마 연애도 하고 이별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 속 모든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마주치는 일이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난다는 의미기도 했다. 통장 잔고 걱정에 잠을 이룰 순 없지만, 그래도 어른이 된 나 자신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죽음에 늘 미안했다. 어른이 될 기회를 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시스템을 믿게 하고 책임지지 못해 미안했다.

명사산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모래가 쌓여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산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아래로 흩어지지만, 밤이 되어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흩어진 모래가 다시 위로 쓸려 올라간다고 한다. 선이 그려낸 풍경은 완만한 곡선이다.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금처럼 반짝였다. 케이크 위에 잘 코팅된 아이싱같기도 하다.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풍경이다.

모래는 밀가루처럼 부드럽고 금처럼 반짝였다
▲ 사막의 모래 모래는 밀가루처럼 부드럽고 금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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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모래가 모여 날카로운 선을 만든다
▲ 명사산 부드러운 모래가 모여 날카로운 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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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산을 맨발로 올랐다. 이 넓은 곳에 단 네 명이 있다. 젊은 커플은 깨 볶으러 어딘가로 향했고, 농부는 낙타를 돌본다. 나는 모래에 누워서 해가 지는 것을 꼼짝도 않고 지켜봤다. 점차 사방이 어두워지고 저 멀리 오아시스 도시에서만 불빛이 보인다.

바람 없는 고요한 날이다. 모래가 우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에 음악 없는 이어폰을 꽂았다. 미세하게 웅웅대는 소리가 들린다. 평화로운 시간이지만 사실은 반성과 회환의 각축장이다. 바쁘게 살며 그냥 흘려보냈던 감정들, 혹은 애써 외면했던 마음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삶에 여백이 주어지는 순간, 그 속은 여행자를 홀리는 모래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신은 어린아이와 당신의 허기를 창조했습니다.
우세요. 울면 우유가 나옵니다.
우세요. 아플 때 멍청히 있거나 침묵하지 마세요.
- 잘라루딘 루미, <작은 울음소리에도 어머니는 늘 함께 합니다>

사막의 여자아이
▲ 명사산에서 만난 소녀 사막의 여자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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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 명사산 낙타 사파리
관광지 명사산이 아닌, 사람이 없는 명사산을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명사로에 있는 Charley John's Cafe에서 1박 투어, 혹은 반나절 투어를 진행한다. (전화번호:+86 937 388 2411) 1박 투어는 오후 5시쯤 출발해 사막에서 캠핑을 한 후 다음날 오전 9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400RMB) 반나절 투어는 오후 5시에 출발해 일몰을 본 후 저녁 10시쯤 돌아온다. (260 RMB, 2014년 5월 기준)

<숙소정보> Charlie John's Dune Guesthouse (敦煌月泉山庄)

한밤중 모래울음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전화번호:+86 138 9376 3029) 명사산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시내에서 4Km 떨어져있다. 3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1Km 정도 걸어야 한다. 숙소는 낡은 중국식 건물이고 중국 시골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숙소 뒤편에 작은 사구가 있다. 사실 한밤중 사구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외에 추천사항은 없다. (가격 도미토리 기준 50RMB)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둔황, #명사산, #낙타사파리, #월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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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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