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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세가지를 '의식주(衣食住)'라고 배웠다.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맨 앞에 내세워 '식의주'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이 생겨날 당시에는 전기가 인간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모든 생활에서 전기가 없으면 식의주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식의주전(電)'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전기가 없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하게 되면, 원자력 핵발전소의 필요와 당위성은 그 어떤 반대 논리도 가볍게 무시한다. 여러 차례 큰 사고를 봤음에도, '우리는 안전할 것이다'라는 주입된 믿음이 있고, 실제 하는 위험으로부터 '나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기심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반대하는 입장을 향해서 '너희는 전기 쓰지마라'는 유치한 조롱을 하는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밀집해 있는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핵발전소가 있다면, 초고압 송전탑이 지붕 위로 지나가면서 내는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서 태연하게 지낼 수 있을까?

최초의 원전은 서울 인근에 세워질 수 있었다

한국원전잔혹사
 한국원전잔혹사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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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할 수 있는 설계 수명 30년을 넘긴 고리1호기는 건설 당시 최초의 핵발전소 부지로 서울시청에서 직선거리로 14km 떨어진 행주대교 인근에 세워질 뻔했다. 그러나 한강이 인천 앞바다의 영향으로 간만의 차이가 있고, 북한과 대립한다는 안보상의 이유로 부적합지로 결정났다. 그리고 부산 인근의 월래, 길천, 고리를 묶어서 원자력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다.

물론, 그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설명은 없었다. 지역 발전을 위한 공장이 들어서는 줄 알고, 기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을 뜨겁게 환영하였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는 잠깐이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원전 지역 주민들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암 발병 그리고 거래가 안 되는 집과 땅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화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원전이 대표적인 혐오시설이 된 오늘날 소외 지역에만 들어서는 원전을 바라보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 원전을 지어라"고 말한다. 전기는 도시에서 쓰면서 왜 자기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느냐는 얘기다.

최초의 원전은 그 말처럼 서울 언저리에 들어설 뻔했다. 그랬다면 지금쯤 '고리1호기'가 아닌 '행주1호기'의 폐로 여부가 첨예한 논쟁이 되지 않았을까? 수천만의 수도권 시민들이 원전 반대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본문 중에서-

<한국 원전 잔혹史>는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과 원전 관련 업계의 속살을 가까이서 들여다 본 <한겨레> 기자 두 명이 한국 원자력 핵발전소의 시작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원전의 잔혹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중고, 짝퉁, 가짜 증명서로 돌아가는 원전

2012년 2월 9일 노후 원전 고리 1호기에서 12분간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정전으로 냉각수 온도가 올라가면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는 멜트다운(meltdown)으로 이어질 수 있는 큰 사고였지만, 상부기관인 한수원에는 보고되지 않고 감춰졌다. 이것이 한 달 만에 기장군 시의원에 의해 알려졌다.

고리 1호기에는 정전에 대비하여 비상발전기 3대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사고 당일 한 대는 수리점검 중이었고, 한 대는 작동이 안 되었다. 나머지 한 대는 수동방식으로 사용해보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원전시설의 정전(블랙아웃) 때문에 발생하였다.

핵발전소는 수백만 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부품 한 개라도 규격 미달의 불량품이 사용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불씨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제조와 검사는 어느 분야보다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원전은 가짜와 중고부품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2012년 검찰의 수사로 밝혀지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울산지검은 2012년 7월 10일 납품 편의를 봐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한수원 간부 22명을 기소했다. 한수원 처장급(1급)2명등 본사 간부 6명과 고리, 영광, 월성 등 지역 원전에서 근무하는 현장실무팀 간부 16명이 포함됐다. -본문 중에서-

한 사람당 평균 1억 원이 넘는 뇌물을 챙긴 이 사건은 원전을 둘러싼 비리 복마전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전에도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관행으로 내려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의 1부에서는 '돈이면 다 된다'는 업체 봐주기,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뇌물이 건네지는 사례 등 각종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원전비리 수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원전신화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침체기에 빠져들던 재벌 건설사에 물길을 터준 것은 22조원의 혈세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이다. 재벌들에게 이명박 정부는 구원 투수나 다름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번 더 '원전 건설'의 특혜를 재벌 건설사에 몰아주는 마무리 투구를 던졌다.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의 '성공 신화'는 철저하게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이 6년이 지나서 밝혀졌다. 경쟁사인 프랑스(360억 달러)의 절반가격(186억 달러)에 입찰하여 그 중 100억 달러(당시 12조 원)는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서 대출해주고 상환기간은 28년으로 계약을 한 것이 밝혀졌지만, 수백 쪽에 달하는 영문계약서를 한수원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불합리한 계약이 되어 있는지 의혹만 무성하다. 국회의 요구에도 공개하지 않고, 일부 열람을 허용한 계약서에서 신고리 3호기 내용을 확인했다. 밀양송전탑 건설과 관련 있는 대목이다.

2013년 5월23일 변준연 한국전력 부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UAE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레퍼런스 플랜트(참고용 발전소)였다. 2015년까지 가동이 안 되면 페널티를 물도록 계약돼 있다"는 말을 꺼냈다. 밀양송전탑 공사가 UAE 원전수출과 관련 있다는 뜻이었다. -본문 중에서-

송전탑 아래서 노숙농성중인 밀양할매들
 송전탑 아래서 노숙농성중인 밀양할매들
ⓒ 밀양송전탑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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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밀양송전탑 건설을 강행하고, 지금도 송전탑 아래서 눈바람을 맞으며 노숙 농성을 하는 밀양주민들을 압박하는 것은 UAE원전의 계약 때문이다. 유예기간 2년을 더 해서 2015년 9월까지 상업운전을 못할 경우 공사비의 0.25%를 지체보상금으로 물도록 되어 있다.

기획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UAE로 날아가서 생중계를 한 이명박 정부에 이어 세월호의 슬픔으로 온 국민이 비통함에 빠져있는 시기에, 5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UAE의 원자로 설치 행사에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원전 감소와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의 폐로를 하는 다른 국가들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원전 확대에 힘을 실었다. "2035년까지 전력 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6.4%에서 29%까지 높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목표치보다는 낮기에 얼핏 원전을 줄이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원전 비중은 줄지만, 원전 수는 사살상 줄이지 않는 '마술'이었다. -본문중에서-

덧붙이는 글 | 한국 원전 잔혹사 / 김성환.이승준 / 철수와영희 / 2014.11 / 15,000원



한국 원전 잔혹史 -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김성환.이승준 지음, 철수와영희(2014)


태그:#고리1호기, #밀양송전탑, #한수원, #핵발전소,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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