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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활의 최종 목표는 하프마라톤 완주이다. 하프 마라톤은 21.0975킬로를 3시간 안에 주파해야 한다. 2005년 끔찍했던 사고로 미만성 축삭손상(Diffused Axonal Injury)과 2, 6, 7번 경추손상을 입은 나는 3년의 치열한 병원 치료 후에도 '평지에서 혼자서 50미터를 갈 수 없는 자(뇌병변 2급 장애의 정부 기준)로 판정받아 영구2급 뇌병변 장애자로 등록되었다.

그런 내가 하프 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정한 때는 2006년 봄, 사고 후 세 번째 옮긴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때다. 그 후 긴 세월 감히 내 입으로 그 목표를 이야기할 수조차 없어 혼자서만 그 꿈을 가꾸어오다가 2012년 현실에서 최초로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그 후에도 두 번의 실패를 더 겪었다(관련기사: 무섭고 외로웠던 8년간의 재활, 기적이 일어났다).

장애를 얻은 지 10년째 접어든 오늘도 내 재활의 목포는 여전히 하프마라톤 완주이며 지금까지 늘 해온 것처럼 일상 속에서 촌음을 아껴가며 재활 중이다. 스스로 생활 속에서 내 몸을 실험도구 삼아 개발한 수많은 운동으로 꽉 짜인 일상이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화장실 변기에 앉을 때는 있는 힘껏 두 주먹을 쥐는 동작을 반복하며, 소변기 앞에 설 때는 어김없이 어깨 넓이로 11자 형태로 선다. 앉을 때는 바른 자세로 앉고 두 다리는 힘을 주어 꼭 오므린다(내전근 강화를 위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마비되었던 왼팔로 팔베개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속의 동작 하나하나를 재활을 염두에 두고 관찰하고 응용하면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재활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운동량을 확보 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던 2013년. 휴식 시간에 도서관 계단 난간에서 재활하는 모습. 틈새 시간만으로도 재활 시간 확보가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던 2013년. 휴식 시간에 도서관 계단 난간에서 재활하는 모습. 틈새 시간만으로도 재활 시간 확보가 가능하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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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치료를 받아보니 재활치료는 내 근육을 사용해 손상된 신경전달체계를 재구축하는 일이며 이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치료를 받으며 그 치료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가며 재활의 원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축삭돌기(신경돌기)가 손상된 나는 손상된 축삭돌기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하지 않아 해당 운동기능을 상실했다. 손상된 축삭돌기를 대신할 새로운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기능이 정지된 각 근육을 움직여 전기신호를 대체할 신경돌기를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재활을 '학습'하고 응용해 얻을 수 있었다. 내게 3년간의 병원치료는 그렇게 치료과정을 관찰해 원리를 깨달아 응용하는 '훈련과정'이었다. 또한, 병원치료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소중한 사실은 재활은 객관과 필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회복이나 완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

자가 재활로 이른바 '완전한 재활'을 하겠다는 절심함에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서든 재활운동을 했다.
 자가 재활로 이른바 '완전한 재활'을 하겠다는 절심함에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서든 재활운동을 했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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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의료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내가 가지는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그들에게는 장애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내가 가지는 절박함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당시의 나는 그런 일에도 혼자만 고립되어 있다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나 혼자만 가져야 했던 그 절박함은 무릇 세상의 모든 학문이나 지식은 결국 학습이라는 '간접 경험'을 거쳐 전달되고 이어지며 발전하게 된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또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현대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인간이 보고 듣고 하는 오감을 기계적·전자적으로 본떠 만든 센서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니 장애를 직접 경험하는 내 몸은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그 어느 센서보다 더 뛰어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운동을 내 몸에 직접 실험해 효과적인 운동을 찾아내 완쾌할 만큼의 횟수와 강도로 운동을 하면 회복은 필연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위에 기술한 생각들이 3년 만에 병원치료를 그만두고 이른바 '자가 재활'에 나설 때의 내 생각이었다. 물론 이 생각들이 한순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도 않았으며 지금처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의 나에게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는데 대한 부담은 상상 이상이었고, 누구에게 자문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난 홀로 세상에 맞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서 오랫동안 지독한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뼈에 사무치는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을 철저히 강화할 그 무엇인가가 절대 필요했는데 사고 후 되찾게 된 신앙이 내게 그 역할을 했다.

병원치료를 마치고 이른바'자갸재활'에 나서며 사랑하는 딸, 아내, 여동생, 조카들을 동원해 고향집 옥상에서 촬영해 만든 UCC 아리아리가.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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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앙은 관념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의식이 없을 때, 의식이 흐릿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내 눈으로 보고 귀로 그 음성을 들은 내게 신앙은 사실(事實)이며 팩트다. 그 신앙이 참혹했던 사고를 '이 시간에도 실재(實在)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날 위한 축복으로 일순간에 바꾸어 주었다.

그 신앙이 장애를 입고 10여 년 동안 의사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하프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향해 자신을 엄하게 몰아가며 홀로 재활할 수 있도록 했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내게 닥친 장애였다. 정부에 등록된 '뇌병변 2급 장애자'인 내가 21.0975를 달려야 하는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다면 이는 분명 기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이야기 하는 회복이나 완전한 재활의 객관적 증거로 충분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재활우, 장애인들에게 난 내 몸으로 보여주려 한다. 누구든 노력하면 장애를 얻기 전 건강을 회복할 수 있고 병원치료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완전한 재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하프 마라톤 완주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나는 2014년 전라북도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서 전주시 일반 행정직에 합격해 현재 전주의 한 주민 센타에 근무 중이다(관련기사: 나이 오십에 공무원 되는 법, 이 남자에게 배우세요). 사고를 당한 후 걷기는커녕 내 발로 설 수조차 없던 때부터 건강하던 30대 초반처럼 당당하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겠다고 세상에 내 입을 열어 말하게 된 지금까지의 생생한 기억들이 내게는 있다.

그 과정에서 귀하게 얻은 수많은 운동에 대한 경험들이 있다. 학문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재활을 습득한 의료진들이 아무도 이루지 못한 일을 장애를 직접 경험하며 내 몸을 실험도구 삼아 내 몸으로 이룩했음을 하프 마라톤 완주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하겠다.

앞으로 이 글 '휠체어에서 마라톤 까지'에서 그 과정 있었던 이야기들을 낱낱이 밝히고자 한다.


태그:#완전한 재활, #마라톤하는 장애인,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 #자가재활,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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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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