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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 전면. "그들이 자유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제목 아래, 사람들이 "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 전면. "그들이 자유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제목 아래, 사람들이 "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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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후 8시 24분]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이 테러를 당해 직원과 경찰 등 12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1961년 6월 18일 28명의 사망자를 낸 스트라스부르그-파리 기차 폭발 테러 사건 이후 최근 50년 사이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테러로 기록됐다. 이 살벌한 테러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난 8일 오전 10시 30분,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이미 모든 일간지가 동이 난 상태였다. 겨우 몇 개 남아 있는 일간지 <오주르디엉프랑스(Aujourd'hui en France)>만 살 수 있었다.

8일 아침에 열어본 메일 상자에서는 누군가가 검정색 바탕에 흰색의 커다란 글자로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고 쓴 메일을 보내왔다. 그 아래에는 "Please send on, and on, and on…(다른 사람에게 전송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샤를리다"는 7일 저녁 프랑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열린 추모집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던 글귀였다. 파리 레퓌블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50대의 한 중년 여성은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것은 우리 모두를 공격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8일 오전에 파리 근교로 나갈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고속지하철을 환승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내 방송이 나왔다.

"어제 테러로 숨진 희상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늘 12시에 모든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하고 1분 묵념을 하겠습니다."

정오에는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성당의 종소리에 맞춰 1분 묵념을 했고, 프랑스의 모든 공공장소에서도 같은 묵념이 이루어졌다. 오후 다시 파리로 들어오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친하게 지내는 프랑스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테러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습니다. 12명의 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체인망을 형성합시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1분 동안 묵념한 후 본인의 이름을 기입한 후 지인들에게 보냅시다."

이어서 43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도 맨 끝에 이름을 쓴 후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여지껏 25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이런 식으로 자발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80세 노장' 볼렝스키 등 유명 만평가 4명 희생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캬뷰의 사진과 만화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캬뷰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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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테러로 희생된 12명 중에 4명은 프랑스인들에게 친숙한 유명 만평가들이다. 75세의 노령에도 단발머리에 항상 소년 같은 미소를 머금었던 캬뷔(Cabu)는 반(反)군사주의자, 반인종주의자, 반종교주의자, 반보수주의자였다. 캬뷔는 1973년에 '보프(Beauf, beau-frere, 처남·처형이라는 뜻의 축약어)라는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이 인물은 지극한 애국주의자이며 알코올중독자, 마초, 인종주의자인 프랑스 중산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이 신조어는 1985년에 사전에도 실릴 만큼 유명해졌고, 아직까지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즐겨 쓰는 용어다. 보프가 유명하게 된 이유를 캬뷔는 "바보 짓은 보편적인 것이고 모든 이들은 보프가 갖고 있는 단점을 일부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혀 보프가 아니고 오직 타인만이 보프라고 생각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내 그림의 목적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설명했다.

여자들의 나체 그림으로 유명한 볼렝스키(Wolinski)는 80세의 노장이다. 캬뷔와 함께 영원한 소년의 이미지를 주는 그는 캬뷔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유력한 바보보다는 현명한 낙오자가 되는 게 낫다"라고 주장한 볼렝스키는 주간지 <마치(Match)>에도 글과 만평을 게재했는데, 좌파 성향을 주장하는 그는 우파 신문인 <피가로>와는 인연 맺기를 거절했다. 그는 2005년에 앙굴렘 BD 페스티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고 2012년에 프랑스에서 '볼렝스키, 50년의 데셍'이라는 전시회를 가진 노장 만화가다.

 여자 나체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그림을 들고 있는 올렝스키(1월 9일자 <르몽드>)
 여자 나체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그림을 들고 있는 볼렝스키(1월 9일자 <르몽드>)
ⓒ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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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7세의 샤르브(Charb)는 2009년부터 <샤를리 에브도>의 출판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만평가이다. 확실한 무종교주의자를 주장하는 그는 모든 종교에 비난의 화살을 던졌고, 마호메트를 비판하는 만평 때문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고 있어 2012년부터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난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난 아이들도 없고, 아내도 없으며, 차도 없고, 빚도 없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난 무릎 끓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는 테러가 일어난 날 발행된 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만평을 실었다. 마치 다가올 테러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프랑스에 아직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고 있네."
"기다려봐. 새해 인사는 1월 말까지 하도록 되어 있잖아."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샤르브의 사진과 만화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샤르브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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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만화는 민주화의 증언이다"라고 한 티뉴스(Tignous)는 57세로 자본주의자들을 혐오하고 사르코지를 신랄하게 풍자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종교인들에게 혹심한 비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데셍에 대해 "독자를 웃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데셍이 최고의 데셍이고, 이 데셍 앞에서 독자들은 일종의 수치심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 앞에서 웃었다는 수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계의 자유를 위해 형성된 만평가들의 협회인 '카투닝포피스(Cartooning for Peace)'의 멤버였던 티뉴스는 "납치를 예방하는" 혹은 "살해를 방해하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만약에 내게 이런 힘이 있다면 난 잠자지 않고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결국 자신의 그림으로 인해 이번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티뉴스의 사진과 만화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티뉴스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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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 특별호 100만 부 발행 예정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가족과 같이 익숙한 이들 만화가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프랑스인들에게 마치 가족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샤를리 에브도> 다음 호 준비를 위해 주간회의를 열고 있던 사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12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신문의 주요 멤버들이 사라진 현재, 당장 다음 주 수요일에 신문이 발간될 수 있을까. 많은 프랑스인들은 신문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언론의 자유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고 언론의 자유를 겨냥한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신문을 지속적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결국 다음 주 수요일에도 <샤를리 에브도>가 발행될 예정으로 밝혀졌다. 일간지 <리베라시옹> 사무실에서 모든 기자들이 참가하여 발행될 다음 주 특별호는 100만 부가 발행될 예정인데, 평소에 발행되는 6만 부의 17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7일 테러가 난 이후 <샤를리 에브도>는 순식간에 모두 판매됐다.

8일 저녁에도 파리의 레퓌블릭 광장에서 다시 추모집회가 열렸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나는 샤를리다" 피켓을 들었다. 오후 8시를 기해서 에펠탑의 조명도 꺼짐으로써 추모집회에 합세하였다. 파리에서 에펠탑의 조명이 꺼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경미 시민기자는 프랑스에 있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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