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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진양호. 구름 비집고 나온 햇살이 진양호를 비추는 사이로 바람이 차갑게 겨울 인사를 하고 지났다.
 경남 진주시 진양호. 구름 비집고 나온 햇살이 진양호를 비추는 사이로 바람이 차갑게 겨울 인사를 하고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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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바뀌었다. 새로운 시작이다. 사람들은 새해 아침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나 역시 새해 계획을 다짐하기 위해 경남 진주시 진양호를 찾았다. 진양호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일 년 계단'

해가 바뀌고 이틀째 되는 날, 사람들로 북적이는 진주 시내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10여 분을 더 내달렸다. 진주의 신흥 주거 지역인 신안동과 평거동의 아파트 숲을 지나자 주위가 고요한 진양호가 나왔다. 진양호 공원 정문에서 표를 끊지도 않았다. 공짜다.

공원에서 호수를 찾아가는 길에는 유혹이 많았다. 곳곳에 있는 쉼터가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도 줄곧 앞으로 내달렸다. 진주 조정 훈련장이라는 간판 앞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한쪽에는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가 건네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 모여든 세 마리의 고양이가 차를 대신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호수다. 20여 년 전에는 유람선이 떠다녔고, 노 저어 사랑을 속삭였던 흔적은 없었다. 조정 선수들이 연습하는 길쭉하고 날씬한 보트가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구름 비집고 나온 햇살이 진양호를 비추는 사이로 바람이 차갑게 겨울 인사를 하고 지났다. 호숫가 얕은 오른 편으로 새들의 자맥질이 한창이었다. '망원경이 있었다면...'하는 아쉬움 속에 내 소원을 들어줄 계단을 찾았다.

진양호 옛 선창가에 세워진 ‘가수황제 남인수’ 동상.
 진양호 옛 선창가에 세워진 ‘가수황제 남인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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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보이지 않고 메타세쿼이아 나무 한 그루 맞은 편에 '가수 황제 남인수'라 적힌 동상이 서 있다. 남인수 동상은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애수의 소야곡>을 부를 듯이 목을 가다듬어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서 있었다. 남인수 동상 주위에는 데이트로 즐겨 찾은 레스토랑이 아직도 당시의 상호 그대로 영업 중이었다. 주차장에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삼거리로 올라갔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한다는 길 막음 옆으로 '일 년 계단(소원 계단)'이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365계단을 오르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져 올라가기 쉬웠다. 하지만 계단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계단은 일직선으로만 나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단이 365개라는 소원 계단에서 멈칫 했다.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바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365계단은 내 올해 소원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내 다짐의 길이다. 첫발 떼는 게 힘들지, 목표를 향해 나가는 걸음은 어렵지 않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면 되지' 생각하자 용기가 났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내 뒤에서 밀어주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이 앞에서 끌어주었다.

진양호 내 365계단을 오르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원 계단’
 진양호 내 365계단을 오르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원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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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세월로 친다면 봄을 지났을까? 계단 옆으로 한국 인명구조단 자원봉사 대원으로 활동하다 사고로 순직한 '고 김철호 대원'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를 지난 후, 자꾸 계단 뒤를 돌아보았다. 등 뒤의 호수를 핑계 삼아 돌아온 세월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으로 자꾸 고개를 돌렸다. 중턱을 지나자 계단 옆으로 잠시 쉬어갈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중간에 따로 쉬지는 않았다. 숨을 헉헉거리며 올라왔다. 드디어 계단의 끝이다. 시작이 없다면 끝도 없었겠지. 시작하는 사람의 꿈과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소원함'이 먼저 반겼다. 소원함엔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 시 소원을 빌어 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소원함은 진양호 전망대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도 내려가 보자, 소원 이뤄지게."

팔짱 낀 여자의 소원을 남자는 무 자르듯 거부하고 둘러맨 카메라로 호수와 여자를 담기에 바빴다.

전망대로 올라갔다. 1층, 2층, 3층 소라 껍데기처럼 빙빙 비틀며 올라가는 모양새다. 전망대에 서자 진양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가운데는 까꼬실 마을이 보였다. 까꼬실(귀곡) 마을은 지난 1969년까지 257가구 1467명의 주민이 까꼬실 등 10여 개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남강댐 건립 공사로 마을과 농지 등 전체가 물에 잠기고, 주민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진양호 소원 계단 끝에 있는 소원함.
 진양호 소원 계단 끝에 있는 소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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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망향의 한을 달래고자 매년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실향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까꼬실 마을을 중심으로 맨 왼편부터 사천 와룡산을 시작으로 남해 금산, 물박물관, 망운산, 금오산, 봉명산, 이명산이 보였다. 산들의 흐름을 구경하며 숨찬 기세를 보이자 호수를 가로 지르는 바람이 쌩하고 정신을 일깨운다. 다시 까꼬실 마을 오른편 뒤로는 지리산의 반야봉, 삼신봉, 천왕봉, 웅석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보지만, 낮게 나는 새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했던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저 차가운 물 아래에는 한때 새 세상을 염원한 사람들의 열정으로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자갈과 모래의 퇴적으로 넓은 평탄한 지형이 나타났다. '넓은 여울이 있는 나루'라는 뜻의 순우리말 '너우니'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군사 훈련 교장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아름답고 정겨운 '너우니'는 한자어 광탄진(廣灘津)에 가려졌고 광탄진은 남강댐이 완성되면서 인공 호수 진양호 물밑으로 사라졌다. 물속 너우니 자리에는 지배층의 부정부패,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침략에 반대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면 일어났던 동학 농민 혁명의 아우성이 있었다.

진양호 전망대
 진양호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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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서 바라본 까꼬실 마을

'나라의 안위는 민(民의) 생사에 있고 민의 생사는 나라의 안위에 있다. 어찌 나라를 보호하고 민을 편안케 할 방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달(음력 9월) 초 8일 오전에 각리(各里)마다 13명씩 일제히 평거(平居)의 광탄진(廣灘津)으로 모여 이러한 상황을 논의하자'- 진주초차괘방(晋州初次掛榜)

방이 붙자 1894년 10월 6일 1000여 명의 진주 지역 백성들이 너우니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각 마을에서 뽑힌 선봉대는 어김없이 너우니(광탄진) 모래톱으로 모여들었다. 모인 농민들은 진주성을 향했다. 다행히 피바람은 없었다. 진주 병사(兵史) 민준호는 농민들에게 총을 들이대는 대신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와 이들을 맞았기 때문이다. 진주는 농민 세상이 됐다. 너우니에서 봉기한 진주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수십 차례 접전을 벌인 끝에 고승당산에서 마지막 혈전을 벌이고 최후를 마쳤다. 남해에서 고깃배가 오르내리며 문물이 풍성했던 이곳은 현재 동학 농민 혁명의 상징처럼 진양호 속에 깊이 잠겼다. 

진양호 전망대 2층 찻집에서 바라본 진양호.
 진양호 전망대 2층 찻집에서 바라본 진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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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댐이 만들어지기 전에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자갈과 모래의 퇴적으로 넓은 평탄한 지형이 나타났다. ‘넓은 여울이 있는 나루’라는 뜻의 순우리말 ‘너우니’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군사훈련교장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1894년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면 일어났던 진주 동학농민혁명군의 아우성이 있었다. 지금은 남강댐이 완성되면서 인공호수 진양호 물밑으로 사라졌다.
 진주댐이 만들어지기 전에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자갈과 모래의 퇴적으로 넓은 평탄한 지형이 나타났다. ‘넓은 여울이 있는 나루’라는 뜻의 순우리말 ‘너우니’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군사훈련교장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1894년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면 일어났던 진주 동학농민혁명군의 아우성이 있었다. 지금은 남강댐이 완성되면서 인공호수 진양호 물밑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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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의 뜨거운 함성을 뒤로 하고 2층, 찻집으로 내려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시 호수를 보았다. 365계단, 소원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은 호수를 안는 길이었다. 차를 끌고 올라와 우약정 앞에 세웠다. 우약정은 진주시 대곡면 출신의 재일 교포가 고향을 그리며 아버지의 호를 따서 세운 정자다. 우약정 들어서는 입구에는 크게 울부짖는 짐승의 왕, 사자상이 좌우에 있었다. 늠름한 사자상 밑에는 입을 아주 길다랗게 땅에 닿을 듯 벌린 사자 네 마리가 돋을 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진양호 내 우약정 들어서는 입구에는 크게 울부짖는 짐승의 왕, 사자상이 좌우에 있었다. 늠름한 사자상 밑에는 입을 아주 길다랗게 땅에 닿을 듯 벌린 사자 네 마리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한껏 입을 벌린 사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귀를 쫑긋 세워 기울이기도 했다.
 진양호 내 우약정 들어서는 입구에는 크게 울부짖는 짐승의 왕, 사자상이 좌우에 있었다. 늠름한 사자상 밑에는 입을 아주 길다랗게 땅에 닿을 듯 벌린 사자 네 마리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한껏 입을 벌린 사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귀를 쫑긋 세워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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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입을 벌린 사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귀를 쫑긋 세워 기울이기도 했다. 근엄한 왕의 모습에서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보는 듯 친근해 좋았다. 사자를 뒤로하자 안내 표지석이 나왔다. 1974년에 세워진 안내 표지석은 한자 투성이에다 세로로 적혀 읽는 이들에게 안내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약정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풍광을 기대했지만 우거진 나무들에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떠오른 해가 어제 떠오른 태양과 다르지 않다.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일하러 가는 메마른 일상이 반복되는 삶. 그럼에도 1년이라는 시간을 경계로 해를 나누는 것은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진양호 소원 계단을 걸으면서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도전과 희망을 다졌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



태그:#진양호, #진주댐, #소원 계단, #365계단, #너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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