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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무수히 반복된 말이다. 잊지 않겠다. 세월호의 비극, 아픔, 분노… 잊지 않겠다고 너도나도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즈음 나에게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래도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다들 흥겹게 즐기지 않을까? 송년회 자리의 건배가 이어지고, 거리엔 선물 꾸러미들 사 든 들뜬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잊지 않으려는 다짐에 가장 큰 도전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정의를 위한 여러 힘겨운 싸움에서도 결국 국가나 자본이 묵묵부답으로 대답이 없으면, 시간 싸움에서 지게 되는 것이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흐르고, 우리는 세월호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답답한 마음에, 나는 독서모임의 송년 책으로 박민규 외 여러 작가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몸서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동정심 많고 선량한 얼굴을 한 정치인들을 보고 많이 사람이 어이없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참사가 교통사고에 비견될 수 있다면, 모두들 자신이 음주운전으로 타인을 죽인 운전자라도 되는 듯 자책하는데 유독 정치인들만이 길 가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행인처럼 굴고 있는 듯하다. 목격한 것도 신의 뜻이니 모처럼 좋은 일 좀 해보자는 걸까? 그러니 사고 이후 정치인들이 내놓는 주된 수습안들이 모두 연민과 시혜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엾은 희생자의 가족들을 위해 적절한 보상금을 책정하고 생존자에게 특혜를 베풀어서 착한 정치인으로 남고 싶은 거다.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중에서)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턱턱 막히고 여전히 눈물이 고인다. 4.16 이후 지금껏 제대로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진은영 작가의 말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자책하는데,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월은 질문 없는 삶들, 무감한 삶들이 결정적으로 일조하고 말았고 여태도 일조하고 있는 참사다. 4월 16일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고 그날 이후 내내 거대한 괴물처럼 마디를 늘려가며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는 참사다. 아무도 이것에서 달아날 수 없다. 자책과 죄책의 차원이 거슬린다면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중에 누구는 아닐까. 우리 중 누가, 문득 일상이 부러진 채로 거리에서 새까만 투사가 되어 살 일을 예측하고 살까.

세월을 비롯해 쌍용의 노동자들, 용산의 철거민들, 콜드콜텍의 노동자들, 제주 강정은, 밀양은, 고리는 어떤가, 월성은 어떤가. 어제까지 다니던 일자리를 잃고 살던 공간을 잃고 목숨을 잃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영 점 몇 퍼센트의 확률이건 십 몇 퍼센트의 확률이건 개인에게는 언제나 반반의 확률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세월의 조건은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
아무도 이것에서 달아날 수 없다. -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황정은 작가의 말도 가슴을 친다. 특히, '우리 중 누가, 문득 일상이 부러진 채로 거리에서 새까만 투사가 되어 살 일을 예측하고 살까'란 문장이 그렇다. 세월호 유가족 중에는 새누리당 지지자도 있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들의 일상이 이렇게 파괴되고 거리의 투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는 이렇게 거리의 새까만 투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닥친 위협이라는 점이다. 사회에서 밀려나는 약자들을 외면하고, 당장 내 일이 아니니까, 나는 지금 집도 있고 직장도 있으니 내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이런 안전해 보이던 일상이 어느 한 순간 부서지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던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목소리게 귀를 기울여 줘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꽤 힘들었던 한 해. 어서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시간의 구분이란 게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해가 달라진다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하루 아침에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가 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새 희망을 품어보고 싶다. 박민규 작가의 말처럼, 새해에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눈을 뜨려고 한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을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중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문학동네(2014)


태그:#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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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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