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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광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으면서도 장애인분들의 편의를 고려해서 광화문역 지하도에 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활동가 조현수(34)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 달에도 여러 번 민원을 받는 것을 감수하며 이들이 '지하'에서 시위를 시작한 이유는 '이동'에 있었다. 수은주가 훌쩍 내려간 11월의 아침이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철폐 시위가 2년이 넘어가는 12일에도 지나가는 지하철 이용객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위로 향하는 길은 트여있지 않다.
▲ 지하에서 바라본 광화문 광장 지하에서 위로 향하는 길은 트여있지 않다.
ⓒ 장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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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신 분들은 욕창 때문에 고생하세요. 더운 날에는 진물이 흘러 고통스럽고 겨울에는 심해져서 고통스럽죠. 화장실 문제는 또 어떻고요. 지하와 광장을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는 없잖아요. 광장에 있기란 언감생심이에요."

이원이(은평 자립생활센터직원)씨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바로 곁에서 봐왔다. 추운 날씨에 오랜 시간 시위를 하다보면 몸이 상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거기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더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더 화장실로, 난방이 가능한 곳으로 자주 이동해야 한다. 생리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인간다운 위생 그리고 생존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이러한 이동권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지하와 광장을 잇는 시설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하로 내려간 것은 2012년 8월이었다. 장애에 등급을 매겨 현실과의 괴리를 초래하는 장애등급제, 부양을 의무화함으로써 가족과 도리어 멀어지게 만드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기 위해서였다.

절실한데도 그들은 광장을 허락받지 못했다. 광화문역 전체에서 휠체어 도로는 단 한 개, 엘리베이터는 단 두 대뿐이다. 그나마 있는 엘리베이터도 고장이 잦다. 하나뿐인 휠체어 도로를 타고 애써 광화문역의 미로를 통과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있으면 광장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광화문역에서 만난 장애인 활동가 서규원(55)씨는 "하루 이틀인가?"라고 반문하며 "지금 같이 온 장애인 친구를 기다린 지가 20분 째다. 광장에 올라가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광화문역 돌아다니기는 어디서나 힘이 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계단에 설치된 상승기를 타고 한 층을 올라오는 데는 7분이 넘게 걸렸다.

사진 속 사람들 뒤로 보이는 것이 휠체어 통로다. 광화문역에는 하나밖에 없다.
 사진 속 사람들 뒤로 보이는 것이 휠체어 통로다. 광화문역에는 하나밖에 없다.
ⓒ 장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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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난 엘리베이터는 무용지물이다.
 고장난 엘리베이터는 무용지물이다.
ⓒ 장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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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어요. 장애인 시설이 자주 고장 나는 건. 엘리베이터도 세 배는 더 예민한 걸."

서울도시철도공사 광화문역 직원 오석만(47)씨가 말했다.

"장애인분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센서가 세 배는 더 많아요. 고장도 더 잘 나죠. 휠체어 같은 것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싶어도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아요. 지하를 뚫을 수가 없대요."

엘리베이터 고장은 광화문역의 고질병이다. 지난달부터 만들어진 '광엘모'라는 조직은 '광화문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모임'의 약자다. 농성을 돕고 있는 김윤(은평 자립생활센터직원) 씨는 "이전부터 나왔던 얘기에요. 이동이 워낙 불편해야죠"라고 귀띔했다.

모두를 위한 광장은 아니다.
 모두를 위한 광장은 아니다.
ⓒ 장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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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란 민주 사회의 여론을 수렴하는 공간이다. 기본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시민 누구나 민주적 절차 아래 집회와 결사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러한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시도조차 방해받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이 지나가고 점심을 먹으려는 직장인들이 당당하게 밝은 거리를 걷던 낮 12시경,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농성이 진행 중이었다. 생리적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물음에 익명을 요구한 봉사자가 대답했다.

"해치 광장 쓰죠. 편리하게 해놨잖아요. 안 가봤어요?"

확실히 편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한 편리함이었다. 자유롭게 시위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현장이었다.

덧붙임. 첫 번째 취재 이후 '욕창이 심해지는' 겨울이 왔는데도 장애인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2월 26일 오후 농성장을 지키던 은평 장애인자립센터 소속 뇌성마비 3급 유승현(32)씨는 투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애등급제를 철폐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장애등급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부양의무제가 남아있다면 농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장애인들은 광장에 오를 수 없다. '광엘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약 없는 힘든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태그:#20대청춘기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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