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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다친 내가 목발로 길거리를 보행하고 있다. 누구랑 부딪히기라도 하면 위험한 장면이 연출된다.
 다리를 다친 내가 목발로 길거리를 보행하고 있다. 누구랑 부딪히기라도 하면 위험한 장면이 연출된다.
ⓒ 장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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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뼈 골절과 인대가 파열됐다. 수술을 받고 4주간 목발 보행을 해야 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 학생이다. 다쳤다고 졸업과 취업을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3일 뒤, 곧바로 한 회사의 공채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 다리가 다쳤다고 놓칠 수 없었다.

지난 7일, 목발을 짚고 하루를 보내야 했던 나는 시험을 보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택시 잡는 것도 쉽지 않아... 시험장 계단은 '까마득'

남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오전 9시에 시험을 보기 위해서 아침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1시간 가량 준비를 마치니 오전 6시였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았을 때 길을 나섰다. 택시는 목발을 짚은 내 앞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고, 가족까지 총동원한 후에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목발을 짚은 사람들은 흔하게 택시 승차거부의 대상이 된다. 간신히 잡은 택시의 운전기사 김아무개(63)씨는 "목발을 가지고 차에 타면 차 내부가 망가질 수 있다"며 "다리가 아픈 사람들이다 보니 차가 돌아서 나와야 하는 깊숙한 안쪽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택시운전기사들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승차거부하는 이유였다.

오전 7시, 시험을 치르는 장소인 한 중학교에 도착했다. 시험 시작까지 2시간이 남았지만 나는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시험을 보는 고사장은 4층, 하지만 중학교에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부들부들 떨며 한 칸 한 칸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4주간 한 발을 아예 땅에 디디면 안 되는 상태였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많았다.

목발 보행자에게 계단은 두려운 곳이다.
 목발 보행자에게 계단은 두려운 곳이다.
ⓒ 장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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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목발을 먼저 계단에 딛고, 팔에 힘을 줘서 발을 들어 올려야 했다. 내려딛는 발이 계단에 완전히 안전하게 딛지 않은 채로 목발을 땅에서 먼저 떼면 낙하의 위험이 있었다. 뭘 붙잡을 새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낙하할 위험이 컸다.

실제로 치료 중에 계단에 올랐다 낙하한 사례는 많았다.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다.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은 목발을 한 채 계단을 지나다 발을 헛디뎌 다친 곳이 재발했다고 한다. 의사도 계단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처지에는 가릴 게 없었다. 4층에 다 오르고 나니 한겨울에도 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건했다. 팔은 계속해서 떨렸다. 목숨을 걸고 본 시험이었다.

시험장에 앉았다. 시험은 앉아서 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쉬는 시간에 발생했다. 4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심지어 양변기 화장실도 없었다. 좌변기에서는 한 발만 딛고 쪼그려서 용변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1층 장애인 화장실까지 목숨을 걸고 계단을 오를 내릴 용기는 없었다. 용변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밖에 나오기 전에는 물 마시는 일을 자제하기로 마음먹는다.

화장실까지 참아야 했던 그 시험...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낮 12시, 시험이 끝났다. 1000명이 넘게 치른 시험이라 학생들이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10분 남짓 기다리다 보니 관계자가 와서 시험장을 비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계단은 내려갈 때가 더 두려웠다. 올라갈 때는 똑같이 위험해도 계단 아래가 훤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려갈 때는 시야까지 더해져 공포 그 자체였다. 기어가는 나를 보다 못한 시험 주최 측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고 덥석 잡은 팔은 오히려 짐이었다. 도와줄 일은 굴러 떨어져도 잡을 수 있도록 앞에 있어주는 것이었다. 시험 관리인이 앞에서 잡아주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목발을 짚은 사람에게 전방의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횡단보도는 위험천만한 공간이다.
 목발을 짚은 사람에게 전방의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횡단보도는 위험천만한 공간이다.
ⓒ 장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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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40분, 계단을 다 내려왔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목발을 짚은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방에 어깨 너비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공간은 자의로 쉽게 생기는 게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혀 목발을 뻗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타인과 목발이 부딪혀 온 몸이 비틀거리기 일쑤고, 뛰어오는 사람과 부딪히면 넘어진다. 실제로 넘어졌다가 빨간 불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목발을 최대한 뒤로 빼서 기사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그렇게 해서야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갈 수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비나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날이면 목발 보행은 포기해야 한다. 그나마 시험일은 계단과 횡단보도만 잘 넘기면 되는 운 좋은 날이었다.

목발을 짚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배려는, 몸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하고 안전한 공간을 배려해주는 것이다. 계단에서는 발을 헛디뎌도 잡아줄 수 있다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나는 사실 장애인들이 고속버스를 타게 해달라고 밤샘 농성을 벌이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다치고 나니까 그들이 원한 건 특별한 게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됐다. 잠시 목발만 짚어도 일상생활에 온갖 위험과 장애물들이 가득한데, 평생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온 힘을 다해 시험을 보고 집에 들어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 봤던 그날의 시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목발 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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