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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전이 풍성한 무안 오일장. 전통시장이 쇠퇴하는 가운데서도 무안장은 아직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채소전에서 아낙네들이 야채를 사고 있는 모습이다.
 채소전이 풍성한 무안 오일장. 전통시장이 쇠퇴하는 가운데서도 무안장은 아직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채소전에서 아낙네들이 야채를 사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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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양철로 돼 있다. 기둥도 양철판으로 감쌌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찢겨나갔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장옥이다. 한때 홍어전으로 유명세를 탔던 그 위세는 찾아볼 수 없다. 억척스런 장돌뱅이를 보는 것 같아 애잔하다.

"날도 추운디, 불 좀 쬐고 가시오."

허름한 장옥을 이리저리 해찰하며 지나는데, 한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장꾼의 따스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 같다. 내 마음이 절로 푸근해진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가락이 정겹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엄습해 온다.

무안오일장 풍경이다. 재래시장이 쇠퇴해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아직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양파와 마늘, 세발낙지로 유명한 전남 무안군의 무안읍에 자리하고 있다. 매 4일과 9일에 장이 선다. 지난 14일 장터를 찾았다.

아리랑 노래 울려퍼지는 정겨운 '무안오일장'

무안 오일장. 채소전에서 아낙네들이 김장김치에 부수적으로 넣을 야채를 사고 있다.
 무안 오일장. 채소전에서 아낙네들이 김장김치에 부수적으로 넣을 야채를 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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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오일장은 갯것들이 풍부하다. 갯벌이 기름진 무안과 해제반도를 끼고 있어서다.
 무안 오일장은 갯것들이 풍부하다. 갯벌이 기름진 무안과 해제반도를 끼고 있어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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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날씨에 또 다시 옷깃을 여민다. 벌써 여러 번째다. 장작불을 지핀 아랫목이 절로 그리운 요즘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장터는 여전히 걸다. 전남 서남부권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다.

채소전이 분주하다. 무, 배추 등 김장용 채소가 지천이다. 눈길 가는 곳마다 무와 배추다. 겉보기에도 단단해 보인다. 속이 꽉 찬 것 같다. 청각, 새우, 당근, 갓도 널려 있다. 냉이도 성급하게 나왔다. 기름진 황토벌의 무안 들녘이 통째로 옮겨온 것 같다.

어물전도 꽉 찼다. 물때와 맞아 떨어졌는지 갯것들이 모두 싱싱하다. 망둥어, 조개, 홍합, 굴, 새우, 파래, 감태가 보인다. '미운 사위한테 준다'는 매생이도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뻘낙지가 귀하다. 무안이 갯벌에서 사는 세발낙지의 본고장인데도 귀하다.

"낙자가 귀해졌어. 장터까지 나올 물건이 없어. 산지에서 다 나가 불어."

뻘낙지를 파는 아주머니의 말이다. 워낙 인기가 좋아 장터까지 나올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 옆으로 간간이 외지산 낙지가 눈에 띈다. 낙지 흉년이란 말을 실감한다. 가격도 평소보다 많이 비싸다.

'뻘낙지'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세발낙지. 그 명성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뻘낙지'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세발낙지. 그 명성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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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옆으로 줄지어 선 의류전과 신발전도 북적인다. 때 아닌 묘목전도 보인다. 빈터에는 할머니들이 난장을 벌려놓았다. 동장군의 기세 탓에 할머니들도 잔뜩 움츠렸다. 눈만 빠끔히 내놓은 채 온몸을 칭칭 감았다.

손수레를 몰고 다니며 차를 파는 아주머니도,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로 속을 달래는 할아버지도 매한가지다. 뜨거운 차 한 잔과 국물로 속을 풀고 있다. 모닥불도 여기저기 등장했다.

"아따, 내 불 좀 가져가란 말이시. 나 혼자 쬐믄 쓰겄는가. 같이 쬐야제."

서로 숯불을 나누는 인정이 가슴 속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그 가운데에 놓인 화로 위에는 커다란 굴이 올려져 있다. 동장군을 녹여주는 인정이다. 한겨울에도 장터가 버텨가는 힘이다. 덩달아 내 몸을 엄습하던 추위도 저만치 달아난 것 같다.

동장군 기세 부리는 날씨에도 북적이는 장터

무안갯벌에서 건져올린 갯것들. 갯벌의 싱싱함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무안갯벌에서 건져올린 갯것들. 갯벌의 싱싱함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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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오일장 풍경. 어물전 앞에서 아낙네들이 물건을 살피고 있다.
 무안 오일장 풍경. 어물전 앞에서 아낙네들이 물건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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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사갖고 가. 김장에다 넣으믄 끝내줘. 얼매나 맛있는지 몰라."

김씨 할머니가 작은 함지박에 담아 보여준 것은 굴과 새우다. 달머리(월두)마을 할머니들이 갯가에서 직접 쪼아서 캔 굴이란 말도 덧붙인다. 그 굴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상가 한 귀퉁이에서 만난 두부 모양의 족편도 맛있게 보인다. 돼지족발을 삶아서 눌러 만든 것이다. 반듯하게 네모로 잘라 놓은 게 영락없는 두부다. 실고추와 파, 참깨를 얹어 모양도 냈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입안에 군침이 돈다.

"막 시쳐(씻어) 갖고 무시(무) 채 썰듯이 썰어. 글고(그리고) 솥에다 삶아서 눌러야 해. 겁나게 힘들어. 아침에 시작하믄 컴컴해져서 끝나. 아들이 정육점 사장인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해갖고 나와. 맛나제."

족편을 파는 할머니의 말이다. 피부에 좋단다. 초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단다. 기가 막힐 정도로. 할머니의 얘기다. 할머니가 한 조각을 떼어내 길손에게 건넨다. 혀끝으로 전해지는 맛이 고소하다. 장터의 새로운 명물이다.

족편. 돼지족발을 삶아서 눌러 만들었다. 생김새만큼이나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족편. 돼지족발을 삶아서 눌러 만들었다. 생김새만큼이나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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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오일장의 새로운 명물 족편. 할머니가 족편을 팔고 있다.
 무안오일장의 새로운 명물 족편. 할머니가 족편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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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를 한 바퀴 돌아오니 장터가 한산해졌다. 옹기종기 모여 해바라기를 하던 할머니들도 보이지 않는다. 달머리 갯벌에서 땄다는 굴도 보이지 않는다. 수북하던 족편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장터가 조용해지면서 망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낡은 장옥에 들어앉은 대장간에서다. 대장간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다. 희미한 전깃불 아래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무쇠를 내리치는 대장장이는 유석남 할아버지다.

"이런 식칼을 만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그만."

유씨 할아버지의 손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뭉텅하던 무쇠가 눈 깜작하는 사이에 조새로 변한다. 조새는 갯벌에서 갯것을 채취하는 데 쓰는 도구다. 모양이 새처럼 생겼다. 이른바 '황새조새'다. 요사이 잘 나가는 물건이다.

무안오일장의 노점. 좌판을 편 할머니가 잔뜩 움크린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무안오일장의 노점. 좌판을 편 할머니가 잔뜩 움크린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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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써도 녹이 슬지 않는다는 식칼. 무안장의 대장장이 유석남 할아버지가 만들 것들이다.
 몇 년을 써도 녹이 슬지 않는다는 식칼. 무안장의 대장장이 유석남 할아버지가 만들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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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이 조새에 관심을 보였더니, 할아버지가 다른 물건을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은 따로 있다면서. 바로 식칼이다. '지도'라고 새겨진 글귀가 선명하다. 할아버지가 만든 걸작이란다.

"녹이 슬지 않아. 몇 년을 써도 끄떡없어. 이런 칼 만드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나밖에 없을 거여."

할아버지의 말에 자존심이 가득 묻어난다. '지도'라는 글귀는 할아버지가 처음 대장간을 시작한 지도장을 기념해 새겼다고 했다. 지도장은 가까운 신안군 지도읍에 섰던 오일장을 일컫는다.

크게 볼품은 없어 보였지만 귀한 물건이었다. 가격도 공장에서 예쁘게 찍어낸 칼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무쇠와 씨름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길에서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대장장이 유석남 할아버지가 무쇠를 달구고 있다.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려주는 대장간 풍경이다.
 대장장이 유석남 할아버지가 무쇠를 달구고 있다.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려주는 대장간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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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안장, #무안오일장, #세발낙지, #대장간, #족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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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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