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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전인아 작가. 뒤로 이번에 나온 모든 작품을 3분짜리 박진감 넘치는 담은 영상으로 평면에 움직임이 들어가 입체적 효과를 줘 그림의 생동감을 경험하게 한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전인아 작가. 뒤로 이번에 나온 모든 작품을 3분짜리 박진감 넘치는 담은 영상으로 평면에 움직임이 들어가 입체적 효과를 줘 그림의 생동감을 경험하게 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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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아 작가에겐 태곳적 생명의 원형을 찾아가는 게 큰 주제이다. 이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매트릭스(Matrix)'다. 이 단어는 마테르(mater/mother, 자궁, 암컷, 모태)'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는 작가의 관심인 우주만물을 움직이게 하고 숨 쉬게 하는 기운생동과 그걸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추동력을 말한다.

그는 자신이 즐겨 쓰는 맥트릭스 개념을 선사시대 여성의 이미지나 새나 말 같은 신화나 설화 속 동물의 이미지 등으로 그린다. 이번엔 고구려 '주몽'이 타던 말을 연상시키는 장승업이 그린 말 그림 '몽니(蒙泥)'와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신라의 '천마도'를 모티브로 해서 날렵하고 기백이 넘치는 말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생명의 원류가 담긴 음양의 조화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생명이 웅비하는 기상을 보여준다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생명이 웅비하는 기상을 보여준다
ⓒ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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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신화적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미술이란 언어로 형용할 수 없거나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처럼 생명의 원형을 구현하는 데는 문자보다는 조형언어가 그 표현력에서 훨씬 더 강력하다.

생명의 기원을 찾아가는 건 어찌 보면 동서고금 모든 작가의 염원인지 모른다.

동양에서는 '정음정양'이라고 해 음양을 상하가 아니라 조화의 견지에서 봤다. 다시 말해 남녀의 공존이나 우주의 조율을 말한다. '음'과 '양' 사이에 난 자식을 '오행'이라고도 하고, 동양의 산수화에 나오는 울퉁불퉁한 바위와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음양의 하모니, 다시 말해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은유한 것이다.

서양미술사에서도 생명의 모태를 찾는 건 마찬가지다. 현대미술일수록 그런 걸 재현보다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뒤샹'이 바로 그런 작가다. 그는 자궁을 상징하는 변기라는 오브제를 통해 이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이전에 '쿠르베'는 더 사실적으로 그걸 그렸다. 백남준 또한 여성의 몸인 'TV첼로'로 이런 조화를 표현했다.

생명의 원류인 여성성이 인류구원

전인아 I '날개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말의 모습은 여성적이나 격정적인 힘이 느껴진다.
 전인아 I '날개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말의 모습은 여성적이나 격정적인 힘이 느껴진다.
ⓒ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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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한다"고 괴테는 말했지만 결국 동서 가릴 것 없이 예술이란 오랜 가부장사회에서 손상된 여성성과 모성성을 다시 복원시켜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명모태인 자연의 품, 여성의 한량없는 포용성과 모성의 풍요로운 대지성으로 회귀했을 때 완벽한 환희와 열락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인아 작가는 바로 이런 생기 넘치는 태초의 여성성과 그 속성인 수용과 잉태의 이미지를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추상이든 구상이든, 문명이든 원시이든, 현실이든 신화이든 상관이 없이 그의 작품전반에 무의식적으로 깔고 있다.

이제 다시 그의 작품으로 돌아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번 갤러리 비원전시는 '몽니시리즈', '천마도시리즈', '날개시리즈' 등 셋으로 나뉜다. '몽니시리즈'는 장승업의 말 그림을, '천마도시리즈'는 천마총의 말 그림을, '날개시리즈(위 작품)'는 전인아 작가만의 방식으로 날개 달린 상상의 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왜 부제가 '몽니아인(蒙泥아인)'인가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그림이 신화적 분위기를 풍긴다.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그림이 신화적 분위기를 풍긴다.
ⓒ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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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부제가 '몽니아인(蒙泥아인)'이다. 이게 뭔가. '아인'은 작가의 한글 호이고, '몽니'는 천재화가 장승업이 그린 '팔준도(八駿圖) 중 한 부분인 '몽니정관(蒙泥靜觀: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너울대는데 말이 노니는 걸 보다)의 줄인 말이니 결국 작가가 장승업의 말 그림에서 영기를 받고 현대적 드로잉으로 그렸다는 뜻이 된다.

전인아 작가가 이런 신화세계와 전통회화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건 아마도 그의 집안내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는 일제 강점기에 모든 재산을 바쳐 한국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정형필 선생의 손녀이다.(아래 참고)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우리문화재와 역사 등을 많이 접했기에 이런 신화적 상상력이 나왔는가.

'천마도시리즈'는 뭘 그린 것인가

전인아 I '천마도(Heavenly Horse)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말 그림에 날개를 달아 박진감이 난다.
 전인아 I '천마도(Heavenly Horse)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말 그림에 날개를 달아 박진감이 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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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천마도'에 대해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시키는 한국적 신화의 매개체로 보고 있는데 이를 재해석한 말 그림 '천마도시리즈'에 대해 더 알아보자.

위 말 그림은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국보 제20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5~6세기경 제작,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 신라시대 유일한 그림, 고구려 영향을 받다, 위키피디아참고)'를 모티프로 한 것으로 여기서 '장니'가 붙은 건 그냥 벽에 거는 그림이 아니라 말안장에 붙이는 장식용 말 그림임을 가리킨다.

그런데 전인아 작가는 역시 이 '천마도시리즈'에서도 신라의 천마도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말을 다르게 그린다. 그냥 땅 위를 뛰거나 달리는 게 아니라 새처럼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말이다. 환영의 세계를 도출하는 게 회화의 특징이지만 이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향을 큰 꿈의 날개처럼 가시화한 결과물이다.

말 이야기가 나오니 백남준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는 우리가 몽골사람과 3천 년 전에 헤어졌지만 우리는 북방유라시아 초원을 휩쓸었던 몽골계에서 내려온 유목민 기마민족으로 봤다. 그러면서 칭기즈칸이 세계를 지배한 건 가장 빠른 말의 속도 때문이란다. 하긴 지금은 그런 걸 정보통신의 속도가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생명복원, 마음의 해방, 생기찬 세상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 요소가 많아 특이해 보인다.
 전인아 I '몽니시리즈' 종이에 혼합매체 2014.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 요소가 많아 특이해 보인다.
ⓒ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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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아 작가의 작품세계를 요약하면 대충 세 가지다. '생명의 원형인 여성성 복원'과 '마음의 해방감' 그리고 '기와 에너지 넘치는 세상에 대한 동경'이다.

여성적 생명의 복원은 이미 여러 번 언급했고 이제 그에게 또 중요한 건 "이번에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니까 관객이나 갤러리 눈치를 안 보고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그릴 수 있어 마음이 훨씬 편하다"라고 작가의 말처럼 마음의 해방감이다.

작가는 또 "낙서는 나의 호흡"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번 말 그림을 보면 역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에 해방감을 주관적 감정으로 표출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그 붓질이 남성 못지않게 활기차고 이전보다 박진감이 더 넘친다. 그럴 때 작품 안에서 기와 에너지가 생성되는 모양이다.

위에서 보듯 추상과 구상이 뒤섞여서 형상을 드러내는 듯 감추인 듯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묘한 운동감과 리듬감을 일으키고 또한 분위기를 압도하는 경쾌하고 발랄한 색채를 써 서구추상화의 거장인 칸딘스키의 분위기도 낸다.

40대 비로소 작가적 정체성 확립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온 부부는 전인아 작가의 지인이자 팬이다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온 부부는 전인아 작가의 지인이자 팬이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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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소개하면 지금은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나 한때 그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한 때가 있었다. 모 일간지의 기사를 보면 서울대 재학 때 이 학교 멘토였던 서용선 교수로부터 드로잉 과목에서 바닥학점도 받았고 동기는 다들 잘 나가는데 자신만 아니라 자괴감에도 빠졌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전자매체에서 디자인 부에도 일도 해봤지만 거기서 깨달은 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이라는 걸 알게 돼 다시 도전했단다. 40대에 들어와선 매년 전시를 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보인다. 올해는 박사학위논문을 끝내느라 바빴지만 내년부터 더 맹렬하게 작품을 할 태세이다.

이제 끝으로 작가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으로 이 전시 글을 맺는다.

"우리시대 되찾아야 여성성이 뭔지"를 묻자, 그는 "신라 선덕여왕시대처럼 여성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문화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답한다. 하긴 1500년 전 남성권력이 독점된 시대 여왕이 군주였으니 평화와 공존의 바람직한 공동체의 좋은 사례임에 틀림없다.

문화로 나라를 지킨 '전형필 선생'의 집안내력

1940년대 전형필 선생 모습. 전형필 선생의 아들 전성우 화백(전인아 작가의 부친)과 그의 손자인 전인건 선생을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전형필 선생과 너무 닮았다
 1940년대 전형필 선생 모습. 전형필 선생의 아들 전성우 화백(전인아 작가의 부친)과 그의 손자인 전인건 선생을 전시장에서 만났는데 전형필 선생과 너무 닮았다
ⓒ 전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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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아 작가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조부인 전형필 선생과 그의 집안내력을 아는 게 도움이 되리라.

일제강점기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보호로 나라를 건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일제 때 종로에 99칸의 저택과 10만석이 산출될 정도로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그는 '삼성가'와 다른 길을 걸었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색 속에서도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사들여 나라를 지켰다. 우리나라 기업메세나 운동의 선구자로 부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 했다.

독립 운동가이자 서화(書畵)전문가 오세창의 영향으로 전형필 선생은 문화재관심 가지게 되었고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을 매입하여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1938년 조선 최초의 근대사립미술관인 '보화각'도 세웠다. 전형필 선생이 안타깝게 1962년에 돌아가시자 그의 정신을 잇고자 1966년부터 '간송미술관(소장 전영우)'이 세워졌다. 1971년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에 미술관을 개방한다.

전형필 선생은 3남3녀를 두었으나 장남이 일찍 세상을 떠나 차남이 장남역할을 했다. 그분이 바로 전인아 작가의 부친인 '전성우' 화백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도 겸한다. 전인아 작가의 작은 아버지인 '전영우' 교수도 서울미대를 나와 상명대 미대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간송미술관 관장이다.

전성우 화백에 대해 더 알아보면 1953년 서울미대에 입학한 후 얼마 안 돼 부친의 권고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백남준보다 20년 먼저 '휘트니미술관' 전시에 초대될 정도로 미국에서 화가로 그 이름을 날렸다. 갑자가 부친 전형필 선생이 돌아가셨는데도 부친의 유언에 따라 가족들이 알리지 않았고 모르고 있다가 우려곡절 끝에 3년이 지나 귀국해 서울대 미대교수가 되었다.

비원갤러리 전시장 내부풍경. 왼쪽부터 학고재갤러리 우찬규 대표, 상하이 푸동(HOW Art Meseum) 윤재갑 관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전인아 작가의 남동생)
 비원갤러리 전시장 내부풍경. 왼쪽부터 학고재갤러리 우찬규 대표, 상하이 푸동(HOW Art Meseum) 윤재갑 관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전인아 작가의 남동생)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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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아 작가의 남동생은 '전인건' 선생은 간송문화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올해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문화전'을 총괄기획해 관송미술관 소장품전을 열기도 했다.

전인아 작가의 어머니인 김은영 여사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미술과를 나온 재원으로 <와사등> 시집을 낸 시인 김광균의 따님이다. 순수미술에서 매듭으로 그 분야를 바꾼다. 남편의 소개로 선배 매듭장인 김희진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에게 사사받아 지금은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이다.

김은영 여사는 자녀교육을 시아버지의 철학에 따라 소위 요즘 '국영수' 위주가 아니라 '시서화' 중심으로 시켰고 그래서 가족신문도 발행, 집에서 글짓기대회 스케치북을 주고 그림그리기도 시켰단다. 그리고 보니 전형필 선생 후손과 그 가문은 이렇게 일찍부터 조부의 영향으로 문화재들 접하다보니 3대로 이어지면서 대부분이 미술과 문화재와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는 인연을 뗄 수 없었나보다.


덧붙이는 글 | [전인아 작가약력] 2014 국민대 예술대학 회화전공 박사 취득, 1997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졸업, 1993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4 몽니아인(갤러리비원), 2013 合-매트릭스(학고재갤러리), 2012 매트릭스(공아트스페이스), 2010 인-비트윈 시퀀시스(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06 나비(蝶)(공화랑), 1999 화관(갤러리아이콘),
[비원갤러리 홈페이지] http://gallerybeone.kr/월요일-토요일 11am - 6pm 일요일 휴관 서울시 종로구 화동 127-3 전화 (0)2 732 1273 gallerybeone@naver.com 안국역 1번출구 윤보선생가 방향으로 직진



태그:# 전인아, #전형필, #전성우, #전인건,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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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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