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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자책을 두고서 값도 저렴하고 휴대가 편리해 '대세'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는 전자책을 두고서 값도 저렴하고 휴대가 편리해 '대세'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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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도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네!"

나중에 책을 소포로 보내달라기에 주소를 불러달라며 수첩을 꺼냈더니, 후배가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뱉은 말이다. 연말연시면 으레 선물로 주고받던 다이어리도 거의 사라진 마당에 종이 수첩이라니, 그저 놀랍다며 비웃 듯 말했다. 하긴 내 주변에서도 펜을 쥐고 종이 위에 뭔가를 메모하는 이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긴 하다.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후배는 내가 그때그때 수첩처럼 꺼내 메모하기도 하고, 때론 카메라처럼 사진을 찍어 앨범처럼 보관할 수 있는 첨단 기기를 호주머니에 고이 '모셔두는' 내가 한심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최신형인 내 걸 만져보더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며 조롱했다. 쓸 줄도 모르면서 왜 굳이 비싼 걸 샀느냐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영업사원이 양심껏 권해 산 스마트폰... 그러나 난 '호갱님'

누가 아니래? 스마트폰이든, 요금제든 영업사원이 '양심껏' 권해주는 대로 산 난, 말 그대로 '호갱님'이다. 3년도 더 된 낡은 스마트폰과 '이별'하고 지난 봄에 새 것을 샀다. 남들은 싸게 살 수 있는 곳과 속지 않을 방법을 몇 날 며칠 연구하고 고민한다지만, 난 그저 직영점에 직접 찾아가 내게 가장 적당한 모델과 요금제를 '양심껏' 권해달라고 부탁한 게 전부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순진하다 못해 얼빠진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선한 인상의 그 직원이 나를 속이지 않았을 거라 확신하며 사용하고 있다. 설령 속였다 해도 이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속은 사람보다 속인 사람의 마음이 더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면 '호갱님'이라 놀려도 괜찮다. 물론,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고작 40대 중반의 아직 젊은 나이지만, 난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기가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다종다기한 애플리케이션이 일상생활에 편리함을 주고,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한 근사한 장난감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적어도 내게 기쁨과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때론 시도 때도 없이 주머니 속에서 징징거려 종일 꺼둔 적도 있다.

대개는 필요 없는 문자나 전화지만, 꺼둔 통에 한두 번 중요한 전화를 제때 못 받게 돼 혼쭐이 난 적이 있긴 하다. 어떻든 켜 놓으면 스팸인 줄 알면서도 열어보게 되고, 연신 만지작거리다 보니 울림이나 진동이 없어도 습관처럼 꺼내보게 되는, 여하튼 내겐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그렇듯 스마트폰과 '불화'하던 얼마 전, 다른 후배로부터 전자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는 전자책을 두고서 값도 저렴하고 휴대가 편리해 '대세'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특히 태블릿 PC나 화면이 큰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전자책이 제격이라며, 손 안에 도서관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안에 수십 권의 책을 한꺼 번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어쨌든 무척 신기하기는 했다.

활자도 크고 선명하지만 당최 '읽히지' 않는 전자책

그러나 활자도 크고 선명해서 또렷이 보였지만, 당최 '읽히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책장 넘기는 모양과 소리는 나름 완벽하게 재현했지만, 서걱거리는 '손맛'을 전혀 느낄 수 없어 도무지 책을 읽는 것 같지 않았다. 어찌어찌 읽다 보면 시나브로 익숙해질 테지만, 단지 '눈'으로만 읽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지금껏 책을 '손'으로 읽어온 내겐 낯설기 짝이 없는 일이다.

분명 괴벽이기는 한데, 책은 물론이고 잡지나 신문을 읽을 때에도 펜을 손에 쥐고 밑줄을 그으며 읽는 습관이 있다. 나중 되새길 만하다 싶은 구절은 여백에 그대로 베껴보거나 낯선 한자어가 나오면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찾아보며 읽는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채 한 시간도 안 돼 훑어보는 신문도 읽는데 족히 두세 시간은 넘게 걸린다. 아내조차 '신문 기사를 암기라도 할 참이냐'며 나무랄 정도다.

그런 까닭에 간단한 자료를 찾는 게 아니라면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보다 웬만해서는 구입해서 읽는다. 언젠가는 한 달에 책값이 50만 원을 훌쩍 넘겼던 적도 있다. 그들 중에는 중간에 읽다만 책도 부지기수다. 한 번 읽고 나면 다시는 꺼내 보지 않을 만한 것들조차 굳이 사 쟁이다 보니 이따금 내 방이 서재인지 창고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이 모두가 밑줄 그어가며 읽어야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느끼는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여기저기에 밑줄을 긋고 끄적거리다 보니 집이고, 교무실이고 책상 위에는 '멀쩡한' 종이가 드물다. 한 번은 빨간 직인이 찍힌 중요한 보고서 뒷면에 필기자국이 있어 수정 테이프로 지우느라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솔직히 곳곳의 메모한 흔적들은, 그땐 순간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였을지는 몰라도, 늘 그렇듯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보면 '낙서'에 가깝긴 하다.

요즘엔 어른이고 아이고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단연 최신형 스마트폰이 꼽힌다. 듣자니까 어린이 날이나 생일 때 받는 선물들 중 아이들의 '로망'이었던 레고 블록조차도 스마트폰에 밀려 고전 중이라고 한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확언할 순 없지만, 아이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서조차 스마트폰 광고 일색이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내가 가장 반기는 선물은 필기구

내가 가장 반기는 선물은 필기구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도 해마다 아빠의 생일 때면, 이심전심 고급 볼펜과 메모장을 알아서 선물할 정도가 됐다.
 내가 가장 반기는 선물은 필기구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도 해마다 아빠의 생일 때면, 이심전심 고급 볼펜과 메모장을 알아서 선물할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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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놓고 말하자니 사 달라 조르는 것 같아 조금 쑥스럽지만, 내가 가장 반기는 선물은 필기구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도 해마다 아빠의 생일 때면, 이심전심 고급 볼펜과 메모장을 알아서 선물할 정도가 됐다. 참 예스럽고 별스러운 '집착'이지만, 책을 읽을 때 손에 펜을 쥐지 않으면 무척 어색하고, 외출할 때 속주머니 안에 펜이 꽂혀 있으면 참 든든하다.

지금도 가장 즐겨 쓰고 있는 필기구는 대학 시절 구입한 일본제 0.7mm 샤프 연필이다. 대충 헤아려 보니 얼추 20년이 다 된 '골동품'이지만, 고장 한 번 나지 않은 채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과거 누군가는 '편지를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고 노래했다지만, 노트 정리를 할 때도, 책을 읽거나 간단한 메모를 할 때도 늘 내 손을 떠나지 않는 정든 친구다.

요즘 들어 종이 신문과 잡지가 머지않아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나아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종이책도 끝낸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말도 들린다. 학생이 줄어 학교가 폐교되고, 승객이 적어 노선이 사라지는 세태에 책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을 거라는 탄식이다. '종이가 문명을 지탱해 왔다'는 수사조차도 어느덧 조롱거리가 되어 한낱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종이 책 대신 전자책을 사서 읽는다는 마당에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소비한다고 해서 하나 이상할 건 없지만, 나 같은 '아날로그 형' 인간은 무슨 재미로 사나 싶어 못내 아쉽다. 화면을 터치하는 '차가운' 느낌이 밑줄 긋고 베껴 쓰는 '따뜻한' 재미를 결코 대신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지나친 억측일지는 모르나 빨간 우체통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우체국의 역할이 여느 은행이나 보험회사처럼 변한 씁쓸한 풍경도 결국엔 손 편지가 사라진 탓 아닐는지.

학교에서도 아이들로부터 교내 논술 시험이나 수행평가를 자필이 아닌 컴퓨터로 출력해서 제출하자는 요구를 종종 받는다. 속도도 느릴 뿐만 아니라 또박또박 손 글씨를 쓰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긴 어떤 경우에는 '판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글씨가 개발새발이라, 평가를 위해서라도 컴퓨터 출력이 필요하다 싶을 때가 없진 않다.

끝내 후배가 선물해준 전자책을 스마트폰에 고이 '모셔둔' 채, 서점에 가서 똑같은 내용의 종이 책을 샀다. 어쩌면 그 후배는 내가 주소를 받아 적기 위해 수첩을 꺼낸 것보다 '책을 소포로 싸서 부친다는 것' 자체를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말하기를, 간신히 '컴맹'을 벗어났더니 '디맹(디지털 맹인)'이라 욕먹었다고 푸념하더니만, 흡사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하지만 나의 '아날로그 사랑'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디지털 천하'로의 변화를 막을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그 속도에 허덕이며 살지 않을 자신은 있다. 한때 '얼리 어답터'들을 부러워하며 흉내라도 내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무언가에 휘둘려 헤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디맹'의 반대편에 '스마풀리안(Smarfoolian)'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스마풀리안이란, 똑똑한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바보가 된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오늘도 책상 위에는 거뭇한 신문과 책갈피 꽂힌 읽다 만 책 몇 권이 나를 향해 빙긋 웃어주고 있다. 물론, 그 곁엔 메모장이 놓여 있고, 늘 그렇듯 내 손에는 20년 된 오랜 친구, 0.7mm 샤프 연필이 들려있다. 스마트폰은? 깜빡 잊고 집에 둔 채 출근했다. 그래도 딱히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나만 그런가?


태그:#전자책, #디지털 맹인, #스마풀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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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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