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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꼭 가봐야 하나?"
"썩 당기진 않는데 그래도 미얀마 왔는데 안 보고 가는 것도 그렇잖아."

여행의 마지막 날 일행과 나눈 대화다. 원래 양곤에 도착하면 짐만 맡기고 서둘러 황금바위 짜익티요를 가볼 계획이었다. 바간에서 초저녁 출발하여 새벽녘 양곤에 도착하니 여행 막바지 피곤이 발목을 잡았다. 심야버스 이동이 근 10시간이나 된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시내투어로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시내투어 일정을 잡자니 가보고 싶은 곳은 많고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아 의견이 분분해졌다.

우리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짜장과 짬뽕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짜장면을 시키자니 짬뽕이 먹고 싶고, 짬뽕을 시키자니 짜장면이 먹고 싶은 경우처럼 '쉐다곤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 쉐다곤 파고다를 보자니 다른 곳을 가보고 싶고 다른 곳을 가자니 미얀마의 대표얼굴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음식선택 문제라면 '짬짜면' 같은 기발한 발상이라도 했을 텐데 여행일정은 혼합할 수도 없고 어느 곳은 포기해야 했다.

쉐다곤 파고다는 멀리서도 잘 보이는 양곤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 쉐다곤 파고다 쉐다곤 파고다는 멀리서도 잘 보이는 양곤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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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쉐다곤 파고다를 실제로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가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라 오기 전에 이미 TV나 책을 통해 한번쯤 본 경험이 있었고, 가이드나 현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친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가보지 않았는데 보고 온 것 마냥 호기심이나 기대가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서점에 가면 TV나 신문서평을 통해 봤던 베스트셀러 책은 잘 안 사게 되는 마음이랄까. 서울 사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남산타워나 63빌딩 꼭대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가보기도 전 대상지에 대한 호기심이 이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많은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여행정보는 적당한 수준에서 머물러야겠다는 싱거운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대표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미얀마 대표 얼굴을 만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얀마 대표얼굴이자 자존심의 얼굴인데 초행길 여행자들이 자존심 구기게 튕겼으니 쉐다곤 파고다에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양곤 순환열차를 타면 양곤 중앙역에서 내려 걸어 갈 수 있다’
▲ 쉐다곤 파고다 가는 길 양곤 순환열차를 타면 양곤 중앙역에서 내려 걸어 갈 수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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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에서는 쉐다곤 파고다가 '갑'이다

반나절 짜리 임시숙소가 밍글라돈 국제공항 근처였기에 양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겸 양곤 외곽순환 열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순환열차는 실제로 타보니 얘기로 듣던 것보다 훨씬 정겹고 포근했다. 느릿느릿 양곤을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한번쯤 타보길 권한다. 승차안내원이나 변변한 안내 방송도 없는 유랑열차 같은 순환열차에서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역 이름이 영어,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고 현지 역에 붙어 있는 역명은 미얀마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어설픈 미얀마어 실력으로는 지나는 역이 어느 역인지 알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어디서 내려야 할지는 현지 미얀마 승객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미 호기심 덩어리 이방인들에게 꽂혀 있었다. 정작 대화를 시도했을 때는 짧은 영어 질문에도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검은 눈동자만 깜빡일 뿐 소통은 힘들었다. 그나마 알아 듣게 된 것은 손짓발짓으로 표현하며 연신 '쉐다곤 파야'를 외친 덕이었다. 다른 말은 몰라도 쉐다곤 파야만은 잘 알아 들었다.

'아! 역시 양곤에선 쉐다곤 파고다가 갑이군.'

잠깐이지만 쉐다곤 파고다가 미얀마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잡고 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국적불명의 영어, 한국어, 미얀마어가 섞인 '섞어언어'와 손짓 발짓으로 물어 물어 어렵게 양곤중앙역에 내렸다.

양곤중앙역에서 쉐다곤 파고다를 찾아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일단 눈을 맞추고 '쉐다곤 파야'를 외치면 특유의 미얀마 미소를 지어 주며 손끝으로 가리켰다.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면 황금빛 탑의 끝부분이 반짝이며 보였다.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잡한 양곤 시내를 가로질러 찾아 가는 길은 피곤에 지친 몸을 더욱 지치게 했다. 땀이 연신 등줄기를 타고 내려 그 느낌이 영 찝찝했다. 역시 미얀마 자존심의 얼굴이라더니 쉽게 보여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직접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방문 했을 때는 1년에 두 번 있다는 외벽금박 입히는 공사 중이었다.
▲ 쉐다곤 파고다 직접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방문 했을 때는 1년에 두 번 있다는 외벽금박 입히는 공사 중이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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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러한 작은 탑들이 도열해 있다.
▲ 쉐다곤 파고다 주변 탑들 주변에 이러한 작은 탑들이 도열해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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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것이 미얀마의 얼굴

드디어 미얀마의 강렬한 햇빛을 뚫고 황금빛 얼굴, 최고의 미얀마스타 '쉐다곤 파고다'와 대면했다.

"아~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간의 모든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로구나. '대단하다'는 표현 이외는 모든 미사여구는 잔소리였다.

미얀마말로 쉐(Shwe)는 황금을 뜻하고 다곤(dagon)은 언덕을 의미한다. 쉐다곤 파고다는 직역하면 '황금으로 된 언덕 위의 불탑 사원'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이 탑에는 60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황금이 입혀져 있고 수많은 보석으로 치장 되어 있다. 와서 보니 이러한 외형적인 것은 번외의 감상이었다.

그 안의 모든 것, 간절함으로 경배하는 미얀마 사람들과 구조물들은 하나같이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꼭 규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으나 김태희는 직접 보면 멀리서도 광채가 난다더니 쉐다곤 파고다도 그런 격이었다. 실제로 만나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이런 느낌은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미얀마의 대표얼굴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사원 이상의 무엇이 있다.
▲ 소녀의 기도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사원 이상의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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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다곤은 미얀마의 자존심

서울의 상징적인 중심지는 어디일까? 남산이라는 사람도 있고 시청 앞 광장이라는 사람도 있고 종각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광화문 광장이 아닐까 싶다. 광화문 광장을 서울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꼭 지도상 위치로 따지는 건 아니다.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이다. 지금도 뒤편에 청와대를 품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광화문 광장이 상징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광화문 광장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미얀마의 얼굴이라는 쉐다곤 파고다이다. 지난 8888민주화 시위(1988년8월의 민주화 시위) 때나 2007년 9월~10월 있었던 민주화 시위의 출발점 바로 쉐다곤 파고다였다.

이처럼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 이상의 정신적인 중심이고 그들의 자존심이자 얼굴이다. 그러니 미얀마로 여행을 가거든 무조건 쉐다곤 파고다를 방문해야 하며 그곳에 눈도장을 찍어야 미얀마를 다녀온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쉐다곤 파고다를 빼고 미얀마를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의 대표얼굴이고, 미얀마 자존심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의 눈빛이기 때문이다.

큰 처형의 막내딸은 한 때 사생팬으로 연예인을 쫓아 다녀 집안의 큰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덜 하지만 한때 조카는 샤이니의 민호팬이었다. 샤이니 공연이나 녹화장은 모두 쫓아 다녀 큰 처형은 걱정을 안고 살았다. 처가 모임 때 만나 한번 물어봤다.

"샤이니 좋아하는 건 좋은데 꼭 찾아 다녀야 하니? TV나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잖아."

조카는 한마디 했다.

"직접 안 보면 몰라."

미얀마 자존심의 얼굴 쉐다곤 파고다! 조카 말이 생각난다.

'직접 안 보면 몰라!'

저것이 미얀마의 눈빛이다.
▲ 미얀마의 눈빛 저것이 미얀마의 눈빛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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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눈빛

조용히 선회하는 날개 사이
잠자는 양곤의 밤은
선명하게 반짝이는 황금빛 눈으로
낯선 이방인을 맞는다.
후덥지근한 아열대의 열기 속
팍팍했던 하루도
내일의 꿈 따위도
모두 접은 채
양곤은 쉐다곤의 자비 아래 잠들어 있었다.
보라!
저것이 미얀마의 눈빛이다.

- 2014년10월 양곤에서 쓰다

※알고 보자: 쉐다공 파고다의 비밀

쉐다곤 파고다는 고고학자들은 6~10세기 몬족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보지만 전설에 따르면 2500년 전 부처 생존 시 부처님 머리카락 8개를 얻어와 이곳에 안치한 후 지어졌다고 한다. 양곤은 우기 때는 4000mm 가까이 비가오기 때문에 침수를 피하기 위해 쉐다곤 파고다는 근처 지대보다 60m정도 높이 언덕을 쌓아 지었다고 한다. 면적이 축구장 4.6개를 합친 크기로 무려 1만평(3만3천평방미터)이라고 하는데 이 어마어마한 면적에 언덕을 쌓아 지었다 하니 그 노력과 정성이 대단하다.

이 언덕을 쌓기 위해 파낸 자리가 바로 인공호수가 된 깐도지 호수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가 14세기 바고의 빈야우왕이 18m로 재건하였고 그 뒤 여러 왕에 의해 20m, 40m로 계속 높여 졌다. 1768년에 최악의 지진으로 탑의 정상부가 무너졌으나 꽁바옹왕조 신뷰신 왕에 의해 현재의 높이인 99.36m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15세기 바고(Bago)왕조의 신소부(Sinsawbu) 여왕은 자기 몸무게에 해당하는 약40kg의 금을 기증하여 파고다 외벽에 붙였다.

그 뒤 계속해서 금을 기증하여 현재 외벽에만 1만3천여개의 금판이 붙어 있으며 약 60톤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금의 값어치만 대략 추정해 보니 2조4천억(60t* 현재 금시세 1g = 4만원 추정)원이나 된다. 이 외에도 탑 꼭대기 부분에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주변의 1800캐럿의 5448개의 다이아몬드, 2317개의 루비, 1065개의 금종, 420개의 은종 등으로 치장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표기법은 미얀마 현지 발음 중심으로 표기 했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숨겨진 미얀마의 보석 같은 얼굴 흥앗따잇편의 '흥앗따잇'은 '흥애(아)싸' 로 고쳐야함을 알려드립니다.
새모이는 미얀마 말로 '흥애싸' 또는 '흥아싸' 라고 부릅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태그:#미얀마, #전병호, #땅예친 미얀마, #쉐다곤 파고다, #쉐다곤 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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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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