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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의 맞이굿판에서 창부 신복을 입은 남녀창부가 술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 창부거리 고성주의 맞이굿판에서 창부 신복을 입은 남녀창부가 술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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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마시고 창부님이 오셨으니 여창부 한 분 모셔오세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고만 그려"
"그러지 마시고 잘 찾아보세요."
"그려, 댁은 어떻소. 한 바탕 놀아 보려오."

28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 '경기안택굿보존회'라는 간판이 걸린 고성주(남·60)의 집에서는 피리와 해금 소리가 울린다. 장구, 징, 바라 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걸 판진 굿판이 벌어졌다. 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2~3년에 한번씩 '맞이굿'이라고 하여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수양부리(신도)들을 위한 굿판을 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이 맞이굿은 신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가장 정성을 다해 판을 여는 굿판이다. 남들은 2~3년에 한 번씩 하는 것도 버겁다고들 하는데, 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은 매년 봄, 가을로 굿판을 연다. 음력 3월 7일에는 봄 맞이굿을 하고, 음력 10월 7일에는 가을 맞이굿을 한다.

고성주의 맞이굿 중 창부거리는 늘 질펀하다
▲ 창부거리 고성주의 맞이굿 중 창부거리는 늘 질펀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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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신은 무격들에게 춤과 소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주는 신이다
▲ 창부거리 창부신은 무격들에게 춤과 소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주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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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부터 맞이굿 준비를 해

고성주 회장의 맞이굿은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약과와 다식을 직접 전통방식으로 만들고, 3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을 직접 조리를 한다. 그렇게 음식을 하는데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그래야 단골 수양부리들이 잘 풀린다는 것이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신령들이 자신의 수양부리들을 돕겠느냐는 것이 고성주 회장의 생각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맞이굿을 하기 전에 먼저 '제당맞이'를 한다. 제당맞이란 신령들을 굿판으로 청배를 하는 것이다. 제당맞이에는 신령들을 따라 들어오는 잡신인 수비와 영산 등이 있어, 이들을 잘 먹여 굿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12그릇에 음식을 골고루 담아 잡신들을 먼저 풀어먹이는 것도, 모두 맞이굿을 온전하게 신령들이 향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굿거리 제차가 진행이 되다가 창부거리가 시작됐다. 이 집의 창부거리는 특이하다 항상 남창부인 고성주회장이 여창부 한 사람을 지목해 질펀하게 판을 벌린다. 창부거리는 예능의 신이다. 창부신은 무격(巫覡)들에게 재주를 주고, 노래와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격이다. 하기에 창부거리에서는 재미난 재담과 소리, 춤으로 흥을 돋운다.

고성주와 홍원영이 쌍창부를 놀고 있다
▲ 창부거리 고성주와 홍원영이 쌍창부를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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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펀한 굿판, 이래서 '열린축제'

"아니 내가 전라도 남원을 출발해 여기저기 거쳐 예까지 왔는데 어째 슬 한 잔이 없소"
"준비했어요. 바로 들어옵니다."
"아니 그래도 내가 명색이 창부인데 이걸 먹으라고 주는 것이요. 잘 차려보소"

굿판에 상이 들어왔다. 막걸리에 소고기 육회 등이 상 위에 올랐다. 굿판에 있던 여무(女巫)인 홍원영(여·60)이 창부신복을 입고 자리에 앉았다. 이때부터 굿판이 질펀해진다. 춤과 소라를 곁들인다. 보는 이들도 덩달아 흥겹다. 누가 끼어들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굿판은 열린축제이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굿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봄, 가을로 맞이굿을 할 거예요. 신령을 섬기는 사람들이 정성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단골(수양부리)들이 잘 되기를 바랄 수 있어요. 그건 말이 안되는 소리죠. 저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안(신을 모셔놓은 신당)에 들어가면 '도독놈'이라고 하는 것 같아 정말 죄스러워요"

비가오는 가운데 마당에 천막을 치고 터주대감굿을 하고 있다
▲ 터주대감 비가오는 가운데 마당에 천막을 치고 터주대감굿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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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열린축제이다. 고성주의 맞이굿은 막판이 되면 지하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이 춤판을 벌인다
▲ 터주대감 굿은 열린축제이다. 고성주의 맞이굿은 막판이 되면 지하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이 춤판을 벌인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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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집의 굿판은 늘 질펀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일찍 해가졌다. 딴 때 같으면 한창 굿거리 제차가 남아있을 시간인데 막판 터주대감굿이 시작되었다. 터주대감굿은 집을 지키는 신격을 위하는 굿이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천막을 친 마당에는 떡시루와 소족발이 제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숯이 놓였다. 굿이 막판으로 치달을 때 항상 이집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숯을 사람들의 얼굴에 칠한다. 그리고 숯검뎅이가 된 사람들이 지하 무용연습실로 들어가 한바탕 질펀하게 춤판을 벌인다. '몸을 푼다'는 터주대감굿은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굿판을 찾았던 사람들이 일을 보러갔다가도, 이 시간이 되면 다시 굿판으로 찾아온다. 바로 이 터주대감굿 때문이다. 열린축제라는 맞이굿판. 그래서 늘 사람들은 이 굿판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맞이굿, #고성주, #열린축제, #창부거리, #터주대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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