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귀주성(貴州省)의 성도인 귀양(贵阳)을 떠나 소수민족인 묘족(苗族)의 생활상을 보기 위해 시지앙(西江)으로 갑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황과수 폭포에 가기로 하였는데 입장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변경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여행지가 수시로 변경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처음 접하는 곳이라 한 사람의 주장은 곧 모두의 합의사항이 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지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여행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납니다.  

묘족 마을 '시지앙'으로

기차로 카이리(凱里)까지 이동한 후 대중교통으로 시지앙으로 갈 예정입니다. 카이리행 기차는 딱딱한 의자가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경좌(硬座)입니다. 급작스레 표를 구입하여 객실이 서로 나뉘었습니다. 자리를 찾아가니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표를 보여주니 엉덩이를 슬그머니 옆으로 옮길 뿐이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리에 좁아지는데도 옆자리 승객은 웃고만 있습니다. 저 역시 슬며시 엉덩이를 걸쳐봅니다.

중국 기차 내부
▲ 기차 '경좌석' 중국 기차 내부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해바라기 씨를 저에게 권합니다. 몇 번이나 사양해도 한 손 가득 담아 줍니다. 한 손으로 해바라기 씨를 이빨 사이에 껴서 까먹는 중국 사람들의 모습은 달인의 경지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열심히 먹고 뱉고 떠드는 모습이 저잣거리 같습니다. 침대 열차에서 안락함이 있었다면 경좌(硬座)는 인간적인 삶이 살아 숨 쉬는 삶의 모습입니다.  

여행의 '하수와 고수'

카이리에 내리니 몇 사람이 다가와 짐을 낚아채려합니다. 숙소나 교통수단을 호객하는 '삐끼'입니다. 여행에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말을 걸지 않았는데 저에게 접근하여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삐끼'입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친절을 베풀 이유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삐끼'를 잘 활용하면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숙소나 이동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가졌기에.

카이리역 광장과 택시 승강장
▲ 카이리 역 카이리역 광장과 택시 승강장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삐끼'들이 시지앙까지 택시를 권합니다. 버스는 자주 있지 않으며 다섯 명인지라 택시비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대략적인 버스비를 알고 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하고 택시에 올랐습니다. 세상에는 고수와 하수가 있습니다. 하수는 한 수 앞도 판단하지 못하고 고수는 몇 수 앞을 예측하겠지요. 자신이 고수라고 생각하면서도 번번이 당하는 어리석음을 겪는 것이 하수입니다. 

120위안에 두 대의 택시를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친절한 기사의 음성은 도심에서 벗어날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택시를 탈 때 까지만 해도 '갑'이었는데 출발하자 '을'로 바뀌었습니다. 차는 점점 인적이 뜸한 시골길로 접어들고 기사의 고성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자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처음 합의한 요금의 두 배를 지불하고 카이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마추어가 프로 선수를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전기장판의 감동

시지앙에 도착하였습니다. 귀주성에 자리 잡은 묘족 마을 중 가장 큰 시지앙은 '천호묘채(千戶苗寨)'라 합니다. 마을에는 5000여 명의 묘족 주민들이 전통을 보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을은 하천을 중심으로 산기슭을 따라 위쪽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이 고즈넉한 모습입니다. 더구나 비수기라 마을 전체가 텅 빈 느낌입니다.

백수하 하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
▲ 시지앙 하천 모습 백수하 하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숙소에 전기장판이 있습니다. 환호성이 터집니다. 이번 여행에서 전기장판은 처음입니다. 그동안 추위 때문에 고생하였는데 표정이 밝아집니다. 짐을 정리하고 시장에서 배추와 파를 구입하여 준비해 온 고춧가루를 가지고 김치를 담았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김치와 밥을 먹자니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집에서는 일상의 사소한 일이 여행지에서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여행이란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모계사회 

마을을 돌아봅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틀어 올렸고 그 위에 가체를 얹은 다음 큰 꽃을 장식으로 달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양지바른 곳에 모여 카드놀이를 즐기거나 아기를 돌보고 있는 반면 여자들은 공사장에서 막일, 나무하기 등 힘들고 궂은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 "나는 내세에 이곳에서 태어나고 싶다"라는 말에 제가 "신은 하나의 소원만 들어주기에 이곳에서 태어날 수는 있지만 여성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겠지요.   

막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
▲ 모계사회 막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숙소에 돌아와 전기장판의 온기를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오랜만에 숙면을 기대했는데 창문을 타고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노래방 기계의 볼륨을 최대한 높여 마을 전체가 시끄럽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렵게 잠을 청하였는데 숙면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전기장판의 온도를 높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지나친 것이 부족한 것 보다 못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더 많이 가진 것, 더 높은 자리가 오히려 자신 인생에서 독이 될 수 있겠지요. 세상은 남보다 뒤처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이야기하지만 멈출 때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문제는 멈출 적정선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아쉽고 부족할 때 멈추면 어떨지요? 전기장판 온도를 조금 내렸다면 숙면을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며 걷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산비탈을 따라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오르면 묘족 마을의 삶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1000여 채의 기와집과 다랑이 논의 모습은 장관입니다. 민속촌처럼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닌 주민들의 삶이 어우러진 시징앙은 마을과 주민들의 생활을 어우러진 삶이 공간입니다.

언덕위에서 바라 본 시지앙
▲ 마을 모습 언덕위에서 바라 본 시지앙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묘족 마을의 '반일감정'

마을 광장에서는 매일 오전 11시에 공연이 있습니다. 공연장 중앙엔 솟대가 솟아 있고 동(銅)으로 만든 북이 걸려 있습니다. 화려한 색상과 은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은 '셩좡(盛裝)'이라 불리는 화려한 전통복장을 입은 아낙들이 대나무로 만든 악기 '루셩(芦笙)'을 불고 주민들로 구성된 공연단이 군무를 추고 노래를 합니다.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화려한 복장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구경꾼보다 출연자들이 많았지만 모두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공연
▲ 공연1 마을 주민들의 공연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악기를 연주하는 마을 주민
▲ 공연2 악기를 연주하는 마을 주민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마을 상가에 '이 상점은 일본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중국어, 영어 그리고 한글로 표기되었습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문인지 역사 분쟁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귀주성의 시골 마을의 '반일감정'을 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말은 있지만 일본어는 없는 '반일문구'
▲ 반일 문구 우리말은 있지만 일본어는 없는 '반일문구'
ⓒ 신한범

관련사진보기


이 문구를 봐야 할 사람은 중국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일본 사람인데. 일본어 표기는 없습니다.

이 문구는 중국인의 상술일까요? 아니면 애국심일까요?


태그:#시지앙, #묘족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