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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안겼다. 교회와 성직자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향한 위로였다. 입국할 때부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손을 잡은 그는 대전에서 그들을 따로 만났고, 광화문에서는 무게차에서 내려 단식 농성 중인 김영호씨의 손을 잡았다. 특별 요청을 받아들여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정부에게 외면받았던 유가족들을 감싸준 것이다. 

지난 8월 한국 방문 중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8월 한국 방문 중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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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남긴 메시지도 묵직했다. 청와대에 간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언급했다. 불통 정부에 대한 지적과 함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었다. 또한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라"고 강조했다.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교황은 약한 자들을 외면하고, 높은 지위에 안주하려는 주교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한국 방문 내내 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움직였다. 한국을 떠나며 기내 회견을 통해 밝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은 교황 스스로 방한을 상징적으로 결산한 말이기도 했다.

교황은 누군가가 자신이 가슴에 달았던 세월호 추모 리본을 떼라고 했다는 일화까지 공개했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외면하는 사제들을 향한 교황의 공개적 질타였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스스로 개혁하라

<교황과 98시간>
 <교황과 98시간>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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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100일을 맞아 4박 5일간의 일정을 꼼꼼히 기록한 책이 나왔다. 지나 20일 공식 출간된 <교황과 98시간>은 교황의 방한을 음미하고 정리하는 총 결산서다. 

당시 취재기자로 11개의 공식 일정 중 5개를 수행했던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가 미처 기사로 못 담아낸 뒷이야기를 정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석상에서 한 강론과 메시지가 전문으로 수록됐고, 해방신학자 김근수 선생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내 기자 회견 전문과 로마로 돌아가 일반 접견 때 밝힌 한국 방문에 대한 소감도 수록했다.

김근수 선생은 교황 방한 전 로마에서 한국 교회의 상황을 담은 편지를 교황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교황 방한 기간 중 비공식적으로 교황님과 면담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때 "편지를 잘 읽었다"며 인사했다고 한다. 책 <교황과 98시간>은 언론에 단편적으로 소개됐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과 공식 발언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교황의 발언에 어떤 뼈가 담겨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교황 말씀의 숨은 뜻을 엿볼 수 있기에 흥미롭다.

김용운 기자는 당시 교황 방한을 취재했던 국내 언론사 기자 중 몇 안 되는 가톨릭 신자였기에 풍부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교황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 방한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어떤 뒷이야기가 있었는지 전한다.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단식 중이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를 위로하게 했던, 광화문 광장에서의 열린 시복식을 밀어붙인 것은 염수정 추기경이었다. 경호 상의 어려움과 타 종교와의 형평성 문제로 다른 장소가 제시됐지만 염 추기경의 의지는 강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 전에 결정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추기경의 의도와는 다르게 세월호 문제와 맞물리면서 가장 상징적 있는 행사가 되는데 기여(!)한 셈이다.

<교황과 98시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남긴 메시지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정치·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 편에 서라는 것. 성직자들이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기 개혁에 힘쓰라는 것이었다.

지난 8월 청와대를 방문한 교황과 면담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8월 청와대를 방문한 교황과 면담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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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었다"

저자 김근수씨에 따르면 교황이 공식 일정 속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 것은 청와대와 주교 회의였다.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를 경험했던 교황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청와대에서 교황의 발언은 혹시라도 한국 정부가 교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음을 확신시켜준 계기가 됐다. 책에 소개된 교황 발언 전문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 정권에 작심하고 해준 말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만족스러운 상태에 이르지 못했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한국도 중요한 사회 문제들이 있고,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자연환경의 책임 있는 관리에 대한 사안들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도 이 나라가 앞장 서 주기를 바랍니다." -<교황과 98시간> (2014년 8월 14일 청와대 충무홀. 대통령과 외교단 만남 자리에서의 교황 발언 중)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한국 주교단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방문해 한국 주교단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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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그리스도인의 필수"

청와대 이은 방한 두 번째 공식 일정으로 지난 8월 14일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 

"희망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특히 난민과 이민자들, 사회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며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야말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 있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교황과 98시간> 일부 

교황은 "교회가 중산층화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를 경계할 것을 주교들에게 요청했다. '이를 모르는 주교들이 없겠지만 교황의 강조는 주교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는 여러분들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입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그렇게 된다면) 그 교회는 아마도 번영의 신학을 펼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쓸모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교황과 98시간> 일부

<교황과 98시간>은 지금껏 세 번의 교황 방문이 있었지만 지금껏 이를 제대로 기록한 책이 없었다는 점에서, 교황 방한이 남긴 의미와 과제를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또한 교황 방한이 지난 시간의 일로 잊히지 않고 한국 가톨릭 개혁의 동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이어 존재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추기경들을 비롯해 기득권의 편에 안주하려는 사제들이 교황의 훈계를 외면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고,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경각심도 일깨운다.

덧붙이는 글 | <교황과 98시간>(김근수, 김용운 씀) / 메디치미디어 / 2014-11-20 / 15000원



교황과 98시간 - 프란치스코, 한국에 공감과 정의를 선물하다

김근수.김용운 지음, 메디치미디어(2014)


태그:#교황과 98시간, #프란치스코 교황, #김근수, #김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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