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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민대학교에서 23년간 시간강사로 재직하며 지난 4년 동안은 시간강사 노동조합(아래 노조) 활동을 해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시간강사는 전형적인 비정규직 근로자로 분류됩니다. 고용은 대개 6개월 단위로, 극도로 불안정합니다.

방학이 끝날 때쯤 학교에서 연락이 오면 다음 학기로 생명이 이어지고 아무 연락도 없으면 그대로 해고된다는, 웃지 못할 사연들이 꽤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시급 형태로 지급되는 임금은 생활을 위협합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몇몇 시간강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조금씩 개선하고자 저는 지난 2011년 5월 국민대학교에 강사 노조를 세웠고, 지금껏 이어왔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대학 학사 행정은 6개월 '한 학기'를 한 단위로 합니다. 대개 1학기는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고, 2학기는 '9월 1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입니다. 이 기간 중 '개강→16주 강의, 학생 면담→중간·기말고사→시험 채점→성적 입력→다음 학기 강의계획서 작성 및 입력→다음 학기 강의 준비를 위한 연구' 등이 이뤄집니다. 이러한 근로 내용은 대학 내 모든 교원에게 공통입니다. 전임 교수든 강의 전담 교수든 초빙 교수든, 모두 '6개월 근로'를 이어갑니다. 시간강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4개월짜리 계약서', 공지는 제대로 하셨나요?

그런데 국민대학교를 비롯한 몇몇 학교들은 시간강사들에게 4개월짜리 계약서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대학교는 2010년부터 시간강사들에게만 '4개월짜리 계약서'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계약 기간이 '3월 1일부터 6월 20일까지'로, 대학 강사가 다른 교원과 똑같이 치르는 '6개월 근로'가운데 '2개월 근로'를 무시한 것입니다.

이는 대학 강사가 방학 중 강사료를 지급받을 권리를 박탈한 것입니다. 계약 내용에 대한 사전협의도 하지 않았고, 사전공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각 과 조교를 통해 메일로 일방적 계약서를 내밀어 일정 기간까지 날인해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정을 좀 더 자세히 밝히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23년간 국민대학교에서 일했지만, 계약서를 쓴 것은 2010년 이후부터였습니다. 다만, 2010년 전에는 대학에서 발행하는 '강의 경력증명서'에 강사 근로 기간을 '6개월'로 명기했습니다. 즉, 계약서는 써주지 않되, 강사가 한 학기에 6개월 동안 근로한다는 사실을 학교 측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강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근로하는 것을 보호해 줄 법적 근거인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은 이를 빌미로 강사들에게 방학 중 2개월치 임금(강사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부당함은 지금껏 쭉 이어져 왔기에 마치 관례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러다 강사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모아지고, 정부가 계약서 작성을 권고하자 국민대 측은 2010년부터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원칙대로 계약 기간을 6개월로 해야 마땅했지만, 그러자니 강사에게 6개월치 임금을 지급해야 했으므로 이를 피하고자 '4개월짜리 계약서'를 강사들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강의 경력 증명서의 내용을 보면, 2010년부터 강의 기간이 6개월에서 4개월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강의 경력 증명서의 내용을 보면, 2010년부터 강의 기간이 6개월에서 4개월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황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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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학교 측은 2010년 이후 강사 강의 경력증명서에도 6개월이 아니라 4개월로 근로 기간을 줄여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13차례 정도 노사 협상을 진행하면서, 강사가 방학 중 다른 교원과 100% 동일하게 근로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근거로 '4개월짜리 계약서'를 철폐할 것을 줄곧 주장하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요지부동입니다(<한국대학신문>(6월 1일)은 "국민대학교 외에도 서울지역 대학 중 광운대, 동덕여대, 명지대 등 10여 곳이 4개월짜리 계약서를 사용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어 학교 측은 2012년 '위촉 기간 전후라도 학사 진행을 위해 강의 계획서 제출, 성적 입력 및 정정 등 제반 사항에 협조하여야 한다'(국민대 시간강사 운영 요강 5조 4항)는 조항을 계약서에 추가했습니다. 4개월 계약 기간 외 강사가 수행하는 근로에 대해 아무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일하도록 한 것입니다. 더불어 이에 대한 사전협의와 논의는 물론 공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강사 처우 개선은 강사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차원을 넘어선다"고 말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 교육에서 약 50~60% 이상을 강사가 담당하고 있기에 강사 처우 개선은 올바른 대학 교육과 직결돼 있습니다. 생존에 허덕이고, 소속감과 존재감을 뺏긴 선생이 어찌 힘을 다해 학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국회에서도 현재 강사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규직'이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긴급 과제라고 볼 때, 강사법 개정에 앞서 이러한 사례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대학교 "강의 담당 시간 기준으로 계약서 작성한 것"
국민대학교 측은 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저희는 강의 담당 시간 기준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 실제 강의가 이뤄지는 시간이 4개월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안건에 대해서 시간강사노조와 협의 중이고, 교정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0년 이전에는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당시 시간강사 분들에 대한 처우가 통상적으로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개선을 위해 2010년부터 계약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태그:#강사 처우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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