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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원들이 일본 감독자의 인솔하에 행진을 하고 있다.
▲ 미쯔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어린 나이에 부모 품을 떠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원들이 일본 감독자의 인솔하에 행진을 하고 있다.
ⓒ '나고야 미쯔비시 근로정신대소송 지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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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림(85)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유가족 4명이 지난 2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가운데, 피해자의 강제노역 여부를 입증하는 '후생연금 가입'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일본에 후생연금 탈퇴수당을 청구할 예정이지만, 2009년 파문을 일으킨 일본의 '99엔 지급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18일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된 김재림(85)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의 일본 후생연금 가입 기록을 공개했다.

후생연금은 당시 일본에서 5인 이상을 채용한 사업장이면 의무가입해야 했던 제도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일했던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다. 연금 비용은 근로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임금에서 원천 공제됐다.

시민모임이 일본연금기구 아이치사무센터를 통해 확인한 후생연금 자료에 따르면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 양영수(86), 신선애(85) 할머니는 후생연금 제도가 시행된 1944년 10월 1일부터 1945년 10월 21일까지 미쓰비시중공업에 고용돼 12개월 동안 후생연금에 가입돼 있었다. 1944년 12월 7일 일본 도난카이 지진 때 사망한 고 오길애 할머니의 경우 1944년 10월 1일부터 1945년 12월 8일까지 2개월 동안 후생연금을 납입했다.

시민모임은 조만간 후생연금 탈퇴수당 지급을 요청할 계획이다.

2009년 같은 사례... 일본, 탈퇴수당으로 99엔 지급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의 할머니들에게 1인당 99엔(약 1300원)씩을 후생연금 청구액으로 지급한 가운데 2009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 사회보험청의 조치에 항의하며 오열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의 할머니들에게 1인당 99엔(약 1300원)씩을 후생연금 청구액으로 지급한 가운데 2009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 사회보험청의 조치에 항의하며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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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끔찍한 전례가 있다. 2009년 공분을 일으킨 일본의 99엔 지급 사건이 김 할머니 등 피해자 4명의 사례와 똑 닮아있다.

1999년 양금덕(84)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일본 후생노동성(한국의 고용노동부와 유사) 산하 사회보험청에 자신들의 후생연금 가입 여부를 조회한 바 있다.

12년 동안 확인을 미루던 사회보험청은 2009년 9월 7일에야 피해자들의 후생연금 가입 사실을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에 통지했다.

통지 내용에 따르면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6명은 1944년 10월 1일부터 1945년 9월 1일까지 11개월 동안, 고 김순례(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 지진 때 사망) 할머니는 1944년 10월 1일부터 사망 때까지 후생연금을 납입했다.

연금 가입사실을 확인한 양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일본에 탈퇴수당을 청구했다. 일본 후생연금 규정은 6개월 이상 연금에 가입한 근로자에 탈퇴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이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금액을 기준으로 탈퇴수당금 99엔을 산정했다. 이어 화폐가치, 물가변동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2009년 12월 피해자들에게 99엔 씩 지급했다. 2009년 당시 99엔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00원(2014년 현재 936원)이다. 일제강점기 때 소 한 마리 값이 약 50엔이었으니 소 두 마리 대신 1300원을 배상한 셈이다.

"우리 정부, 또 수모 겪을 것인가"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의 할머니들에게 일본이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을 지급한 데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010년 1월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한국의 할머니들에게 일본이 후생연금 99엔(약 1300원)을 지급한 데 대해 정부가 일본을 대신해 직접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2010년 1월 26일 정오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참석자들이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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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은 이번 '강제노역 사실 확인'이 2009년 99엔 지급 사건의 재판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국언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그때 99엔을 지급했던 일본이 이제와서 제대로 지급할 리 없지 않은가"라며 "이번에 피해자 할머니 4명의 일본 후생연금 가입사실을 확인하면서 강제노역의 근거는 확실해졌지만 2009년 99엔 지급 사건이 재현될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이번에도 피해자 할머니들이 수모를 당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라며 비판의 말을 쏟아냈다.

그는 "강제노역 후 70년이 지나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와 당당히 싸우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2009년 수모를 당하면서도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 정부는 이번을 기회로 삼아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에 일본 후생연금 가입 사실을 확인한 김재림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유가족 4명은 지난 2월 27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자·유가족 5명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해, 1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태그:#근로정신대, #피해자, #일본, #99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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