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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나는 12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떠날 때는 혼자였는데, 둘이 되어 돌아왔다. 귀국하기 1년 전, 그를 처음 만났다. 태어난 지 40일 정도 되었다는, 귀가 커다란 검정 강아지는 케이지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뉴욕시 근교에는  노스쇼어  애니멀리그(North Shore Animal League)라는 보호소가 있었다.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주말마다 도심으로 동물들을 데리고 와 입양할 사람을 찾는 행사를 벌였다. 당시 자원봉사를 하던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이 개는 미국 남부 테네시(Tennessee) 주에서 불법 사냥에 쓸 사냥개를 번식하는 일당들에게서 구조한 거라 했다.

 유기동물 입양행사에서 처음 난 밴조. 뉴욕시에서는 주말이면 도심 곳곳에서 유기동물 입양행사가 열린다.
 유기동물 입양행사에서 처음 난 밴조. 뉴욕시에서는 주말이면 도심 곳곳에서 유기동물 입양행사가 열린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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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절차는 명확했지만, 그렇다고 복잡하지는 않았다. 입양신청서와 신분증, 현주소를 증명하는 우편물을 제출하고, 직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주말인 관계로 재직증명서를 받는 대신 근무하던 직장 관계자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두 명의 추천인에게 증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주말 행사인 만큼 서류 대신 전화로 통화해 해결하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사정이 생겨 양육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보호단체로 연락하겠다는 등의 몇 가지 조항이 명시된,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렇게 강아지는 법적으로 내 소유가 됐다.

목욕을 하지 못해 쿰쿰한 냄새가 나는 강아지와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고작 40일을 산, 두 뼘도 안 되는 크기의 강아지가 미국의 반 바퀴를 돌아 내게 왔다는 생각에 신기해 하던 기억이 난다. 성격이 극도로 낙천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이 강아지에게 나는 '밴조(미국 남부에서 연주하는 전통악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유실, 유기, 학대를 막는 '동물등록제'

매년 등록비를 내고 받는 동물등록증. 이름표에 붙이는 동그란 스티커는 매년 다른 색으로 제작되어 등록을 갱신하지 않은 개의 식별이 가능하다.
▲ 동물등록증 매년 등록비를 내고 받는 동물등록증. 이름표에 붙이는 동그란 스티커는 매년 다른 색으로 제작되어 등록을 갱신하지 않은 개의 식별이 가능하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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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조를 집에 데리고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에 접속해 등록을 하는 일이었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려견을 기르려면 시에 등록을 해야 한다. 절차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뉴욕시의 경우, 광견병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는 서류를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접수하고 8달러50센트,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 정도의 등록비를 내면 소유자의 정보와 접종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고유번호가 달린 동그란 인식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라면, 시에 매년 같은 비용을 주고 등록을 갱신해야 한다는 점과 4개월 이상 되었는데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 등록비 4배에 달하는 34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이런 동물 등록 절차가 '동물을 잃어버렸을 경우 소유자에게 반환을 쉽게 하고, 중성화 수술을 장려해 반려견의 수를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게 하며, 광견병 예방으로 공중 보건을 지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홈페이지에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주인이 바뀌었거나 등록한 동물이 죽었을 경우에도 반드시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동물의 수를 정확하게 집계하고, 동물학대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반려동물등록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제도에 대한 홍보가 미흡하고, 내장형 칩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등으로 등록률이 저조하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의도적인 유기가 많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외장형 인식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현재 우리나라는 외장형과 내장형 둘 다 사용하고 있다).

내장형 마이크로칩 시술은 미국 일부 주와 북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는 의무화되어 있다. 영국에서도 오는 2016년부터 의무화 할 예정이다. 동물을 버리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길을 잃으면서 인식표를 분실한 동물들도 쉽게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인 것. 이렇게 되면 시에서도 유기동물 보호와 안락사에 드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행 제도의 미흡한 점을 개선해, 반려동물 등록제가 유실 동물의 반환을 쉽게 하고 유기동물의 숫자를 줄이는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뉴욕시 대부분의 공원에는 반려동물을 풀어놓을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뉴욕시 대부분의 공원에는 반려동물을 풀어놓을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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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일원으로서 밴조의 사회생활은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마당이 있는 주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아파트 밀집 지역인 뉴욕시. 이 좁은 집에 사는 개들이 충분한 운동을 하고, 다른 개들과 접촉하며 사회성을 기르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출근 전과 퇴근 후 공원에서 운동을 시킨다(다른 시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훈련과 배변처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개와 산책하다가 만난 사람들끼리 제일 많이 나누는 대화 중 하나는 "이 개는 무슨 종이 섞인 건가요?"라는 질문일 거다. 유기동물 입양이 다른 지역보다 활성화 된 대도시의 경우에는 보호소에서 입양된 개를 기르는 경우가 많다. 이 중 대부분이 혼혈종,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는 말로 '믹스견'이기 때문에 "무슨 종인가요?"라고 묻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밴조의 경우 "비글과 섞인 것 같기는 한데, 보호소에서 와서 정확히는 몰라요"라는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만난 사람들간의 '개 종 맞추기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색깔을 보면 도베르만과 섞인 것 같네요."
"내가 아는 개도 이렇게 생겼었는데, 그 개는 비글과 닥스훈트 믹스랬어요."

이렇게 난무하던 추측들은 백이면 백, "어쨌거나, 개는 역시 멋지고 건강한 혼혈종이 최고!"라는 결론으로 싱겁게 웃으며 끝이 난다. 물론 외국에도 아직 여러 가지 이유로 순종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간혹 순종 개를 길러야 특정 종에서 유전적으로 대물림되어 발생할 수 있는 병이나 결함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외국은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처럼 혼혈종에 대한 편견은 없는 편이다. 오히려 순종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즉 같은 종을 오랜 세월 동안 번식시키는 데서 오는 유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고 열성인자(defective genes)들이 제거되어 더 건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또 자신의 개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생김새와 성격을 가졌다는 점도 혼혈견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외국은 대부분 보호소에서 입양... 펫숍 구매율은 6%에 불과

동물보호기구인 휴메인 소사이어티(HSUS)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가구는 50%에 달한다. '반려동물 개체수 연구와 정책 의회(National Council on Pet Population Study and Policy)'의 2012~2013년 조사자료를 보면, 1년에 600만에서 80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보호소로 유입되었는데 이중 절반 가량이 입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보호단체나 사설보호소 입양율은 집계된 바가 없으나, 2013년 농식품부의 조사에 의하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에서는 입양율이 연 27~28%에 그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입양률이 현저하게 높기는 하지만,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많은 만큼 연간 270만여 마리가 안락사되는 현실이 큰 사회적 문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반려동물 중 펫숍에서 구매한 경우는 6%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펫숍보다 전문 브리더(breeder, 사육사)에게 동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를 상업적 용도로 번식하려면 농무부(USDA)에서 허가증을 받아햐 한다. 이는 연방법인 동물복지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2013년부터는 인터넷에서 동물을 판매하는 브리더도 관리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시설 없이 집에서 번식하는 브리더라도 번식을 위해 암컷을 다섯 마리 이상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농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브리더는 적절한 시설, 청결한 위생상태, 물과 사료의 공급, 덥거나 추운 날씨로부터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지 등의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또 수의사를 고용하거나 촉탁 수의사가 정기적인 검진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미국 내 26개 주에서는 이 외에도 최소한 지켜야 할 사육장의 규격, 철사로 된 바닥을 쓰지 않을 것, 케이지를 아래 위로 쌓지 않을 것, 하루에 최소한 한 번 이상 운동을 시킬 것, 번식 전 수의사의 검진을 받을 것 등을 주(州) 법으로 추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4년부터는 외국에 있는 비인도적인 번식업장에서 번식한 개체의 유입을 막겠다는 취지로, '판매를 위해 동물을 외국에서 반입할 경우에는 미국법에서 명시하는 사육 조건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 허가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달았다. 판매를 위해 반입하는 동물은 최소 6개월령이 넘도록 하는 법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개를 생산하는 번식장은 조건을 잘 갖추고 법적으로 허가를 받았다 해도 동물학대를 조장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즉, '돈을 주고 동물을 사는 것은 보호소의 동물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동물을 키우려는 사람은 보호소 입양을 먼저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반려동물, 펫숍에서 '분양'보다 보호소에서 '입양'을

 밴조를 입양해서 집으로 데려오던 길
 밴조를 입양해서 집으로 데려오던 길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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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개나 고양이를 '분양받았다'라고 말한다. 아마 한 번에 태어난 여러 마리의 새끼를 한 마리씩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로 쓰기 시작한 듯하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뜻보다는 펫숍에서 동물을 사든, 인터넷에서 사든, '구매했다'는 의미를 대신하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분양받은' 동물을 낳은 어미가 어디서 어떻게 길러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펫숍에서도, 마트에서도 '강아지 팝니다'가 아닌 '강아지 분양합니다'라는 문구로 광고한다. 사람들이 '샀다'라는 표현보다 '분양받았다'는 표현을 더 편안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살아있는 생명을 물건처럼 '돈을 주고 샀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죄책감이나 불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야 이효리 등 유명 연예인들이 유기견을 입양한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유기견 입양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예전만 하더라도 '유기동물 입양'은 더럽고 열악한 보호소에서 병이나 장애가 있는 동물을 구조해 평생 수발을 들어야 하는 '고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선입견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동물을 찾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펫숍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이는 쓰레기장같은 번식장에서 수십, 수백 마리씩 새끼를 빼 판매하는 동물 생산업을 지속시키는 배경이 된다. 사실 펫숍에서 판매하는 동물 가운데는 번식장에서 건강하지 못한 어미에게 태어나, 젖도 떼기 전에 옮겨져 쉽게 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

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하는 일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동물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평생 함께 할 결심만 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밴조는 서울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해 저녁이면 나와 함께 한강변을 달린다. 밴조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개 어디서 분양받으셨어요?"보다 "개가 참 예쁘네요. 어느 보호소에서 입양하셨어요?"라고 인사를 나누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로, 이 글은 비건 11월호에 실린 글을 일부 보완한 글입니다.



태그:#반려동물 , #동물자유연대 , #반려동물 입양 , #유기견 , #유기견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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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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