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한 후 퇴직해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지난 2012년 사망한 고 이윤정씨와 재생불량성빈혈로 10년 이상 투석해 오고 있는 유명화씨가 지난 7일 법원 1심소송에서 3년 8개월 만에 "업무상 연관관계가 인정된다"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판결 10일만인 지난 17일, 고 이윤정씨 유족과 유명화씨 부친은 소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이재갑 이사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날 근로복지공단 방문에는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6명 전원과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임경옥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유족과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등은 이날 이재갑 이사장에게 "근로복지공단은 행정소송 1심판결에 승복하고 이윤정씨와 유명화씨에 대한 항소를 포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유족과 가족대책위 등은 천안, 대전, 서울에서 각각 출발해 울산(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월 울산 혁신도시로 이전)에 합류, 오후 3시쯤 공단 담당자와 면담을 가졌다. 앞서 가족대책위는 지난 14일 공단 측에 공문을 보내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상태였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가족,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면담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한 후 퇴직해 투병하다 지난 2012년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유족과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등이 17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이재갑 이사장과 면담 을 하고 있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한 후 퇴직해 투병하다 지난 2012년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유족과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등이 17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이재갑 이사장과 면담 을 하고 있다
ⓒ 삼성일반노조

관련사진보기


유족과 대책위는 '모두 먼 곳에서 어렵게 온 점'을 이야기하며 당초 다음날인 18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이사장 면담을 이날 하자고 요구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사장이 면담실로 오면서 이사장과 유족의 면담이 17일 오후 5시 성사됐다.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민웅씨 아내 정애정씨(가족대책위 간사)는 "우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아달라"며 "공단 측이 이번 행정소송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가족대책위 대표 송창호씨도 "근로복지공단이 더 이상 피해노동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1심 판결을 받아 들이고 항소를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어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공단이 노동자들에게 불신을 사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좌절을 주는, 공익기관이 아닌 이익집단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1심 재판부 판결에 근로복지공단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소송 당사자인 유족과 가족의 호소도 이어졌다. 유명화씨 부친 유영종씨는 "딸이 투석으로 10년 이상 힘든 삶을 유지하고 있다"며 "더 이상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고 공단 측이 항소를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고 이윤정씨 남편 정희수씨는 1심 행정소송 판결이 나기까지 3년 8개월이란 세월이 흐른 것을 지적하면서 "그 긴 시간 동안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은 많은 고통을 당하며 어려운 삶을 살아 왔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피해 가족들의 연이은 요구에 근로복지공단 이재갑 이사장은 "이번 행정소송 1심 판결문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진지하게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면담에서 '고 황유미씨 백혈병 2심 판결 이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한 것과 재판 보조참가인에서 삼성을 빼라'고 한 점을 들며 근로복지공단이 과거와 달리 변하고 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1시간 가량 이사장과의 항의 면담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의 무책임한 산재 불승인으로 피해노동자와 유족들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그 책임은 근로복지공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항소 포기 요구를 반복했다"며 "공단 측이 다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다"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날 근로복지공단 방문에는 울산 삼성SDI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박진혁씨의 부친 박형집씨와 비인강암피해노동자 김송희씨가 합류했고, 울산지역 삼성 현장노동자들은 유족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격려했다.

법원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 있어"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한 후 퇴직해 투병하다 지난 2012년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유족과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등이 17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과의 면담 후 항소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한 후 퇴직해 투병하다 지난 2012년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유족과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 등이 17일 오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과의 면담 후 항소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삼성일반노조

관련사진보기


한편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지난 7일 이윤정씨의 유족 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발병 전 신입사원 채용시 건강검진에서 모든 부문에서 정상으로 판정을 받았고, 진단 시 연령과 특별한 가족력이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이 근무하는 동안 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등과 같은 유해 화학물질, 극저주파 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질병이 발생했다"며 "이러한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두 사람이 재직기간 주야 교대근무를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이런 점이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질병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 이윤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이던 지난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반도체 조립라인 검사공정에서 일하다 6년 2개월만인 2003년 퇴직했고, 2010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이에 이윤정씨는 "산재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뒤 지난 2011년 4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하고 2012년 5월 숨졌다. 

또한 유명화씨는 지난 2000년부터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2001년 11월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았고, 2010년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거절당하자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태그:#삼성백혈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