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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 강천사의 불타는 단풍
 전북 순창 강천사의 불타는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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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에 단풍이 슬며시 내려앉았습니다.
 강천사에 단풍이 슬며시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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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 입구
 강천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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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다음 주말에 또 단풍 보러 강천산이나 내장산에 가요."

아내는 지난 1일 결행한 전북 고창 선운사 단풍 구경에서 한 발짝 먼저 왔다며 다음 주 절정일 단풍 구경지로 두 곳을 꼽았습니다. 단풍이 하도 예뻐 흔쾌히 그러자고 했지요.

참, 지난해까지 5~6년간 부부만의 단풍구경을 다니고 있습니다. 장소는 대부분 고창 선운사를 끼고, 주변을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그러니 이 일대 단풍 물듦에 대한 식견이 쪼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눈썰미를 한 방에 쪽팔리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전북 순창 강천산이나 전남 순천 조계산에 가자는디, 니도 갈래?"

지난주 중, 지인의 물음에 단풍놀이가 예정된 터라 어디든 좋다했습니다. 부부 동반이라니 더 좋았지요. 남자들끼리 작당한 곳은 조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뒤집혔더군요. 이유인 즉슨, 아내들이 "조계산은 가보고, 강천산은 못 가봤다"며 "강천산을 강추했다"는 거였습니다. 저희는 강천산에만 갔지, 강천산은 못 오른지라, 어디든 상관없었습니다.

이렇게 지난 토요일(8일), 강천산 행에 나섰습니다. 워매~, 워매~,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마음 급한 사람이 박차고 나선다고, 차를 두고 2km를 걸어 강천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걷기에 나서고 얼마 있지 않아 차가 뻥 뚫리지 뭡니까. 아~, 그 황당함이란…. 단풍 구경과 더불어 걷기 위한 여행이라 위안 삼았습니다.

단풍이 장난 아닙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말을 실감하겠더군요. 저희 부부 사람 몰리는 곳은 대개 피하는데 이날은 직접 그 속에 함께 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일부러라도 꾸역꾸역 찾아드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건, 절정 때 봐야 그 참 맛을 즐기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지인들과  만나니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립니다.

25년 만에 지인을 만났는데, 어쩐지 알아?

25년만에 그리운 지인을 만났다는 부부입니다.
 25년만에 그리운 지인을 만났다는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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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지기 친구들 만나니 웃음과 이야기가 떠나질 않습니다.
 38년 지기 친구들 만나니 웃음과 이야기가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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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8세에 취직했다는 지인 부부입니다.
 나이 58세에 취직했다는 지인 부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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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지인을 만나러 부산에서 군산으로 갔는데, 어쩐지 알아?"

그동안 늘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었답니다. 같은 직장에 다녔는데, 5~6년간 부부가 서로 엄청 친했다더군요. 그동안 가끔 전화만 하다가 이번 참에 용기를 내 지난 금요일 날 만나기로 했다네요. 그런데 지인을 만나러 가기 전 이런 마음이 들더래요.

"'내가 한번 갈까?' 하면 상대방이 예의상 '함 와라', 그럴 때가 있잖아. 서로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변해 있는지 모르는데 부담 가질까봐 호텔을 예약하고 만나러 갔다. 근데 걱정이 되더라. '그 친구가 날 반기지 않으면 어쩔까' 하고. '나만 보고 싶어 하는가' 하고."

걱정도 팔자지요. 보고 싶으면 만나면 되는데, 이리저리 서로 배려하느라 별의 별 걱정을 다했더군요. 세월이 한때 아주 친했던 벗들을 조심스럽게 만든 셈이지요. 근데, 이 소릴 듣고 보니, '아~ 참 멋있다!'란 생각이 들대요. 가슴에 새겨둔 이런 벗이 있었다는 자체가 부러움이었지요. 지인이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대만족이었다. 날 엄청 반겨주는데 고맙더라고. 사람들 얼굴 보면 표정에 쓰여 있잖아. 잘 만났다 싶었어."

우리 나이로 60인 지인. 살아보니 그리운 사람은 간혹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나 봅니다. 그리운 사람은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입니다. 서로 실망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나눴을 지인을 생각하니, 괜히 옆에서 더 흐뭇하더군요.

"아~, 예. 스님, 월요일 아침 일찍 가겠십니더~."

이건 또 무슨 소리? 전화 내용의 궁금증을 참고 있는데 그럽디다.

"오십여덟에 취직되었다. 그것도 통도사에."

그 소리에 지인들 환호를 부르며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통도사 인근에 들어설 요양병원의 실장으로 일하기로 했다나. 그러니까 토요일에 올 줄 알았는데, 지인이 오질 않아 통도사 스님께서 찾는 전화였습니다. 순창 강천산 단풍구경은 눈 호강 못지않게 삶의 즐거움까지 더했습니다. 더 재밌는 건 단풍놀이 뒤끝이었습니다.

우리 마누라가 못 먹게 해서 감기 걸렸다... 병원 간다!

강천사 단풍 구경가는 길에...
 강천사 단풍 구경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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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순창 강천산행에 나선 지인들입니다.
 함께 순창 강천산행에 나선 지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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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사 땅도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강천사 땅도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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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게 단풍놀이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 메일로 보냈습니다. 이에 고맙다는 답신이 왔더군요, 거기에 쓰인 60 언저리 친구들끼리의 재밌는 사생활에 눈이 번쩍였습니다.

"니 짧은 생각으로 월욜 아침부터 '○○이 줄라꼬 만든 생강차를 우리 마누라가 못 먹게 해서 감기 걸렸다. 그래서 병원 간다'고 내한테 문자 보내모 내가 우짜노? 연세를 드시면 조금 너그러워져라. 아이고."

알고 보니, 지인 아내가 남편 친구 준다고 생강차를 만들어 남편은 안 주고, 남편 친구에게만 줬나 보대요. 거기에 질투(?)가 났나 보더라고요. 암요. 각시가 자기 남편은 안 챙기고 친구만 챙기면 화나지요. 그런데 그 친구는 속도 모르고 이렇게 자랑질이더군요.

"선물준답시고 만들어 온 걸 니가 먼저 개봉해 묵어버리모 니 부인이 양심에 허락 안 하니 그랬겠지?"

친구 지간에 격의 없이 지내는 거 보니 엄청 부럽더군요. 이런 벗 있으면 좋으련만….(아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 그러고 보니 많이 있네요!) 메일 내용이 여기까지 였으면 중년 남자들의 그렇고 그런 우정 정도로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마무리가 죽이더군요.

"아직 학기가 5주나 남았으니 감기 걸리모 우짤까 싶어 살짝 긴장했는디…. 공사장님 부부에게 고맙다 칼라 캤더만, 니 빼고 남숙씨 한테만 고맙다 칼란다. 그러나 저러나 감기 걸리서 우짜꼬? 내가 위문방문 가까? 툭쉬고 잘 이겨내라. 친구들아 사랑한데이."

메일을 읽고 나서 한동안 눈만 꿈뻑꿈뻑 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왜냐면 38년 지기 벗들 사이의 투박한 메일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여기에는 대학 입학 동기들이 38년간이나 만남을 쭉 이어 온 이유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배려, 그리고 또 배려…. '무릇 친구란?'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녀는 단풍에 취해 시를 읊었습니다. 강천사 단풍은 모두를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단풍에 취해 시를 읊었습니다. 강천사 단풍은 모두를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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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우리에게 단풍을 선물하고, 이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다. 어서 나서시길...
 가을은 우리에게 단풍을 선물하고, 이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다. 어서 나서시길...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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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얼굴은 단풍 속에서 빛이 났습니다. 자연은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단풍 속에서 빛이 났습니다. 자연은 묘한 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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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강천사, #강천사, #단풍,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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